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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혼 반대 추기경에게… "성소수자인 제 아들은 하느님 실수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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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혼 반대 추기경에게… "성소수자인 제 아들은 하느님 실수인가요?"

입력
2021.05.06 04:30
수정
2021.05.06 08:43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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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수정 추기경님이 동성혼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쓴 담화문을 읽고 정말 화가 났어요. 성소수자인 제 아들은 하느님께서 실수로 만드신 건가요? 미국정신의학회가 정신질환 분류(DSM)에서 동성애를 제외한 것이 1973년이에요. 세계보건기구(WHO)는 1990년, 세계정신의학회는 2016년에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라고 발표했고요. 치료하려 들면 애들은 죽어요. 자기를 혐오하게 만드니까요. 시대가 바뀌었으면 교리의 오류도 인정해야죠. 동성애자의 존재를 인정한다면서 가족은 꾸리지 말고 성행위도 하지 말라? 어쩌라는 겁니까?

성소수자 부모모임 대표 홍정선 세실리아

천주교에서 가장 높은 성직자인 염수정 추기경은 지난달 21일 ‘가정과 혼인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정치권의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 여성가족부의 가족 범위 확대 정책과 관련해 동성혼과 동성가족을 법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요약하면 △가톨릭 교리상 인간은 영적이고 인격적으로 남녀로 구분되게 만들어졌고 △동성 간의 성적 관계는 혼인과 가정이 토대로 하는 몸의 결합과 출산이라는 의미가 빠져 있으므로 ‘혼인’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출산해야 가족이라니... 천주교도 이젠 변해야

지난달 26일 서울의 한 성당에서 만난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홍정선 세실리아 대표는 담화문이 모순투성이인 데다 성소수자 신자, 그 가족의 마음을 찢어놨다고 지적했다. 홍 대표의 아들은 중년에 접어든 동성애자다. 그는 2008년 부모에게 성향을 알렸고 10년 전 배우자를 만났다. 홍 대표는 동성끼리는 성행위를 하더라도 출산하지 못하니 가족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화문에서 가장 모멸적이라고 털어놨다. 시대가 변했고 과학이 동성애를 질병에서 제외한 만큼, 이제는 천주교가 성소수자에게 문을 열어야 한다고 홍 대표는 강조했다.

홍정선 세실리아 성소수자 부모모임 대표가 지난달 26일 자신이 다니는 서울 시내의 한 성당에서 천주교의 성소수자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 대표는 "이런 담화문은 성소수자에게 욕설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영권 기자

홍정선 세실리아 성소수자 부모모임 대표가 지난달 26일 자신이 다니는 서울 시내의 한 성당에서 천주교의 성소수자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 대표는 "이런 담화문은 성소수자에게 욕설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영권 기자


동성애자에게 신부처럼 살기를 강요 말라

추기경의 담화문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동성애 성향 때문에 내적 시련을 겪는 이들에게 친절과 존중,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면서도 ‘동성애 행위처럼 성적 행동이 타고난 몸의 객관적 질서와 인격적 의미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몸은 단지 이기적으로 이용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라고 쓰였다. 동성애 성향은 타고났으니 차별하진 말되, 그들의 성행위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타고난 인격과 성향은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동성애자인 신자는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신부와 수녀처럼 독신으로 살면서 평생 사랑도, 성행위도 하지 말아야 하느냐는 이야기다. “저는 남편을 사랑하고, 눈을 뜨면 사랑하는 사람이 옆자리에 있습니다. 성소수자도 그럴 수 있도록 존중하라는 거죠. 사랑하면 사랑의 행위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거죠.”

이에 대해 염수정 추기경을 보좌하는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그 부분은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입장을 본보에 전해왔다. 홍 대표는 차별금지법과 여성가족부의 정책이 동성혼을 직접적으로 합법화하는 움직임도 아니라며 염 추기경이 공연한 담화문을 발표해 성소수자만 할퀸 셈이 됐다고 비판했다.


출산이 가족의 전제라면 비혼 가족은?

담화문이 출산을, 가족을 법적으로 인정할 때 필요한 주요 조건으로 든 것도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가톨릭 교리는 가족이라면 이성끼리 만나서 자식을 낳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정상 가족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비정상이라는 거죠. '동성 부부의 인공출산이나 자녀입양을 두고 한 아빠와 한 엄마를 갖고 싶은 자녀의 선택권을 침해한다'고도 썼던데 그렇다면 한부모 가족의 자녀는 불행한가요?”

이에 대해서 서울대교구는 “동성애가 아닌 사람의 ‘비혼 동거’를 법적 가족에 포함하는 경우는 담화문에 다루지 않았고 교회의 공식 입장도 없다”고 답변해왔다. 엄격한 잣대는 동성애자에게만 적용됐다.

홍정선 성소수자 부모모임 대표의 가방에는 '사랑이 이긴다'는 배지가 달려 있다. '알파오메가' 배지는 천주교 여성 성소수자 신자 공동체에 대한 연대의 뜻을 의미한다. 김민호 기자

홍정선 성소수자 부모모임 대표의 가방에는 '사랑이 이긴다'는 배지가 달려 있다. '알파오메가' 배지는 천주교 여성 성소수자 신자 공동체에 대한 연대의 뜻을 의미한다. 김민호 기자


주교들에게 강의까지 했는데 변화 無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2019년 3월 천주교 주교회의의 초청을 받아 주교들 앞에서 성소수자가 무엇인지 강의했다. 주교들은 "강의 참 잘 들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2년이 흘렀지만 천주교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홍 대표는 이야기한다. 강의는 강의로 끝났다.

홍 대표는 1986년부터 성당에 다녔지만 단 한 번도 성소수자에 대한 강론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주교님들은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성소수자를 거의 못 만나보신 분들이에요. 사제들이 서품을 받을 때는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을 위해 몸 바치면서 살겠다고 서약하시지만 그들에게 성소수자들이 다가가지 않았다면 누구의 잘못일까요? 미얀마 사태를 위해서 교회 전체가 기도하는 것 정말 좋아요. 그런데 성소수자를 위해서는 한 번이라도 기도해보셨는지 묻고 싶어요.”

홍 대표는 진정으로 약자를, 성소수자를 돕겠다면 사제들이 직접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최근 숨진 변희수 하사가 천주교인이에요. 그래서 제가 평소 연락하던 주교님께 기도해달라고 문자를 드렸어요. 주교님은 안타깝다고 기도하시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천주교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런 마음을 왜 드러내지 않으시냐는 거예요.”

인터뷰에 응하는 홍정선 대표의 목소리는 밝았다. 그는 성당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면서도 하느님은 성소수자를 사랑하시니 자신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영권 기자

인터뷰에 응하는 홍정선 대표의 목소리는 밝았다. 그는 성당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면서도 하느님은 성소수자를 사랑하시니 자신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영권 기자


제발 성소수자들을 만나달라

아들은 자기 모습대로 남성을 사랑하며 살고 있다. 그것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고, 뜻일 것이라는 게 홍 대표의 이야기다. 규칙에 얽매인 오늘날의 '제도 교회'는 성소수자를 배척하지만 하느님의 교회는 그들을 환대하리라는 희망이다.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어요. 세계적으로 인구의 5% 정도가 성소수자입니다. 한 반에 30명이 있다면 1, 2명은 성소수자라는 이야기예요. 그런 상황에서 염 추기경의 담화문을 접한 성소수자들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보세요. 또 신자들이 성소수자를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해보세요.”

홍 대표가 천주교에 바라는 건 사제들이 성소수자들을 만나고, 사목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달라는 것. “교회가 성소수자들을 만나봐야죠. 예수님이 평생 사회에서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셨잖아요. 주변으로 밀려난 이들이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이제라도 교회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이 꾸린 단체로 2014년 시작됐다. 성소수자 당사자들도 모임에 참석한다. 이들은 다른 성소수자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받아들이는 법을 교육하는 한편, 다양한 외부 활동으로 사회에서 뿌리내린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있다. 지난해에는 천주교인권위원회가 수여하는 이돈명 인권상을 수상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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