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메모리반도체 간판 기업인 난야의 12조 원 규모의 신규 투자 계획 발표에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과거 D램 호황기 직전, 업체들이 앞다퉈 생산량을 늘렸다가 이를 감당하지 못해 업계 전체가 극단적인 출혈 경쟁에 휘말리는, 이른바 'D램 치킨게임'의 여파가 컸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세계 4위 난야의 D램 '증산 선언'을 계기로 과거의 악몽이 재현되는 게 아니냔 우려가 제기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는 반론도 나온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난야 12조 깜짝 투자 발표
22일 업계에 따르면 난야는 전날 대만 북부 타이산 난린과학단지에 3,000억 대만달러(한화 11조9,000여억 원) 투자와 함께 10나노급 D램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D램 가격이 상승하면서 높아진 '초호황'의 기대감 속에 대대적인 투자와 더불어 증산까지 이어가겠다는 수순으로 풀이된다. 특히 난야는 이번에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로 삼성전자와 동급인 10나노급 D램 생산 계획도 밝히면서 업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현재 반도체 업계에서 'EUV D램'을 생산하는 곳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난야의 이번 깜짝 발표는 EUV D램 생산으로 선두주자와의 기술 격차도 줄이고 시장 경쟁력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의도가 깔렸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난야는 올 연말 공사를 시작해 내년에 공장을 완공하고, 내후년부터 1단계 양산에 나설 방침이다.
난야발 2010년 치킨게임 데자뷔 우려
난야의 움직임에 시장에선 부정적인 시각도 감지된다. 난야의 'D램 증산 선언'이 4년여 만에 다시 살아난 시장 분위기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향후 시장에 D램 공급이 넘쳐날 것이란 기대심리가 퍼질 경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D램 가격 하락도 배제할 수 없다. 공급사 입장에선 증산 발표가 달가울 리 없다.
지난 2010년에도 추락을 거듭하던 D램 가격이 다시 오르며 업계에 '호황' 기대감이 돌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대만과 일본 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로 앞다퉈 생산을 늘리면서 D램 가격은 금세 떨어졌다. 업체 간 극단적인 가격 인하 경쟁이 벌어졌고, 이 여파로 당시 점유율 3위였던 일본의 엘피다가 미국의 마이크론으로 넘어갔다. 당시 10여 곳에 달했던 D램 업체는 '치킨게임'을 거치면서 지금의 '빅3' 체제로 굳어졌다.
리페이잉 난야 사장도 이런 시각을 의식이라도 한 듯 "주요 공급사들이 이성적으로 시장 수요에 대처하면 치킨게임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난야, EUV D램 2024년 양산은 불가능" 지적도
다만 일각에선 과거와 상황이 다르다는 점에서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는 기우란 반론도 제기된다. 12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힌 난야에서 예상한 생산량은 12인치 반도체 원판(웨이퍼) 기준, 월 4만5,000장이다. 과거만 해도 이 정도의 투자가 이뤄지면 월 10만 장 상당의 생산도 가능했지만 EUV 공정이 도입된 이후 신규 라인 신설 비용이 급증한 탓에 지금은 생산량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7년 전만 해도 이 정도 증산이면 전 세계 수급을 뒤흔들 정도였을 텐데 지금은 증설 규모가 10만 장을 넘어가지 않는 이상 영향은 제한적이다"고 말했다. 난야의 D램 증산 선언에도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0.24% 하락에 그쳤고, SK하이닉스 주가는 소폭 올랐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난야가 EUV D램 생산 계획을 밝혔지만, SK하이닉스도 EUV 공정을 도입했지만 아직까지 생산단계로 넘어가지 못했다"며 "아마 2024년 양산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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