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갤러리처럼 바뀐 50년 된 서울 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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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갤러리처럼 바뀐 50년 된 서울 구옥

입력
2021.04.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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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집은 ‘사고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이웃의 시선을 피해 동쪽으로 높은 창을 냈다. 집과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는 높은 계수나무가 액자처럼 창에 걸린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갤러리 같은 집’은 애당초 모순적이다. 지난달 완공된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갤러리 하우스’는 갤러리처럼 아름답게 꾸민 집에 살고 싶으면서도, 가족과의 오붓한 삶은 포기할 수 없는 오수정(39)·백영규(40) 부부와 아들(7)의 모순적이어서 매력적인 집이다. 부부는 50년 가까이 된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개축+증축)하면서 ‘신축 같은 리모델링’을 원했다. 부부는 “단독주택에 대한 오랜 꿈보다는 걱정이 앞섰다”라며 “고친 흔적 없는 살기 편한 예쁜 집을 원했다”고 말했다.


달랑 벽 2개만 남겼다

목동에서만 40년간 살아온데다 아이의 교육 문제 등으로 동네를 벗어나기 어려웠던 부부는 1년여 전 기존 30평대 아파트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단독 주택을 알아봤다. “5억원 이하의 집을 구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다들 코웃음을 쳤어요. 이 동네에 그런 집은 없다고요. 그러다 이 집을 소개받았어요. 오래되긴 했지만 위치도 좋았고, 저렴하게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부부가 구옥을 사서 고치는 데 들어간 비용은 인근 비슷한 크기의 아파트 매매가격보다 낮다.

1970년대에 지어진 구옥이 있던 땅은 현행 법규상 신축을 하기 어려웠다. JY아키텍츠 제공

하지만 싼 이유가 있었다. 구옥이 있던 땅(대지면적 116㎡, 건축면적 61.98㎡)은 신축하기가 어려웠다.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탓에 진입부가 좁은데다 신축할 경우 현행 법규상 주차 공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집이 더 작아질 공산이 컸다. 설계를 맡은 원유민 건축사(JY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소장)는 “진입로를 딱 20㎝만 더 확보할 수 있었어도 신축을 검토해봤을 것”이라며 “신축이 어려워 가장 적극적인 리모델링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주차 공간은 과감히 포기하고, 법적 제한인 50㎡ 미만으로 증축하기로 결정했다.

구옥에서 달랑 벽 2개만 남기고 철거했다. 기초공사부터 새로 했다. “리모델링 허가를 받을 때 어디까지 철거를 해야 한다는 정해진 기준이 뚜렷하지 않아요. 아마 이 집은 서울 시내에서 가장 폭넓게 리모델링을 해석한 사례일 거예요.”(건축사)

법이 허용하는 선(50㎡ 미만)에서 최대한 면적을 확보해야 했다. 건축사는 단층집을 수직으로 다락이 있는 2층집(연면적 74.51㎡→109.76㎡)으로 늘렸다. 다만 층마다 바닥을 꽉 채우지 않고 필요한 면적만 확보하고 나머지는 뚫린 공간으로 만들었다. “제한된 면적으로 층마다 꽉 채울 수 없기도 했지만 작은 집을 시각적으로 혹은 체감적으로 넓게 하려면 내부에 열린 공간이 필요했어요.”(건축사) 집은 1층 중심에서 다락까지 막힘 없이 연결된다. “아파트에서는 하나의 평면으로 연결돼 있던 기능을 이 집에서는 수직으로 쌓아 연결하려고 했어요. 계단으로만 연결되는 게 아니라 시각, 청각, 공감각적으로 연결돼야 하나의 집으로 작동할 수 있으니까요.”(건축사)

높이 6m가 넘는 창과 2개의 긴 천창도 집을 넓어 보이게 하는 데 한몫한다. 이웃과 맞닿은 남향으로 창을 내지 않았어도 채광과 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1층에서부터 2층 천장까지 이어지는 높은 창 너머에는 바로 옆 아파트 단지의 높은 계수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아파트 단지와 집 사이 1m 남짓한 사이 공간에는 부부가 에메랄드 그린, 장미, 매화 등 다양한 묘목을 직접 심어 가꾼 ‘미니 정원’이 있다. 이웃과의 좁은 거리에 나무와 꽃을 심어 아름다운 경계를 만들었다. 시시각각 천창으로 쏟아지는 빛과 그림자도 공간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이 집은 전망이 없는 집 같지만 전망이 많은 집이에요.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거든요. 시간이나 날씨에 따라 흰 벽에 비춰지는 색감이 달라요. 아침에는 푸르스름하게, 낮에는 따뜻하게, 저녁에는 어스름하게 변해요. 비가 오면 천창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아름다워요. 그냥 앉아만 있어도 좋고, 눈을 떠도 좋고, 감아도 좋아요.”(오수정)

집의 중심은 1층 식사 공간이다. 창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차지한 널찍한 테이블은 마치 원테이블 레스토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집은 1층에서 다락까지 수직으로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된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매일이 갤러리 같은 집

집의 중심은 1층 식사 공간 겸 주방이다. 마치 갤러리처럼 살짝 어두운 현관과 복도를 지나 들어가면 빛이 쏟아지는 높은 천창과 커다란 창 아래 환한 공간이 극적으로 등장한다. 시야를 어지럽히는 삶의 흔적 대신 절제된 디자인 가구들이 눈길을 끈다. 북유럽 디자이너 한스 베그네르의 오리지널 의자와 6인용 타원 테이블이 널찍하게 놓여 있다. 창과 마주한 벽 콘솔에는 화병과 그림, 디자인 조명이 조화를 이룬다. 테이블과 나란히 배치된 대형 아일랜드 키친과 주방은 카페 같은 느낌을 준다. 자질구레한 주방용품 등을 수납장 안으로 정리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짐에 맞게 수납함 사이즈를 정하고, 수납함 치수에 맞는 수납장을 짰다. 덕분에 정리 정돈도 쉬워졌고, 쓰는데도 불편함이 없다.

“아파트는 거실과 주방이 정해져 있지만 이 집은 우리의 삶에 맞게 공간을 배치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아파트에서 거실 소파에 잘 앉지 않잖아요.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거실을 좁게 쓰는 게 불편했어요. 오히려 식탁에서 밥 먹고, 일하고, 얘기를 많이 하죠. 집 지으면서 원 테이블 레스토랑이나 카페처럼 식사 공간이 집의 중심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층 '미니 거실'은 TV를 두지 않는 대신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부부의 방에는 가벽을 활용해 드레스룸과 침실을 분리했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2층 아이 방에는 모서리 창을 내어 풍경을 담고 답답함은 덜어냈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사이즈를 줄인 ‘미니 거실’은 2층으로 올렸다. 2인용 소파와 디자인 조명, 투명 수납장이 전부다. 거실이라기보다 갤러리 전시장 사이의 쉬어가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정면으로는 1층에서부터 이어진 큰 창이 보이고, 소파에 앉으면 높은 나무의 잎사귀들이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아파트 거실에 앉으면 정면에 TV가 있는 게 아쉽더라고요. TV와 소파 사이의 공간도 낭비고요. 여기는 넓은 공간이 없어도 확 트인 시야를 누릴 수 있죠.”

방은 최소한의 기능만 남겼다. 부부의 방은 가벽을 활용해 드레스룸과 침실을 분리했다. 침실은 침대 하나로 가득 찼다. 아이의 방은 모서리 창을 내어 답답함을 줄였다. 방에서 사다리를 타고 다락으로 올라가는 통로를 내 재미를 더했다. 다락을 통해 옥상이 나온다. 아파트에서 못 했던 바비큐 파티를 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텃밭도 만들었다.

제한된 면적 내에서 최대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다락을 활용했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40년간 아파트에서 살아온 부부에게 옥상은 아파트에서 못했던 텃밭과 바비큐 파티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건축주 부부는 집의 외부에도 섬세하게 신경을 썼다. 외부에 조명을 넣어 상업공간 같은 효과를 냈다. 부부는 "늦은 밤에도 불이 들어와 있는 집을 보면 '아 내 집 너무 예쁘다'라는 감탄이 나온다"고 했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가족들은 이사 후 집에 대한 애정이 크게 늘었다. 바깥에서 놀기 좋아했던 아이는 다락에서 친구들과 노느라 두문불출이다. 청소를 좋아하지 않았던 남편은 수시로 바닥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다. 집에 대한 아내의 애정은 각별하다. “20대 때 독일 여행 중에 한 갤러리에 간 적이 있었어요. 그 공간에 들어갔을 때 분위기와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경외감이 들고, 뭔가 벅찬 감정이 들었어요. 그 장면에 내가 있는 게 마치 사진처럼 각인됐죠. 이 집에 살면서 10년 전에 느꼈던 그런 느낌이 들어요. 사람들이 좋은 공간과 분위기를 찾아서 일부러 예쁜 카페나 갤러리를 찾아가잖아요. 저에겐 이 집에 사는 매일이 그래요.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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