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범 척결하는 검찰총장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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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범 척결하는 검찰총장을 보고 싶다

입력
2021.05.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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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가 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이 차려진 서울고검으로 출근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형법 제347조에 의하면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해 재물을 교부 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범죄로 규정돼 있다. 10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고, 이득금액이 1억 원 이상이면 가중 처벌된다.

법전 속 문구는 짧고 건조하지만, 현실 속 사기죄의 행태는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며 그 폐해는 심각하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사기가 감기나 코로나처럼 일상생활 깊숙이 스며들다 보니 사기를 사기로 인식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대국민 사기극’이란 말이 보통명사처럼 사용되고, 사기를 당하고도 사기죄로 인정 받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최근 중앙부처 퇴직 공무원이 겪은 일이다. 취업난 속에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아들의 처지가 안타까웠던 그는 알고 지내던 화가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아들을 미군부대 군무원에 넣어줄 테니 1억 원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공무원시험 준비를 그만두도록 했지만, 아들은 군무원이 되지 못했다. 재산 피해를 본 아버지에게 더 심각한 문제는 아들과의 관계가 파탄난 것이었다. 보다 못한 검찰 수사관은 아들을 따로 만났다. “아버지를 너무 원망하지 마라. 나 같아도 그렇게 속았을 수 있다.” 아버지의 진심을 알게 된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지만, 그 화가는 사기죄로 처벌받지 않았다.

전주에서 알아주던 거부(巨富)도 마찬가지였다. 사기꾼 꾐에 넘어가 부동산을 몽땅 날린 그는 삼시세끼 해결도 못해 노숙자가 돼버렸고, 캐나다에서 아이들을 키우던 그의 아내는 졸지에 식모살이를 해야 했다. 그 역시 사기 피해자로 인정 받지 못했다. 사람 잘못 만난 자신을 탓할 뿐이었다.

어렵게 사기꾼을 법정에 세워도 솜방망이 처벌이 피해자 가슴을 후벼 판다. 법전 속 형량은 징역 10년 이하지만, 실제론 2년 이하가 대부분이다. 법이 무르다 보니 사기범의 재범률은 40%에 달하고, 전과 9범 이상이 초범보다도 많아졌다. 최근엔 피해자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모는 다단계범죄나 보이스피싱처럼 범죄 자체가 갈수록 조직적이고 악랄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판결문에는 피해자 부주의가 사기꾼 형량을 줄이는 근거로 자주 언급된다. 피해자도 잘못이 있으니 가해자를 너무 가혹하게 벌 줘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사기는 ‘남는 장사’란 말이 통용되는 이유다.

강력범죄나 성범죄처럼 그 심각성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탓일까. 영화나 드라마에선 사기꾼의 활약을 미화하고, 검찰에선 사기와의 전쟁을 외치지 않는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가족, 지인과의 관계까지 파탄낼 수 있는데도 말이다.

검찰은 1990년 10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 방침에 따라 수사 전면에 나섰다. 전국구 폭력조직 상당수가 검거됐고, 5대 강력범죄 발생률도 현저히 감소했다. 실적주의를 조장하고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사회악 척결에 대한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검찰의 위상을 높였다.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이 신임 검찰총장으로 지명됐다. 검찰개혁이나 적폐청산, 정의구현 같은 거창한 화두 대신 사기범 척결을 제1과제로 내세우는 건 어떨지. 적지 않은 성과를 낼 것이고 박수 받는 총장으로 기억될 것으로 본다. 우리는 2분마다 한 번씩 사기범죄가 일어나는 사기 공화국에 살고 있다.


강철원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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