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항모 사업 ‘우군’ 없는 해군… ‘퀸 엘리자베스호’가 구세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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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항모 사업 ‘우군’ 없는 해군… ‘퀸 엘리자베스호’가 구세주 되나

입력
2021.05.06 09:00
수정
2021.06.09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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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한반도와 경항모의 운명

편집자주

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2017년 12월 7일 영국 남부 포츠머스 해군기지에서 최신예 항모 '퀸 엘리자베스호' 취역식 행사를 주관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영국 왕립해군 홈페이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견되는 1588년 칼레 해전에서 영국이 막강 군사력을 보유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할 수 있었던 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용인술 덕이 컸습니다. 그는 해상권 쟁탈을 위해 해적 출신인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비롯해 명장들을 실전에 배치했습니다. 함정 34척에 민간 상선까지 끌어모아 80척으로 전투에 나선 영국은 규모에서는 열세였지만 단련된 병사들과 기동력을 갖춘 함대에 날씨 도움까지 받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함정 130척, 최신식 대포 2,500문을 동원하고도 처참히 무너진 스페인은 이후 해상무역의 패권을 영국에 내줘야 했지요. 유럽 변방의 크지 않은 섬나라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전세계 바다를 호령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 그녀의 이름을 딴 영국의 최신예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호'가 이르면 8월 말 한국에 옵니다. 영국이 과거 명성을 되찾기 위해 재정난에 허덕이면서도 함정 건조에만 31억 파운드(4조8,000억원)를 쏟아부은 퀸 엘리자베스호는 영국 왕립 해군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항모입니다. 무게 6만5,000톤에 길이가 280m로 영국 국회의사당 건물보다 길어 진수식 때부터 화제를 모았지요.

국방부는 지난달 26일 "한영 양국 간 국방협력 증진과 친선 교류를 위해 금년 하반기 퀸 엘리자베스 항모 전단의 부산항 기항 요청을 수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영국 항모의 방한은 1997년 이후 처음입니다. 한미연합작전 차원에서 군함을 자주 파견하는 미국이 아닌, 영국 항모가 24년 만에 한국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017년 8월 16일 영국의 최신예 항모인 퀸 엘리자베스호가 포츠머스 해군기지에 도착한 모습. AP 통신


"中 견제하겠다"는 英 항모, 수용한 정부

2017년 취역해 올해 실전 배치된 퀸 엘리자베스호는 이달 중 영국 포츠머스 해군기지를 출발, 지중해와 아라비아해, 인도양, 태평양을 거쳐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인도, 싱가포르 등 총 40개국을 순방할 예정입니다. 무려 6개월이 넘는 대장정입니다.

아시아 출격의 가장 큰 목적은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있습니다. 과거 위상을 되찾고자 독일 주도의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이른바 브렉시트를 감행한 영국은 주요 활동 무대를 ‘인도·태평양’으로 정했습니다. 1997년 홍콩을 중국에 반환했던 영국이 다시 아시아에서 대양해군의 위용을 재현하겠다는 것이지요. 퀸 엘리자베스호의 미션은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견제’ 동참입니다. 이번 순방에서 일본 난세이(南西)제도 주변을 포함한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군 및 일본 자위대와 연합훈련을 할 계획입니다. 남중국해 일대에서 미국의 주도권 유지에 기여하고 그만큼 지분을 챙기겠다는 계산입니다.

주목할 만한 건 중국과의 관계를 무시 못 하는 우리 정부가 '중국 때려잡기'에 동참하겠다는 영국 항모의 방한을 선뜻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이를 두고 해군의 숙원사업이자 문재인 정부의 치적이 될 ‘경항공모함’ 사업을 염두에 둔 것이란 얘기가 나왔습니다. 영국은 3만 톤급 경항모를 도입하려는 우리 군에 항모 기술 등을 수출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물밑 작업을 해왔습니다. 우리 역시 10만 톤에 육박하는 대형 핵추진 항모를 보유한 미국이 아닌 중형급(4~7만 톤급) 이하 디젤 기반의 항모를 운용하는 영국을 기술 협력 파트너로 생각했고요.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도 “퀸 엘리자베스호의 방한을 계기로 경항모와 관련해 영국의 항모 운용 경험을 교류하는 등 협력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영국의 최신예 항모인 퀸 엘리자베스호가 지난 1일(현지시간) 영국 포츠머스 해군기지에서 출항하는 모습. 이날 출발한 퀸 엘리자베스호는 스코틀랜드에서 훈련을 마친 뒤 이르면 올 8월 말 부산에 도착한다. PA MEDIA


해군 빼고 모두가 반대하는 경항모

항모는 전투기를 싣고 떠다니는 '바다 위 비행장'입니다. 축구장 2, 3배 크기의 갑판 위에서 전투기 수십 대가 출격을 준비합니다. 움직이는 바다 위에서 전투기를 수백 km까지 날려보내기에 그 위치를 가늠 못하는 적 입장에선 위협적일 수밖에 없지요. 전투기 외에도 정찰기, 제트폭격기, 대잠수함 초계기까지 싣고 다녀 해상전력의 핵심으로 꼽힙니다. 중국도 2030년까지 항모 6척을 도입할 예정이고 ‘전쟁 가능한 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일본도 호위함 2척을 경항모로 개조 중입니다.

우리 군 당국도 지난해 3만 톤급 경항모 1척을 2032년까지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않습니다. 해군을 제외한 나머지 군과 국회, 상당수 여론이 경항모 도입에 시큰둥하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해군은 16세기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소환했습니다. 경항모를 '21세기 거북선'에 비유하며 "이순신 장군이 조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거북선을 만든 절박한 심정으로 경항모를 만들겠다"고 강조하고 나선 것입니다. 과거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16세기 군주' 퀸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끌어들인 영국 해군과 흡사합니다.

2018년 9월 25일 영국의 최신예 항모 퀸 엘리자베스호 위를 날고 있는 록히드마틴사의 F-35B 전투기. 록히드마틴

한정된 국방예산을 나눠야 하는 육군과 공군 입장에선 해군의 경항모 도입이 달가울 리 없습니다. 함정 건조에 2조300억 원이 투입되고, 연간 운영유지비는 500억 원으로, 해군 연간 예산(8조 원)의 0.6%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항모에 탑재될 전투기 20대를 구입하는 데 3조 원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항모는 스스로 자기 몸을 지킬 수 없기에 '보디가드'도 있어야 합니다. 미사일로부터 항모를 보호할 구축함과 호위함, 잠수함 등 전단을 꾸리고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여기에도 비용이 들어가는 거지요.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는 겁니다. 퀸 엘리자베스호 역시 함정 6척과 잠수함 1척을 이끌고 이번 순방길에 나섰는데, 예산 제약으로 호위 전력을 제때 확보하지 못한 탓에 미국과 네덜란드 해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해군은 최근 "경항모에 탑재되는 전투기를 해군이 아닌 공군이 100% 운용할 것"이라며 공군에 구애의 손짓을 건넸습니다. 미군처럼 해군 자체 조종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공군에 양보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정작 공군은 탐탁지 않아 하는 분위기입니다. 전투기 도입과 운영비는 공군 예산으로 잡히기 때문인데요. 공군 입장에선 '우리 예산을 해군에 기부하는 격'이라는 볼멘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남영신(왼쪽부터) 육군참모총장,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이 지난해 10월 23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자리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예산 도입 위한 절차까지 막는 국회의 ‘몽니’

돈줄(예산)을 쥔 국회는 더 까다롭습니다. 지난해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필수 절차인 사업타당성 조사(사타·총 사업비 500억 원 이상) 미비를 이유로 경항모 예산을 전액 삭감했던 국회는 올해는 더 완강합니다. 국회는 지난해 예산을 삭감하면서 경항모의 경제성을 따지는 사타와 별도로 도입의 효용성을 따지는 연구 용역까지 추진하라며 예산 1억 원을 배정했는데요. 최근에는 "연구 용역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사타를 착수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국회의 경고 때문인지 이미 사타에 착수했어야 할 한국국방연구원(KIDA)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지난달 열린 KIDA 기자간담회에서 실무진이 '경항모 사타 착수' 계획을 밝히자, 김윤태 KIDA 원장이 "국회에서 이슈가 된 사타 관련 일정은 현재 홀드(중단)된 상태"라며 "사타 착수 여부는 국회 논의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서둘러 수습에 나선 것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국회가 사타 착수를 막을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법에 정해진 예산 절차를 밟도록 독려하는 게 국회의 역할입니다. 경항모가 경제성이 있는지 따져 볼 기회도 주지 않는 건 오히려 부당합니다. 사타를 지연시키는 국회는 올해 정기국회 예산심사에서 "사타를 마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다시 경항모 예산을 불발시킬 수 있습니다.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야 하는 해군과 방위사업청은 속이 타들어 갈 수밖에 없지요. 다만 국회가 이렇게 '몽니'를 부릴 수 있는 건 경항모 필요성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충분치 않다는 판단도 깔려 있습니다. 반대로 해군이 여론을 뒤집으면 국회를 설득하고 관련 절차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2008년 12월 22일 국내 최초의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이 부산 작전기지에서 취역식을 갖고 작전 배치될 당시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지스함도 20년 전엔 불필요한 전력이었다”

경항모 도입 반대 여론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6, 7만 톤이 아닌 지금과 같은 3만 톤 규모로는 제대로 된 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함재기 수도 20대에 불과하고 북한 지하시설을 타격할 수 있는 폭탄도 탑재하지 못할 경항모를 굳이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입니다. 좁은 갑판 때문에 도입해야 하는 수직이착륙기 F-35B에 대한 비효율성 문제도 나옵니다. 'F-35 시리즈' 중에서 가격은 제일 비싸고 성능은 가장 떨어지는 F-35B를 사들이게 됐다는 불만이지요.

2015년 9월 3일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인민의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공개된 중거리 탄도미사일 둥펑-21D 모습. AP 통신

주변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한반도 자체가 '항모 역할'을 하는데 전투기를 멀리까지 보내 작전할 필요가 있느냐는 '항모 무용론'도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 군은 전투기에 기름을 넣을 수 있는 '공중급유기'를 4대나 보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항모가 없어서 전략적으로 아쉬웠던 기억도 없는 듯합니다. 오히려 미사일 위협 밀도가 높은 남중국해에서 경항모가 손 쉬운 표적이 될 것이란 지적이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미사일 세례에 수조 원짜리 경항모가 순식간에 공중분해될 위험이 크다는 얘기죠. 이웃한 중국이 '항모 킬러'로 불리는 대함 탄도미사일 '둥펑' 개발에 열 올리는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해군은 전쟁의 양상이 바뀌고,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이 현실화되는 '미래'를 봐 달라고 합니다. 20년 전 해군이 이지스함 도입을 추진할 당시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고도 합니다. 당시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기 전이라 '이지스함 무용론'이 거셌지만 지금은 유사시 합참이 가장 먼저 찾는 전력이 된 것처럼 말이지요. 경항모도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수 있다는 거지요.

이지스함인 '율곡이이함'이 2013년 12월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있는 이어도 해역에서 해상경계작전을 수행하는 모습. 연합뉴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당시, 미국이 항모 3척을 동해상에 배치하자 북한이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꼬리를 내린 것도 주목해야 한다고 합니다. 현대전이 1분, 1초의 짧은 순간에 승패가 결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항모는 북한과 대치 과정에서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전쟁이 발발할 경우, 북한이 초반 경항모 추적에 집중하는 사이 우리 군은 전투태세로 전환할 시간을 벌면서 민간인 피해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우리가 대북 방어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미국이 20~30년 뒤에도 건재할 것이란 보장도 없고요.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ㆍ카디즈)과 자디즈(일본방공식별구역ㆍJADIZ), 차디즈(중국방공식별구역ㆍCADIZ)가 모두 겹치는 이어도에서 우리 해상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도 경항모는 필수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3국이 이어도에 모두 다리를 걸쳐 놓은 이상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취지인데요. 2003년 우리나라가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지만, 최근 이어도 일대에 중국의 출동이 빈번해진 것을 주목해야 한다는 겁니다. 일각에선 기피 시설인 육지의 공군기지를 항모가 대체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2019년 12월 6일 퀸 엘리자베스호 위에서 수직이착륙기인 F-35B 전투기가 이륙하는 모습. 영국 왕립해군 홈페이지


퀸 엘리자베스호 방한으로 여론 반전 가능할까

지난 1월 해군이 공개한 경항모 개념도는 그 구조가 퀸 엘리자베스호와 많이 닮았습니다. 배를 조종하고 전투기를 지휘하는 강철탑인 아일랜드(함교)를 2개로 배치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영국의 항모 역시 우리가 도입할 예정인 F-35B를 함재기로 운용하고요.

한국에 자주 기항하는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 대형 항모와 달리 '퀸 엘리자베스 호'는 우리에게 '그림의 떡'은 아닙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퀸 엘리자베스호의 위용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면 마음이 달라질지 모릅니다. 물론 해군이 등 돌린 여론을 반전시켰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누구도 미래의 위협을 쉽게 단정할 순 없습니다. 다만 해군의 논리가 좀 더 정교해질 필요는 있습니다. 지금처럼 "경항모는 다목적 군사기지 역할을 하기에 갖고 있으면 무조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식의 접근은 곤란합니다. 무엇보다 경항모의 전략적 우선순위와 목표가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경항모를 공격자산으로 활용해 해상에서 국익을 적극적으로 취하는 강대국의 길을 갈 것인지, 독도나 이어도 등 분쟁 우려 지역에서 우위를 점하는 등 우리만의 길을 개척해 가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합니다. 자칫하다간 1997년 경항모를 도입하고도 재난 구조나 관광용으로만 쓰고 있는 태국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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