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좋아하던 아들, 만화 본 후 "남자는 파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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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좋아하던 아들, 만화 본 후 "남자는 파란색"

입력
2021.05.03 11:00
수정
2021.05.3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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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 빠지다


편집자주

아이들의 우주는 무한합니다. 여기에 알록달록 다양한 빛깔을 더해줘야 할 동화책과 교과서, 애니메이션이 되레 이 세계를 좁히고 기울어지게 만든다면요? 한국일보는 4회에 걸쳐 아동 콘텐츠의 '배신'을 보도합니다.


'꼬마버스 타요'에 여성 자동차로 등장하는 '하트'의 색상은 분홍색이다. 한 아동이 '여성=분홍색'으로 상징화된 해당 영상을 보고 있다. 박주희 기자

분홍색을 좋아한다던 아들이 어느 순간 말했다. "남자는 파란색 해야 해. 분홍은 여자 색깔이야."

동화나 만화를 보던 아이가 혼란스러워한다. "(모두 남자가 대장인데) 엄마, 여자도 대장 할 수 있지 않아?"

색깔 구분에 질린 엄마가 아이에게 애써 설명했다. "남자 것 여자 것 따로 없어." 그랬더니 남편이 불쾌해하고 예민한 엄마로 보이는 느낌이 들어서 싫었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이 영유아 및 초등학생 부모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나온 답변이다. 상당수 부모들이 어린이 콘텐츠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불쾌감과 난감함, 걱정을 토로했다.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있는 쥐 부부의 모습. 동물조차 남편 쥐는 파란색, 부인 쥐는 분홍색 옷을 입고 있다. '까치의 겸손'(통큰 세상) 캡처

어린이 콘텐츠 분야별로 최대 57%가 성별 고정관념·차별 등을 본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해야 한다고 서술한 이들도 일부 있는 것으로 볼 때, 고정관념과 차별을 보고도 인식을 하지 못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녀가 성역할 고정관념이 포함된 콘텐츠를 접한 후 취향 등이 바뀌기도 했는가'라는 서술형 질문에는 색상 문제에 대한 토로가 많았다. "아들이 분홍색을 피한다"거나 "핑크를 좋아하던 아들이 차츰 놀림을 당하면서 강제로 파랑을 좋아하는 느낌", "아들이 '분홍색은 여자 색이다, 나는 분홍색 옷을 입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등 남자아이들이 '분홍 기피'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반대로 여자아이들은 분홍색을 선호하게 되고, 레이스가 달린 이른바 공주풍 물건을 찾으면서 파란색을 피했다고 전했다.

아동콘텐츠의 차별 문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그래픽=강준구 기자

한 응답자는 "첫 아이와 달리 미디어 노출을 최소화한 둘째는 여자아이지만 로봇을 좋아하고 드레스 대신 활동성 있는 옷만 입으려고 한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이의 타고난 성향도 있겠지만 미디어에 의한 성역할 고정관념이 분명 영향이 있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성역할에 대해 한 응답자는 "아빠만 돈 버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이 상황이 된다면 같이 돈을 버는 것이고 부엌일은 여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것이니 함께 준비해서 먹고, 치우면 더 맛있고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된다고 얘기해 준다"고 편견을 줄이려는 노력을 설명했다.

부모들의 한탄은 설문 답변지를 가득 채웠다. 문제의 아동 콘텐츠를 접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묻자, "우리나라 아직 멀었구나" "불쾌하다, 아이가 이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일까 봐 걱정된다"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앞으로도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고정된 역할과 태도를 요구받겠구나 하는 생각에 착잡했다" "내딸이 나와 똑같은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됐다"등의 답변이 줄을 이었다.


로봇도 색구분을 피해갈 수 없다. 도서 '브리태니커 만화백과 사춘기와 성'에서 성교육을 위해 등장한 로봇 엑스와 와이 역시 각각 빨강과 파란색이다. '브리태니커 만화백과'(미래엔) 캡처

한 부모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나 생각하게 된다. 특히 '분홍색=여자'는 타고난 걸까라고도 생각하게 됐다"라고 자포자기한 심정을 전했다. 다른 응답자는 "아이가 레고, 로봇을 좋아하는데, 로봇 애니메이션이나 장난감은 폭력적인 측면이 있는 데다가 여성들은 보조적인 캐릭터로만 나온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관련 애니메이션이나 장난감을 아예 멀리할 수도 없고, 답답하다"라고 했다.

부모들은 아동 콘텐츠를 제작할 때 주의해야 할 점으로 성별 역할뿐아니라, 소수자의 등장 비율이나 묘사에 대해서도 편견 없는 모습을 담기를 바랐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주입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인은 힘이 없고 허리가 구부정한 모습, 장애인 모습의 부재, 여남용을 표기하고 제한된 색으로 구분 등의 고정관념 재생산과 확대를 피해야 한다" "성별이나 장애 등에 대해 대놓고 혐오 표현을 사용하기는 쉽지 않지만 사소하고 일상적인 묘사일수록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조손가족도 있고, 아빠만 있거나 엄마만 있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데 늘 4인 가족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등의 답변을 했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소수자가 작품 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진짜 다양성이 반영되는 것"이라면서 "등장 인물의 약자적 현황이나 차별을 전시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한 응답자는 취재팀에 이런 글을 남겼다. "두 딸을 둔 엄마인데요, 아이가 좋아하고 친구들도 좋아하는 것이니 보지 못하게는 못하지만, 보고있자니 성역할 고정관념이나 외모비하 등 아이에게 너무 유해합니다. 정말 취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싣는 순서> 뒤로가는 아동콘텐츠

<1>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 빠지다

<2> 모욕을 주는 성교육

<3> 재미로 포장된 외모비하

<4> 차별 없는 아동콘텐츠를 위해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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