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선 캠프에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폴 매너포트가 탈세 혐의로 2018년 8월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의 로비 활동에 대한 대가로 수백만 달러를 차명으로 만든 법인과 계좌를 통해서 입금했다. 이 계좌들은 키프로스와 세이셸 등 다양한 지역에 개설됐다. 매너포트는 외국 은행 계좌가 없다고 세무사들과 미국 정부에 반복적으로 보고했다.
불공정한 숫자들 중에서
매너포트의 범죄는 평범한 탈세다. 그러나 조세정의를 연구하며 세계은행과 유엔(UN)에 자문해온 경제학자 알렉스 코밤은 이 단순한 범죄에서 세계 경제를 파괴하고 빈곤층을 억압하는 마술상자를 찾아냈다. 마술상자는 부자들의 돈을 숨겨버린다. 국가가 과세할 수 없게 만든다. 또 빈곤층의 존재를 기록에서 지워버린다. 도움을 요청할 수 없도록 만든다. 권력자와 기득권층이 사랑하는 마술상자의 이름은 통계다.
우리 시대의 통계는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불공정하다. 문제는 세계인이 그 사실을 거의 모르는 점이다. 권력이 통제하는 정부가 자원을 배분하며 통계를 근거로 들 때 정당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는 희미하다. 숫자를 누가 어떤 의도로 어떻게 집계했는지 묻지 않는다. 어떤 정보를 수집할지 정하고, 집계하는 모든 과정이 작성자에게 달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불공정과 불평등을 무심코 받아들인다.
예컨대 아일랜드는 통계상으로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총생산(GDP)이 가장 빠르게 늘어난 국가였지만 국민의 삶은 그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통계가 왜곡됐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는 2017년 애플 아이폰을 수출해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고 집계됐는데 실제로는 단 1대도 수출하지 않았다. 아일랜드가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피난처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잘못된 통계는 집계되지 않는 돈(언머니·unmoney)과 집계되지 않는 사람들(언피플·unpeople)을 만든다. 언머니는 세계적 금융 비밀주의 관행에서 만들어진다. 이 관행은 힘이 있는 개인과 기업이 국가의 법과 의무를 벗어나도록 돕는다. 국경을 넘나드는 돈은 각국의 감시망을 손쉽게 벗어난다. 매너포트처럼 가짜 이름을 쓰는 간단한 수법만으로도 정부의 감시망을 피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12년 기업들이 세계에서 거둔 수익의 25~30%가 실제로 발생한 지역이 아닌 곳에서 신고됐다. 물건을 판 나라와 세금을 내는 나라가 달랐다. 최근의 연구들은 각국의 세수 손실이 한 해 1,000억 달러에서 6,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기업이 망가뜨린 환경을 복구하는 비용, 기업이 이용한 도로를 보수하는 비용 모두 세금으로 충당한다.
언피플은 정치적 이유로 탄생한다. 권력은 집계하지 않음으로써 한 집단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국가적 인구통계를 내면서 소수민족을 표시하는 공간을 없애는 식이다. 소득에 따라 인구를 구분하는 단계를 단순화한다면 극빈층의 실태를 숨길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원할 이유도 없다.
기만은 선진국에서도 벌어진다. 미국에서는 뉴욕시 경찰국처럼 거대 경찰국들이 ‘체포 중 사망’ 정보의 수집을 거부했다. 집계하지 않으면 사망자도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1950년 이후 인구통계에서 사라졌던 응답자의 미국 시민 여부를 묻는 문항을 되살리려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온 소수민족들이 응답을 피할 가능성이 높다. 인구가 적다면 지원금도, 의석도 사라진다.
통계를 의심하라. 그리고 재설계하라. 알렉스 코밤은 ‘우리가 사는 세상 위원회’라는 개념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금까지 발표된 모든 통계를 잊어버리자. 세상을 새롭게 집계한다고 가정해보자. 위원회는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방식의 통계를 제안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도, 어떤 집단도, 어떤 돈도 누락되지 않는 통계, 세상을 적절하게 담아내는지 모든 순간 스스로 점검하는 통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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