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4일 자사주 2조6,000억 원어치를 소각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앞서 주주가치 향상을 위해 인적분할 계획을 내놓은 데 이은 후속 조치다.
이번 자사주 소각으로 그간 시장에서 제기된 신설회사와 지주사 SK(주)와의 합병 가능성은 사실상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SK(주)가 주주 반발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마무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텔레콤, 자사주 사실상 전량 소각
SK텔레콤은 이날 이사회를 열어 2조6,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869만 주를 소각하기로 결정(소각 예정일은 5월6일)했다. 소각하는 자사주는 전체 발행주식의 10.8% 규모로 사실상 자사주 전량 매각(자사주 비율 11.7%→1.2%)에 가깝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국내 4대그룹 자사주 소각 사례 중 발행주식 대비 물량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자사주 소각은 기업이 자사 주식을 스스로 없애 유통 주식수를 줄이는 행위다. 실제 SK텔레콤 발행 주식은 8,075만 주에서 7,206만 주로 줄어드는데, 주식 수가 줄어드는 만큼 주당 가치는 커진다. 자사주 소각에 통상 주가 상승이 뒤따르는 이유다. 이날도 자사주 소각 계획이 호재로 받아들여져 SK텔레콤 주가는 장중 5.9%나 치솟았다.
SK텔레콤은 "지난 4월 인적분할 추진 발표에 이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회사의 확고한 의지 표명"이라고 설명했다.
자사주 소각 의미는? "합병설 종지부"
사실 SK텔레콤의 자사주 소각은 시장에서 예정된 수순으로 여겼다. SK텔레콤은 지난달 SK텔레콤을 사업회사(존속법인)와 투자회사(신설법인)로 분할하는 인적분할 계획을 발표했다. 안정적 배당이 기대되는 통신회사는 사업회사 아래에 두고, 성장주로 꼽히는 SK하이닉스와 11번가 등 정보통신기술(ICT) 회사는 투자회사 아래에 편입시키는 형태다. 기업가치를 높여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시장에선 곧바로 인적분할 후 신설회사와 SK(주)와의 추가 합병이 뒤따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가 핵심 계열사인 SK하이닉스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SK(주)가 신설회사를 흡수합병할 것이란 시나리오였다.
이 과정에서 자사주는 오너 일가에 적잖은 도움을 줄 수 있다. SK는 인적분할 후 투자회사에 대해 26.8%의 지분을 갖게 되는데, 자사주를 활용해 유상증자 등을 거치면 지분율을 배 가까이 높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SK(주)가 투자회사를 합병할 때 대주주 지분(오너가의 SK 지분율 18.4%)이 훼손되는 걸 최소화할 수 있다.
물론 당시 시장의 이런 우려에 SK텔레콤은 "합병 계획이 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합병설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하지만 SK텔레콤이 이번에 자사주 소각 방침을 밝히면서 합병설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자사주 소각 이후 SK(주)의 존속회사와 신설회사에 대한 지분율은 30.01%로 높아진다. 오너 일가로선 이 정도 지분율로 SK와 신설회사의 합병을 추진하면 대주주 지분 가치가 적잖은 타격을 받는다. 주주들의 거센 반발도 각오해야 한다. 합병 실익이 없다는 얘기다. SK텔레콤 관계자도 "합병을 아예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오너 일가로선 SK(주)보다 투자회사 가치가 낮아야 유리한 합병 비율이 끌어낼 수 있는데 자사주 소각에 나서지 않았다면 합병설이 내내 기업가치 발목을 잡았을 것"이라며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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