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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영역동물… 아무 곳에나 방사하지 말아주세요"

입력
2021.05.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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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살던 곳에 놓아 달라는 동네 고양이

편집자주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공론의 장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은 어디에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이에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의견을 내는 애니청원 코너를 시작합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살던 동네 고양이. 최근 2년간 케어테이커들이 돌보던 고양이 10마리가 사라졌다. 제보자 김유림씨 제공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살던 동네 고양이. 최근 2년간 케어테이커들이 돌보던 고양이 10마리가 사라졌다. 제보자 김유림씨 제공

저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사는 동네 고양이(일명 길고양이)입니다. 최근 이 지역 케어테이커(동네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2년 전부터 이 지역에서 중성화(TNR) 수술을 마치고, 시청에서 급식소까지 지원받아 관리하던 고양이들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고양이들이 급식소에 나타나지 않아 애를 태우던 한 케어테이커는 지난달 27일 우연히 급식소 건너편 A주택단지에 설치된 여러 개의 고양이 포획틀을 발견했습니다. 주택단지 관리사무소에 확인하니 고양이를 싫어하는 단지 거주자의 민원 때문에 고양이를 잡았고, 포획한 고양이다른 지역에 방사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한 주택단지에 설치된 길고양이 포획틀. 관리업체는 2년 전부터 거주자의 민원을 이유로 길고양이를 포획해 다른 곳에 방사해 왔다. 제보자 김유림씨 제공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한 주택단지에 설치된 길고양이 포획틀. 관리업체는 2년 전부터 거주자의 민원을 이유로 길고양이를 포획해 다른 곳에 방사해 왔다. 제보자 김유림씨 제공

고양이를 돌봐오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는 특성을 고려,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중성화(TNR)사업에도 제자리 방사가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고시인 고양이 중성화사업 실시요령에는 '방사를 할 때는 포획한 장소에 방사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다른 장소에 방사한 행위에 대해 처벌 규정이 없다는 겁니다. 때문에 시민의 민원으로 사실을 알게 된 성남시청도 관리사무소에 포획 과정에서 상해를 입히거나 학대를 할 경우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을 뿐입니다. 시청 관계자는 "위의 사례 외에도 고양이가 싫다고 다른 곳으로 방사해 달라는 요구가 들어오지만 불가능하다고 답변한다"며 "하지만 다른 곳에 방사한 행위에 대해 처벌 규정이 없는 건 맞다"고 말합니다.

김유림씨가 경기 성남 분당구 운중동에서 돌보던 고양이. 전단지까지 만들어 찾아봤지만 찾지 못했다. 김유림씨 제공

김유림씨가 경기 성남 분당구 운중동에서 돌보던 고양이. 전단지까지 만들어 찾아봤지만 찾지 못했다. 김유림씨 제공

논란이 커지자 관리업체는 한국일보에 "2018년 고양이 몇 마리를 잡아 다른 지역에 풀어준 적은 있지만 최근에는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사라진 시점과 관리업체의 포획 시기가 일치했고, 최근까지도 포획틀이 설치되어 있던 점을 고려하면 2018년에만 시행했다는 얘길 믿긴 어려워 보입니다. 케어테이커들은 돌보던 고양이가 최소 10마리 이상 사라졌다고 주장합니다.


강원 원주시 한 공공건물 앞에서 살던 동네 고양이 두 마리가 3월 포획 후 20㎞ 떨어진 엉뚱한 곳에 재방사됐다.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카페 캡처

강원 원주시 한 공공건물 앞에서 살던 동네 고양이 두 마리가 3월 포획 후 20㎞ 떨어진 엉뚱한 곳에 재방사됐다.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카페 캡처


동네 고양이가 싫다는 이유로 다른 곳에 방사하는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특히 지자체의 TNR사업에서도 같은 사례가 반복되고 있는데요.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3월 중순 강원 원주 혁신도시 한 공공기관 건물 부근에서 케어테이커의 관리를 받으며 살던 5개월령 고양이 두 마리가 지자체에 의해 포획돼 중성화 수술을 받고 원래 살던 장소에서 20㎞ 넘게 떨어진 곳에 방사됐습니다. 역시 민원인이 원위치 방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행해진 겁니다. 졸지에 어미와 새끼가 생이별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결국 케어테이커가 재포획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동네 고양이를 제자리에 방사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버동수) 운영진 명보영 수의사는 "민원 때문에 TNR를 하면서 다른 곳에 방사하는 사례가 꽤 있는 것으로 안다"며 "통계는 없지만 영역동물이라 원래의 영역으로 찾아가는 과정에서 로드킬을 당하거나, 낯선 지역에서 터줏대감 고양이와 영역싸움 후 도태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한 지역의 고양이가 사라지면 다른 지역 고양이가 유입되는 진공효과가 발생한다"며 "지역 내 동네 고양이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강원 원주시 한 공공기관 건물 부근에서 케어테이커의 돌봄을 받으며 살던 5개월령 동네 고양이가 20㎞ 떨어진 허허벌판에 방사되고 있다.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카페 캡처

강원 원주시 한 공공기관 건물 부근에서 케어테이커의 돌봄을 받으며 살던 5개월령 동네 고양이가 20㎞ 떨어진 허허벌판에 방사되고 있다.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카페 캡처

고양이를 누구나 좋아할 수 없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발정기 때 소리를 내는 등 피해를 주지 않고 개체수가 조절되도록 정부도 중성화사업을 실시하는 만큼 우리 동네 고양이들을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싫든 좋든 고양이는 함께 살아가야 할 동물입니다. 고양이가 싫다고 멀리 떨어진 곳으로 고양이를 마구 방사하지는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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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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