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듣는 검찰총장'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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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 듣는 검찰총장'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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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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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진
황상진논설실장

지난달 29일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가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한 검찰총장 후보들. 김오수(왼쪽부터) 전 법무부 차관,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 구본선 광주고검장, 배성범 법무연수원장. 뉴스1


검찰 독립·중립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
새 검찰총장에 친정권 인물 임명 염두
검찰 장악보다 검찰개혁 적임 택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줄곧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ᆞ중립성 확보를 강조해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하고 공정한 수사”를 주문했던 문 대통령이다. 하지만 수미일관(首尾一貫)하지 않았다. ‘조국 일가 수사’ 이후 정권에 불리한 수사가 이어지자 연일 윤 전 총장과 검찰에 정권 차원의 날 선 공세를 가했다. 겉으론 검찰개혁을 내세웠지만, 속으론 수사 차단 효과를 노렸다. 비주류 검사들의 요직 기용으로 윤 전 총장을 고립무원으로 만들고, 직무정지 및 징계 청구, 검찰의 ‘공소청’ ‘수사청’ 분리 등으로 압박했다. 조국 사태 이후 정권 말기가 가까워질수록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검찰개혁과의 연관성이 희미해졌다. 검찰개혁은 윤 전 총장과 검찰에 대한 압박이 강화하면서 정치적 보복으로 성격이 변질됐다.

그러나 검찰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과제다. 검찰은 공정하고 인권친화적인 수사기관으로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검찰개혁은 검찰의 수사권ᆞ기소권 오남용에 의한 폐해를 국민 상당수가 목도하며 공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 임기가 1년 남은 지금, 검찰개혁의 본질과 방향성에 대한 정권의 속내에 의심이 생긴다. 문재인 정부가 원하는 건 검찰개혁일까, 개혁으로 포장한 장악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나 국가수사본부 발족은 검찰 권한 분산 및 견제를 위한 제도 차원의 개혁 성과다. 비록 공수처가 정원도 채우지 못한 수사 인력으로 반쪽 출범을 했지만 인력 증원이나 수사력 향상은 시간의 문제일 뿐, 입법적 보완과 수사 경험의 축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비대해진 경찰에 대한 견제도 새 형사사법체계가 안정되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검찰 권한의 제도적 분산ᆞ견제라는 관점의 검찰개혁은 계속 다듬어야 한다. 남은 과제는 정치 권력이 검찰을 활용할 수 없도록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ᆞ중립성을 확보하면서 검찰 조직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인사권ᆞ감찰권으로 문민 통제를 유지하면서도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 있게 수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검찰의 권력 눈치보기로 수사의 공정성이 흔들리고 수사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 과거 권력과 검찰의 결탁이 빚어낸 흑역사의 반복이다.

차기 검찰총장이 곧 임명된다. 말로는 검찰개혁에 적합한 인물을 찾는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말 잘 듣는 검찰총장’에 대한 분석과 전망만 나오는 데도 반박하는 여권 관계자는 보이지 않는다. 누가 임명되든 ‘말 잘 듣는 검찰총장’은 있을 수 없다. 수사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진술과 증언, 증거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법이다. 더구나 검사는 한 명 한 명이 독립된 수사기관이다. 그런 검사 2,300명을 친정권 성향 검찰총장 한 명을 통해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망상이다. 검찰총장을 친정권이냐 아니냐의 잣대로 보는 건 애초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ᆞ중립성 확보엔 관심조차 없다는 이야기나 진배없다. 후보군에 들지 못한 검찰 간부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유임시키려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걸 보면 검찰 통제에 대한 정권 차원의 강한 미련이 느껴진다. 검찰 독립성ᆞ중립성 운운하던 정권으로선 창피한 노릇이다. 문재인 정부답지 않다.

누가 검찰총장이 되든 검찰개혁 추진은 피하지 못한다. 권력형 사건이 터지면 어떤 검찰총장도 수사 제어는 하지 못한다. 공정과 정의를 강조하는 정권이면 누가 자신들의 호위무사가 될지가 아니라 누가 검찰 구성원들과 함께 검찰개혁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지만 생각하면 된다. 그것이 문재인 정부다운 당당한 태도이고 선택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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