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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은 내 덕, 손실은 네 탓

입력
2021.04.30 19: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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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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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3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한 청원이 올라왔다. 제목은 “비트코인 좀 그만 건드리세요. 한국 20, 30대 남자들은 평생 노예로 살아야 합니까?”였다. 해당 청원의 내용은 당시 시점의 가상화폐 폭락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과격한 변동성 때문에 시점을 명확히 하는 게 좋겠다. 하여튼 청원을 올린 사람은 대단히 절박해 보였다.

그가 말하기로는, 대한민국 청년들 대부분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코인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돈으로 집을 사는 흙수저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그는 정부가 LH는 신경 안 쓰고 코인판만 무너뜨리고 있고, 은성수 위원장의 망언으로 청년들의 통장 잔고를 작살낸다고 선언했다. 그 내용대로라면 우리 사회는 코인 빼고는 계급 상승의 사다리가 전부 망가져 있는 상태였다. 3만 명이 넘는 사람이 그 청원에 동의했다.

정말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발언 때문에 비트코인이 20% 폭락했을까?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제롬 파월이 “가상화폐가 투기적 자산에 가깝다”고 비난했던 2021년 3월 22일 비트코인은 3,000달러 정도 떨어졌다. 달러를 무제한으로 복사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진 파월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비트코인 가격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의 비트코인 폭락 원인은 가상화폐 파생상품의 계좌가 강제 청산된 것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비트코인의 급등세에 힘입어 수많은 미국 투자자들이 레버지리를 끌어다가 비트코인 파생상품에 투자했다. 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파생 계좌들이 청산되었고, 비트코인이 자동으로 처분되면서 가격이 순식간에 폭락했다는 것이다. 사실 22일 은성수 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바로 팔았으면 폭락 직전에 탈출할 수 있었다.

국가가 나서서 거래소 앱에서 매도 버튼을 뽑은 게 아니고서야, 증권 시장에선 손실도 이득도 투자자 책임이다. 단기 매매자들은 본래 인간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기계적으로 매매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것으로 안다. 폭락하는 동안에 기계적 손절을 안 했으면 그건 투자자 잘못이다. 블록체인의 가치를 믿고 장기 투자를 한다고 치자. 그럼 아무 상관도 없다. 가상화폐의 내재적 가치를 확신한다면, 장기적으로 그 가격은 우상향한다는 신념이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조정은 블록체인의 장엄한 역사 속에 순식간에 잊힐 가벼운 파장에 불과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싼값에 코인을 매집할 수 있는 즐거운 이벤트이리라.

전설적인 월가의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는 말했다. “수익을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은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 자연스럽게 치유된다”고. 그만큼 증권 시장에서 폭락은 일상다반사라는 뜻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치유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어떤 사람은 코인 같이 변동성이 높은 위험자산에 가진 현금을 모조리 쏟아부은 다음, 자기가 수익을 올리면 자신의 지혜 덕이고 자기가 손실을 보면 남이 시장질서를 교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내가 속한 2030세대가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는 건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든 싫든 우리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고, 그 시스템에서 개인이 생존 방법을 찾아 분투하는 장면은 아름답기도 하다. 하지만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는 아름답지 않았다.



심너울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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