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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시청자를 매혹시킨 멕시코산 막장드라마

입력
2021.04.24 10: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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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넷플릭스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멕시코 드라마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는 억울한 옥살이를 한 알렉스가 출소 후 18년 전 동생 사라를 죽인 범인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넷플릭스 제공

멕시코 드라마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는 억울한 옥살이를 한 알렉스가 출소 후 18년 전 동생 사라를 죽인 범인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넷플릭스 제공

너무 단순한 제목에 오히려 끌려 1화를 보기 시작했다. 여동생 사라를 살해한 혐의로 18년간 복역한 알렉스는 멕시코 최대의 카지노를 소유한 라스카노 가문에 복수를 다짐한다. 한때 절친이었던 로돌프와 체마 형제, 그들의 아버지인 세사르 라스카노는 알렉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다. 감옥에 간 사이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텅 비어 있던 집으로 돌아온 알렉스는 복수를 위한 준비를 한다. 로돌프가 카지노의 CEO로 취임하는 날, 알렉스는 카지노의 시스템을 해킹하여 복수를 예고하는 영상을 파티장에 내보낸다.

18년 전, 알렉스와 여동생 사라는 라스카노 가문의 별장에 놀러 갔다. 사라는 로돌프의 연인이었다. 로돌프와 체마, 알렉스와 사라, 라스카노 가문의 하인인 엘로이는 함께 보트를 탔고 패러글라이딩을 하던 사라의 벨트가 끊어져 호수에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에 옮겨졌지만 사라는 결국 죽었다. 이후 사라의 벨트가 날카로운 것에 잘려 있었음을 경찰이 발견하여 의도적인 살인으로 결론지었다. 사라의 연인 로돌프가 의심을 받자, 세사르는 알렉스에게 대신 자백을 하라고 권한다. 변호사를 쓰면 길어야 1년 정도 감옥에 있으면 되고, 심각한 병에 걸린 어머니를 돌봐준다는 조건이다. 그러나 세사르는 알렉스의 어머니를 방치했고, 알렉스는 20년에서 감형된 18년간 감옥에서 복수의 날을 기다렸다.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1위를 차지한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는 사라의 죽음 뒤에 숨겨진 라스카노 집안의 추악한 비밀을 드러낸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1위를 차지한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는 사라의 죽음 뒤에 숨겨진 라스카노 집안의 추악한 비밀을 드러낸다. 넷플릭스 제공

알렉스가 라스카노 가문에 선전포고를 하자, 세사르는 바로 부하들을 보내 알렉스를 위협하고 폭행한다. 세사르의 막내딸 엘리사가 폭행 현장을 목격하고 병원에 데려다준다. 사라가 죽었을 때, 엘리사는 너무 어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억압적인 세사르를 피해 공부를 핑계로 멀리 떠나 있다가 잠시 멕시코로 돌아온 엘리사다. 그리고 막장드라마의 공식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대로, 알렉스와 엘리사는 사랑에 빠진다.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의 장르는,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텔레노벨라'다. '텔레비전 소설'을 뜻하는 텔레노벨라는 멕시코, 브라질 등 중남미에서 만들어지는 통속 드라마를 말한다. 사랑과 배신, 음모, 불륜이 노골적으로 전개되며 마약 조직이 판을 치는 중남미인지라 총과 마약, 살인이 난무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막장 드라마'인데 폭력의 수위가 조금 더 세다. 멕시코의 텔레비사, 브라질의 글로보TV 등 대형 제작사의 텔레노벨라는 유럽과 중국, 동남아 등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브라질의 '노예 소녀 이사우라(2004)'는 중국에서만 4억5,000만 명이 시청했다고 한다.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는 공개된 후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선정적이고 극단적인 이야기는 언제나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는 통쾌한 복수극보다는 '마라맛' 막장 드라마로 흐른다. 등장인물 모두에게 저마다의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이 밝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넷플릭스 제공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는 통쾌한 복수극보다는 '마라맛' 막장 드라마로 흐른다. 등장인물 모두에게 저마다의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이 밝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넷플릭스 제공

처음에는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를 범죄 드라마로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다. 범인을 알 수 없는 범죄가 있고, 억울하게 누명을 쓴 남자가 있고, 수수께끼와 음모 그리고 복수가 끈적하게 펼쳐지는 범죄 드라마. 보다 보니, 범인이 궁금하기는 한데 단서를 모으고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이 그다지 치밀하지 않다. 알렉스는 복수를 선언하고도 예전 집에 그대로 남아 있다. 당연히 로돌프도, 체마도 모두가 그를 찾아온다. 자신의 정체와 은신처까지 모두 공개하고 엄청난 재벌 가문에 복수를 할 수 있을까? 매춘과 납치, 살인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세사르와 동업자의 행동도 어설프다. 보안도 허술하다. 치밀하고 폭력적인 복수의 과정을 보고 싶었는데, 그보다는 막장의 화려함에 눈을 빼앗겨 보고 있었다.

알렉스는 로돌프가 사라를 죽였다고 생각했다. 시청자에게도 그런 듯 이야기를 끌어간다. 하지만 에피소드가 전개될 때마다, 체마와 세사르 등 인물들의 저마다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를 의심하게 한다. 게이인 체마는 알렉스를 짝사랑했다. 그런 사실을 눈치챈 사라는 세사르에게 알리겠다며 위협을 가한다. 엘로이는 사라를 짝사랑했고 고백도 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하고 조롱당했다. 로돌포와 체마의 어머니인 마리아나는 모든 증거를 은폐했다. 엘로이의 비밀을 알고, 그것을 이용하여 그를 수족처럼 부렸다. 모두에게는 동기가 있고, 기회도 있고, 여전히 의심스럽다.

라스카노 가문의 모든 문제는 세사르에게서 비롯된다. 세사르는 파렴치하고 탐욕스러운 독재자다. 체마가 게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체마의 파트너를 정면에서 모욕한다. 과거의 비밀을 알게 된 엘리사가 반항을 하자 모든 것을 빼앗겠다고 협박한다. 사소한 저항은 용납하지만, 권위에 도전하는 순간 바로 짓밟아버린다. 세사르는 아들의 부인 소피아까지 원한다. 정확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 자신의 연인을 아들과 결혼시킨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든다. 세사르는 가족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며 철저하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소시오패스다. 자신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누구에게나 일상적으로 모욕과 폭력을 행한다.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 속 인물들의 도덕도, 윤리도 무시한 질주를 보고 있자면 전혀 동의하지 않더라도 어쩐지 끌려든다. 넷플릭스 제공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 속 인물들의 도덕도, 윤리도 무시한 질주를 보고 있자면 전혀 동의하지 않더라도 어쩐지 끌려든다. 넷플릭스 제공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의 인물들은 대부분 막장이다. 모두에게 비밀이 있고, 자신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그나마 알렉스와 엘리사 정도가 정상의 범위에 든다고 할 텐데, 복수를 위해 진실을 찾아가는 그들의 행동들도 그리 합리적이지는 않다. 그들은 이성보다 정념에 불타오르며 원하는 것이 보이면 마구 돌진한다. 도덕도, 윤리도 무시하고 질주하는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전혀 동의하지 않더라도 어쩐지 끌려든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고, 그들의 다음 선택을 보고 싶다.

범죄물이라고 생각하면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는 허술하고 초라하다. 하지만 인물들의 격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다. 그들의 수많은 비밀이 과연 어디로 흘러갈지 너무 궁금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보통 1시즌이 만들어진 후에 다음 시즌이 결정된다. 완성도를 보고 바로 결정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는 공개한 후 시청자 반응을 확인한 후의 일이다. 그런데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는 시즌1의 10화가 끝나면 바로 시즌2의 예고편이 나온다. 분명히 인기작이 될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처음부터 시즌2를 함께 만들었다는 것이다.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는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끊을 수 없다. 넷플릭스 제공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는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끊을 수 없다. 넷플릭스 제공

최근 한국 드라마가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텔레노벨라'는 오래전부터 인기 장르였다.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외국인에게 물어보면, 격하고 드라마틱한 감정에 빠져들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떻게 보면 사소하거나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를 극단적으로 치고받으며 해결하거나 치명적인 파국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감정 표현을 절제하는 것이 성숙하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감정을 전면에 드러내고 폭발시키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경우는 많이 있다. 내가 직접 현실에서 하지 못하니까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런 인물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거나. 통속물의 장점이자 또한 한계다.

'누가 사라를 죽였을까'의 줄거리를 미리 알았다면 굳이 보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남녀, 가족의 사랑과 배신으로 점철된 이야기에 개인적 취향으로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하지만 보기 시작하니 끊을 수 없었다. 불량식품의 강렬한 맛이랄까. 굳이 찾지는 않지만 손을 대면 끝장을 봐야만 한다. 그것이 도발적인 정념의 매력이다. '텔레노벨라'가 인기를 끄는 이유이고.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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