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떠돌던 '누렁이', 19명의 시민이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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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떠돌던 '누렁이', 19명의 시민이 살렸다

입력
2021.04.2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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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을 떠돌던 누렁이(원 안)는 사람은 경계했지만 다른 반려견과 노는 것을 좋아했다. 제보자 김모씨 제공


산책로를 걷다 발견한 떠돌이개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힘을 합쳐 도와준 이들이 있다. 떠돌이개는 사람을 경계했지만, 산책 나온 반려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장난끼 많은 개였다. 떠돌이개가 안쓰러웠던 시민들은 오픈 채팅방에 모였고, 비용을 모아 보호자를 찾아주기 위한 전단지를 제작해 붙였다. 이들은 구청도 실패했던 떠돌이개 구조에 착수했다. 시민 19명이 구조한 개 '누렁이'의 사연이다.


2월 말부터 청계천 산책로를 떠돌던 개

청계천을 떠돌던 누렁이가 한 달여 만에 시민들의 도움으로 구조됐다. 제보자 김모씨 제공

서울 성동구에 사는 김모(35)씨는 지난달 초 청계천 산책로에서 반려견과 산책 도중 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를 발견했다. 몸집은 작지 않았지만 외모나 하는 행동으로 볼 때 나이는 많지 않아 보였다. 김씨는 "털 상태가 깨끗하고 다른 개와 노는 걸 유독 좋아하는 것으로 보아 보호자를 잃어버렸을 가능성이 컸다"고 짐작했다.

김씨는 보호자를 찾아주기 위해 유기동물 입양과 분실동물 정보를 제공하는 반려동물 애플리케이션(앱) 포인핸드에 개 소식을 올리려던 중 이미 2월 말부터 같은 개의 목격담이 여럿 올라와 있는 걸 확인했다. 김씨는 "목격담 글에 다는 댓글을 통해 개를 돕고자 하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며 "목격담을 올렸던 시민이 오픈채팅방을 열면서 개의 보호자나 임시보호자를 찾아주자는 얘기가 구체적으로 오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보호자 찾기 위해 붙인 수백여 장의 전단지

19명의 시민들은 보호자나 임시보호자를 찾는 일이 시급하다고 보고 가장 먼저 전단지를 제작해 개가 주로 다니는 길에 붙였다. 제보자 김모씨 제공

떠돌이개 구조를 위해 오픈채팅방에 모인 인원은 19명. 행여라도 개가 굶을까 매일 개가 주로 나타나는 지역에 밥을 놓아주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었다. 직접 구조 하려 했지만 워낙 사람을 경계하는 탓에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이들이 모인 지 1주일 만인 지난달 10일, 가장 먼저 한 일은 보호자나 구조 후 임시보호자를 찾는다는 내용의 전단지를 제작한 것이다. 개의 활동범위가 성동구 마장동부터 한양대에 이르기까지 워낙 넓었는데, 주로 목격되는 살곶이체육공원부터 상왕십리역 구간 2㎞의 거리에 수백여 장의 전단지를 붙였다.

더 지체할 순 없다… 지원 나선 구조전문단체

청계천 떠돌이개가 산책 나온 개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제보자 김모씨 제공

전단지를 붙인 지 1주일이 지났지만 보호자나 임시 보호하겠다는 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 유기견 신고가 접수된 동대문구청도 떠돌이개 구조를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다는 소식에 이들의 마음은 더 급해졌다.

구청이 포획하면 위탁 보호소인 경기 양주시 동물구조관리협회(동구협)로 보내지는데, 믹스견인데다 10㎏이 넘는 몸집이라 입양처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이들은 구조한 개를 우선 지자체 보호소로 보내고,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APMS)에 열흘간 공고하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포획틀 안에 멍하게 앉아 있는 떠돌이개. 제보자 김모씨 제공

이들은 십시일반 구조비용을 모으고 임시보호자를 수소문했다. 지난달 19일 임시보호를 하겠다는 가정이 나타나자마자 동물구조전문단체 '리버스'에 도움을 요청했다.

순둥이 누렁이, 2시간 만에 바로 구조

김용환 리버스 공동대표가 구조된 개를 안정시키기 위해 이동장에 옮기기 전 쓰다듬고 있다. 리버스 제공

지난달 21일 낮 12시 떠돌이개가 주로 나타나는 한 아파트 건너편 공원에 울타리 형태의 녹색 포획틀이 설치됐다. 포획틀 안에는 평소 개가 즐겨 먹는 사료를 놓아 두었다. 김용환 리버스 공동대표는 녹색 철망 포획틀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주변 운동장, 체육시설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재질이라 개들의 경계심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포획틀을 설치하는 데 2시간이 걸렸다. 개는 평소 밥도 먹고, 다른 개와 자주 놀던 지역에 새로운 물건이 설치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하지만 특별히 경계심은 없었고, 포획틀이 설치된 지 2시간이 지나자 사료를 먹기 위해 포획틀 안으로 들어왔다. 약 1개월간 시민을 애태우던 떠돌이개의 구조는 그렇게 끝났다.

김 대표와 구철민 리버스 공동대표가 구조 후 처음 한 일은 포획틀 안에 멍하니 앉아 있는 개를 기다려주는 것이었다. 이후 손이 닿을 듯 말 듯 천천히 다가간 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김 대표는 "개가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사람을 공격할 마음이 없고 너무 착한 순둥이였다"며 "말도 걸고 쓰다듬어 주면서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포획은 끝이 아닌 시작… 보호자를 찾다

임시보호 가정에서 지내는 누렁이. 제보자 김모씨 제공

시민들은 원래 개를 임시보호자 가정에서 돌보며 입양처를 찾아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구조된 유기견은 지자체 보호소로 이동, APMS에 열흘간 공고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때문에 구조한 개를 우선 동구협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은 개가 동구협 보호소보다 임시보호가정에서 지낼 수 있길 희망했고 방법을 찾던 중 동물단체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동행)'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동행은 해당구청과 APMS에 공고를 올리되 임시보호가정에서 지낼 수 있도록 협의를 했고, 개는 하루 만인 22일 지자체 보호소를 나올 수 있었다. 구조 후 건강검진차 방문한 동물병원에서는 개가 한 살 안팎의 강아지임을 확인했다. 현재 입양을 전제로 한 임시보호자 가정에서 '누렁이'라는 이름으로 지내고 있다.

누렁이는 입양을 전제로 한 임시보호가정에서 적응중이다. 제보자 김모씨 제공

최미금 동행 이사는 "누렁이 구조는 시민들이 떠돌이개라고 외면하지 않고 보호자를 찾는 일부터 구조작업, 입양자를 찾는 일까지 힘을 합쳤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시민들의 자발적 협업과 구청의 유연한 대처로 한 생명을 구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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