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키 백악관 대변인 "일괄타결, 전략적 인내 아냐"
‘무모했던 트럼프도, 주저하던 오바마도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100일 대북정책 검토 결과는 ‘실용’과 ‘외교’를 강조하는 제3의 길이었다. 하지만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낼 유인책은 없었다. 구체적 로드맵도 제시되지 않았다. 북한을 압박하는 제재도 당장 풀 생각은 아니다. 북한이 껄끄러워하는 인권 문제도 꺼냈다. 북한은 하루 만에 “대단히 큰 실수”라는 반응으로 신경전을 시작했다. 바이든식 대북정책의 윤곽은 드러났지만 성과를 내기까지는 넘어야 할 고비가 많아 보인다.
① 美, ‘실용ㆍ외교’ 강조 대북정책 던졌지만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브리핑 도중 ‘행정부가 대북정책 검토를 마쳤느냐’는 질문에 “북한정책 검토를 마쳤다고 확인한다”고 답했다. 그가 설명한 대북정책 기조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가 유지된다고 했다. 이어 “이전 4개 행정부(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의 노력에도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우리의 정책은 (트럼프식) 일괄타결 달성에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며 (오바마식) 전략적 인내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역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갖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등 4개 항에 합의했다. 그러나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2차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제재 ‘빅딜’ 방안을 고수하다 회담이 결렬된 뒤 성과 없이 임기를 마무리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임기 초 북미대화를 시도하다 북한이 핵ㆍ미사일 도발에 나서자 압박하며 기다리는 전략적 인내로 돌아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두 전임 대통령의 대북정책 오류를 극복하고 균형점을 찾겠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외교와 실용이다. 사키 대변인은 “우리의 정책은 북한과의 외교에 열려 있고 (외교를) 모색하는 조정되고 실용적인 접근법”이라고 밝혔다. 북핵 위협에 ‘외교와 단호한 억지(deterrence)’로 대처하겠다던 지난달 28일 바이든 대통령의 의회 연설 연장선상이다.
② 대북정책 공개 형식도, 내용도 모두 문제
1월 20일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이 100일 만에 대북정책을 내놓은 것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주 국무ㆍ국방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검토 결과를 보고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발표 형식부터 의아했다. 에어포스원 기내 브리핑에서 질문이 나오자 대변인이 대북정책 얼개를 공개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내용도 구체적이지 않았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단계 합의에서 북한에 경제제재를 완화해주고 달성하기를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알려주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대화의 출발점이 무엇인지, ‘최종적이고, 완전하고,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장기 목표에 이르기 전 중단기 목표가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WP는 “미국이 제시할 제안의 구체적 내용이 불분명하다”라며 “미국 관리들은 새 전략이 (북미대화에 먼저 나서지 않는다는) 북한 정권의 단기 계산을 바꿀 것 같지는 않다고 인정했다”고 전했다. 대북정책 검토를 조기에 완료했다는 메시지 정도로 북한의 도발을 방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게다가 미국은 대북제재는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북한이 민감해하는 인권특사도 검토하고 있다. 미중관계와 남북관계 모두 최악인 상황이라 북미 사이 중재자 역할을 할 국가도 없다는 게 문제다. 프랭크 엄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테이블로 오면 작동할 수 있는데 문제는 어떻게(how)”라고 전망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도 싱가포르선언 등 기존 북미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혀 북미대화 재개를 위한 기본 수위는 제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9년 하노이회담 결렬 시점부터 이야기해보자는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현상유지에 안주하지 않고 협상으로 상황을 풀겠다고 나섰다는 점 자체도 긍정적인 대목이다.
③ 긴장 수위 높일 北…美 대응 수위가 관건
그러나 북한은 2일 미국에 견제구부터 던졌다. 권정근 외무성 미국국장은 이날 담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와 억지’ 의회연설을 거론하며 “확실히 미국 집권자는 지금 시점에서 대단히 큰 실수를 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주장하는 ‘외교’란 저들의 적대행위를 가리기 위한 허울 좋은 간판에 불과하며 ‘억제’는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기 위한 수단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또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서는 미국의 북한 인권 상황 거론을 “최고 존엄 모독”이라며 반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노동당 8차 대회 때 “북미관계 수립 열쇠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라고 제시한 상태다. 미국이 움직이지 않을 경우 북한은 3월에 잇따라 발사했던 순항미사일이나 단거리 탄도미사일보다 수위를 높여 미국을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장거리 무기를 꺼내거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에 나서는 식이다.
21일 한미정상회담 등 상황을 관망하며 대남 압박에 집중하는 것도 북한 시나리오 중 하나다. 결국 한미 간 대북정책 인식 간극을 좁히고, 북한의 비핵화 실천과 그에 상응해 안겨줄 조치의 조합 안을 정교하게 짜는 것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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