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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빵이가 떠났습니다

입력
2021.05.04 15:30
수정
2021.05.04 15: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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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박정윤올리브동물병원장
2017년 11월 경기 시흥시 불법 번식장에서 구조된 이빵이. 박정윤 원장 제공

2017년 11월 경기 시흥시 불법 번식장에서 구조된 이빵이. 박정윤 원장 제공


이빵이가 떠났습니다. 이빵이는 2017년 11월 경기 시흥시 불법 번식장에서 구조된 말티즈였습니다. 화원을 가장한 비닐하우스 안에는 화분들 대신 뜬장 속에 120여 마리의 개들이 들어 있었죠. 밤새 켜둔 난로에서 불이 나서 수십 마리의 개들이 죽고서야 비닐하우스의 개들은 세상에 나왔습니다. 구조된 개들 중 어리고 이쁜 개들은 앞다투어 입양이 되었고, 나이 들고 아픈 친구들은 대다수 가족을 만나지 못했어요. 병원에 온 상태가 좋지 않은 6마리의 강아지는 일빵, 이빵, 삼빵, 사빵, 오빵, 육빵이라 불렸습니다. 이들 중 이빵이는 유난히 작고 당찬 친구였습니다. 고질적인 식분증에 마운팅도 남달랐죠. 별명이 ‘붕가대장’일 만큼요. 그 친구는 병원에서 3년 4개월을 함께 살았습니다.

처음 온 몇 개월은 건강했지만 나머지 시간들은 약을 먹거나 수술을 받으며 치료를 해야 했습니다. 연이은 출산과 교배로 이빵이의 관절은 닳았고, 엉킨 털과 오물에 다친 눈은 평생 안약을 넣어야 했습니다. 유난히 작고 사과 같은 머리는 뇌질환이 있었고, 유전적일 거라 여겨지는 심장병은 결국 우리 곁을 일찍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놀라운 건 4년 전인 이빵이 이후에도 병원에는 여러 차례의 번식장 구조견들이 다녀가고 머물렀다는 것이죠. 시간이 지난 현재도 번식장에서 다른 품종의 ‘이빵이’들이 병원에 머물렀다 보호소로 돌아갔습니다. 왜 달라지지 않을까요. 시흥에서 곤지암에서 평택에서... 전국 곳곳에서 번식장은 끝없이 사라지고 다시 생깁니다.


병원에서 3년 4개월을 함께 한 이빵이. 박정윤 원장 제공

병원에서 3년 4개월을 함께 한 이빵이. 박정윤 원장 제공


매년 5월 5일은 일 년 중 펫 숍 손님이 가장 많은 날입니다. 새로운 동생을 혹은 친구를 만들어준다는 명목하에 많은 동물이 팔려갑니다.

매년 유행하는 품종도 있지요. TV에서 귀여운 품종이 눈길을 끌면 그해는 그 품종이 잇템이 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더 늘었다고 합니다.

반려동물 천오백만 시대는 질적인 성장이 아닙니다. 반려동물시장이 커질수록 동물유기와 동물학대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해졌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해마다 10만 마리가 넘는 동물이 유기된다고 합니다. 동시에 동물 번식업에서 매년 평균 70만 마리의 동물이 ‘가족’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판매된 동물 중 가족과 끝까지 사는 경우는 단 20%도 안 됩니다.

불편한 실상을 모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펫 숍에서 구매하는 걸 무조건 반대하면 모두가 보호소에서 입양을 해야 하느냐고 따지듯 되묻는 분들도 많습니다. 새끼 때부터 키워보고 싶으면 어쩌냐는 질문도 함께요. 애견 숍에 전시된 강아지들이 불쌍해서 데려온다는 분들도 있고요. 하지만 동물을 판매하는 산업은 끊임없이 동물을 고통의 굴레에 시달리게 합니다. 산업이 되는 순간 동물의 생명은 도구에 불과합니다.

모두를 동물 보호소에서 입양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펫 숍 앞에서, 혹은 온라인 판매 중인 이쁜 동물을 보면 이빵이를 기억해주세요. 외로운 마음에 혹은 어린이날 선물로 동물을 사려 한다면 한 번만 생각해주세요. 당신의 구매는 착취를 지속시키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수요가 계속되면 어떤 식으로든 공급은 될 테고, 그 속에서 수많은 이빵이들은 평생 뜬장에 갇혀 죽기 전까지는 못 나올 겁니다. 최소한의 생존도 보장받지 못한 채 끊임없이 착취당하고 있을 그들을 떠올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지 않는 행동이 함께 살 동물을 존중하는 첫걸음일 수 있답니다.

또, 선택 기준이 외모나 품종 때문만은 아닌지도 생각해보세요. 동물을 키우는 것은 생명을 책임지는 일입니다. 생각보다 세심하고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합니다.

어딘가 있을 이빵이의 수많은 새끼들은 모두 가족의 품에서 안전하게 살고 있으려나요. 유난히 이쁘고 작은 말티즈를 볼 때면 이빵이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이번 어린이날에는 모든 유기동물 보호소가 입양 보내느라 바빠지는 날이길 바랍니다. 이빵아, 잘가. 나중에 또 보자.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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