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내전, 종식인가 연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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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내전, 종식인가 연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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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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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렌더킹(왼쪽) 미국 예멘 특사가 지난달 30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 리야드=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예멘 분쟁 특사’ 팀 렌더킹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 방문 길에 나섰다. 렌더킹 특사의 임명 소식은 올해 2월 5일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예멘 전쟁은 종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년 9월 내전으로 시작된 예멘 전쟁은 이듬해 3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를 주축으로 한 지역 패권국들이 ‘아랍동맹’의 이름으로 개입하고, 이란과 미국까지 간섭하면서 국제 분쟁으로 비화했다. 미국은 아랍동맹, 특히 사우디를 노골적으로 지원하며 ‘이란 견제’라는 미국의 대 중동 전략을 숨기지 않았다. 사우디의 예멘 공습에 필요한 연료와 정밀 타격기를 제공하고, 민감한 정보도 공유하는 등 말 그대로 무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6년여의 예멘 전쟁 기간 발생한 사망자 13만명은 대부분 사우디 주도 아랍동맹의 폭격에 의한 것이다. 공습 대부분은 장례식, 병원 등의 민간인 구역과 시설을 강타했다. 특히 전체 사망자 중 4분의1이 어린이들이었다.

10년 넘게 예멘에는 “인도주의적 위기”라는 수사가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다. 1월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노선을 뒤집고 예멘 분쟁 종식을 중요한 외교정책 목록에 올려놓은 건 분명해 보인다. 특사 발표 하루 전인 2월 4일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더 이상 예멘 전쟁에 개입한 사우디를 공격적으로 지원하지 않겠다”면서 “다만 사우디의 주권, 영토 수호는 돕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미 행정부가 2월 16일 예멘 북부의 무장세력인 ‘안사르 알라(후티반군)’를 외국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삭제하면서 협상과 분쟁 종식 화두가 급격히 수면 위로 부상했다. 이런 맥락에서 미 예멘 특사의 오만 방문은 분쟁 종식을 위한 협상 기반 다지기 행보로 풀이됐다. 이란도 나름대로 4월 28일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이 오만에서 모하메드 압둘 알 후티 후티반군 대변인을 만나는 등 예멘 사태의 국면 변화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예멘 후티반군이 지난달 27일 수도 사나 거리에서 트럭에 매달린 채 이동하고 있다. 사나=EPA 연합뉴스

그런데 2월부터 일련의 외교적 해법을 방해하는 사건이 지속되고 있다. 바로 북부 마리브에서 고조되고 있는 후티반군과 예멘 정부군 간 교전이다. 사우디에 망명 중인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예멘 대통령은 후티반군이 거의 장악한 북부에서 유일하게 통치권을 유지하는 이 지역을 반군에 내주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예멘 전문가들은 마리브 전투와 종전 협상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본다. 후티반군은 2월 8일부터 마리브 공세에 나섰는데, 이는 추후 평화 협상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다지려는 의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마리브는 석유 자원의 보고이자 정유시설까지 갖춰 봉쇄에 직면한 후티반군이 확실히 탐낼 만한 지역이다.

하지만 명분과 속내가 어떻든 마리브 전투는 예멘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달 중순엔 하루 동안 무려 9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사우디 언론 아랍뉴스는 4일 “2월 이후 마리브 전투로 인한 양측 희생자가 수천 명에 이른다”고 전하기도 했다.

민간인 피해 확대도 불 보듯 뻔하다. 6년 전 예멘 내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마리브 인구는 2만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예멘 사무소에 따르면 현재 예멘 전체 400만 피란민의 절반인 200만명이 이 지역에 머물고 있다. 물리적 폭력에 노출된 건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보건 위기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실제 2월 유니세프와 세계보건기구(WHO) 등 유엔 기구들은 예멘의 5세 미만 어린이 230만명이 ‘심각한 영양실조’에 놓여 있고, 이중 40만명은 긴급 대처를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지원하고, 사우디가 주도한 장기 봉쇄 여파다.

마리브 전투로 인한 인권 참사가 가중되면 예멘의 위기는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예멘 정부 발표를 보면 2월 27일 하루에만 후티반군은 마리브를 향해 10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렇게 날아간 미사일은 민간인과 군 시설을 구분해 폭격하지 않는다. ‘예멘 데이터 프로젝트’가 집계한 2월 한 달 간 사우디ㆍUAE 주도 아랍동맹의 공습 절반도 마리브에 집중됐다. 국내 피란민 50%가 모여 있는 인구밀집 지역을 볼모로 예멘 전쟁의 두 당사자 그룹이 무차별적인 군사 작전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3월 22일 사우디 측은 후티반군에 ‘유엔 감시’를 조건으로 휴전을 제의했다. 하지만 후티반군은 단칼에 거부했다. 대신 반군이 통치하는 호데이다항과 수도 사나공항의 봉쇄를 해제하고, 조건 없이 물자 유입을 허용하라는 역제안을 내놨다.

예멘 북부 마리브의 수웨이다 난민 캠프에 거주하는 여성과 어린이들. 마리브=AFP 연합뉴스

현재 후티반군 수중에 있는 호데이다항은 익히 알려진 대로 식량과 기본물자의 80%가 들고 나는 예멘의 생명줄과도 같은 곳이다. 미 CNN방송은 3월 10일 르포기사를 통해 연료가 없어 멈춰 선 식량 수송 차량들이 항구 인근에 일렬로 세워진 모습을 보도하기도 했다. OCHA 측은 2월 내내 호데이다항을 통한 연료 수입이 전무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호데이다 봉쇄는 후티반군이 원유 보고인 마리브를 필사적으로 탈환하려는 군사 행동의 좋은 명분이 되고 있다. 2018년 사우디와 UAE가 개시한 호데이다 전투, 그리고 2021년 현재 진행 중인 마리브 전투 모두 이해관계에 매몰된 이기주의가 인도주의 위기로 이어진 비극으로 기록될 것이다.

암울한 징조는 또 있다. 사우디의 예멘 전쟁 지원을 중단하겠다던 바이든 행정부가 4월 UAE에 230억달러어치 무기 수출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무기 제공은 예멘 분쟁 종식 논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물론 해당 거래가 ‘트럼프의 유산’이긴 하다. 미 상ㆍ하원이 거래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킬 정도로 반발이 거셌던 사안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취임 후 줄곧 UAE 무기 수출 건을 고심했지만, 결국 계약을 승인했다. 국제인권단체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미국지부는 성명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의 무기 거래를 유지하면서 무고한 예멘 시민들이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됐다”며 “국제사회 인권 수호에 헌신하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약속과 배치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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