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진돗개의 날
천연기념물 53호인 진돗개가 일제강점기를 버텨 혈통을 이어온 배경에 모리 다메조(森爲三)라는 일본인 동식물학자가 1938년 5월 3일 총독부 천연기념물로 등재시키는 데 힘쓴 덕이 크지만, 그의 의도가 일본개 기주견과 흡사한 외형의 진돗개를 부각함으로써 '내선일체'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기 위해서였다는 설이 정설처럼 알려져 있다. 풍산개, 동경개 등 다른 토종 견종들이 일제의 '야견박살령'으로 무차별 살처분됐고, 중일전쟁 이후 개가죽이 군복에 쓰이면서 극에 달했다는 것도 그 설을 뒷받침하는 사실로 거론된다.
반론도 있다. 일제가 조선의 야견(野犬), 즉 유기견을 공권력까지 동원해 살처분한 것은 중일전쟁 훨씬 이전부터였고, 개에게 물려 다치거나 광견병에 걸리는 사례가 빈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살육의 와중에 다메조가 진돗개 천연기념물 등재 신청서를 내며 적은 한 구절- 진도개와 일본개와의 관계는 한일 민족의 유래와 발전 즉 내선일체를 말하는데 유력한 자료가 되고-도, 동물 연구자로서 어떻게든 당국의 승인을 얻고자 한 노력 끝에 써넣은 문장이라는 해석. '일제 쇠말뚝' 괴담처럼, 진돗개의 조선 지배 이용설도 반일민족주의에서 비롯된 편협한 왜곡일 수 있다는 것이다. 36년 일제 치하에서 한국은 일제의 의도나 목적이 뭐든, 일본 근대과학의 세례를 경험한 건 사실이다. 한국 토종 식물들의 학명에 일본인 학자 이름이 기록된 건 숱하게 많다.
해방 후 한국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으로 진돗개를 천연기념물로 재지정하며 '한국 진도개 보호육성법'을 제정했고, 전남 진도는 진도개보호지구가 됐다. 진도의 모든 개는 법과 조례에 따라 혈통·체형 심사를 거쳐 등록되고, 탈락하면 거세, 도태, 반출된다. 진돗개를 반출하거나 다른 견종을 반입하려면 군수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혈통 보존' 중심의 진돗개 관련법과 정책이 오늘날의 애견 문화와 어떻게 조화할 수 있을지 개선 여지는 없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오늘은 진돗개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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