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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말한다… 통신은 인간만의 것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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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말한다… 통신은 인간만의 것 아니에요

입력
2021.04.22 15: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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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고요하지 않다. 바람마저 그친 순간에도 온갖 신호가 나무들 사이를 달리고 있다. 인간이 감지하지 못할 뿐이다. 포유류처럼 머리에 눈과 귀, 입이 달려있어야 보고 듣고 말한다는 생각은 오해다. 인간적 사고를 한 꺼풀 벗겨내면 심지어 나무도 ‘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행동생물학자는 이야기한다. 모든 생명이 각자의 방법으로 정보를 발신하고 수신하는 것, 그것이 바이오커뮤니케이션(biocommunication)이다.

전화통화 모형에 따른 의사소통. 발신자(왼쪽 수컷 지빠귀)가 자신의 발신기를 이용해 신호(교미 울음)를 수신자(암컷 지빠귀)에게 전송한다. 수신자는 자신의 수신기를 이용해 신호에 압축된 정보를 풀 수 있지만 다른 생명체는 신호를 접수하기만 할 뿐이다. 흐름출판 제공

전화통화 모형에 따른 의사소통. 발신자(왼쪽 수컷 지빠귀)가 자신의 발신기를 이용해 신호(교미 울음)를 수신자(암컷 지빠귀)에게 전송한다. 수신자는 자신의 수신기를 이용해 신호에 압축된 정보를 풀 수 있지만 다른 생명체는 신호를 접수하기만 할 뿐이다. 흐름출판 제공

생명(bio)은 왜 소통(communication)할까? 생존하려면 꼭 필요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위험을 피하고, 먹이를 구하고, 자손을 퍼뜨리려면 외부세계를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외부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정보를 받아들이고 또 내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새는 춤을 춰서 교미를 원한다는 정보를 발신한다. 어떤 동물들은 짖어서 위험을 알린다. 상대가 그 소리를 듣고 교미하거나 도망가기를 바라는 것 모두 정보를 주고받는 소통이다.

조류나 포유류가 아닌 생명체도 소통한다. 인간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다. 정적인 생물의 대명사인 식물도 본다. 인간의 눈이 빛을 감지하는 기관인 점을 생각하면 어쩌면 식물은 가장 잘 보는 생물일지도 모른다. 식물은 태양으로부터 쏟아지는 빛을 감지하는 수많은 수용체를 가졌다. 잎과 꽃에 있는 화학색소로 전자기 에너지를 붙잡는다. 이 색소는 가시광선의 빨강과 파랑 영역을 흡수한다.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빨강과 파랑이 얼마나 흡수됐는지를 토대로 식물은 해가 떠 있는 시간을 측정한다. 정오 무렵 태양이 머리 위에 왔을 때 나뭇잎이 몸을 돌려 해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베스트리스 꽃담배 같은 장일식물은 낮의 길이가 11시간 이상일 때만 꽃을 피운다.

코끼리고기는 약한 전기를 가진 물고기에 속하고, 이들은 피부표면의 변형된 근육세포나 신경세포를 이용해 전기장을 만들어낸다. 코끼리고기는 전기신호를 이용해 동료와 소통한다. 흐름출판 제공

코끼리고기는 약한 전기를 가진 물고기에 속하고, 이들은 피부표면의 변형된 근육세포나 신경세포를 이용해 전기장을 만들어낸다. 코끼리고기는 전기신호를 이용해 동료와 소통한다. 흐름출판 제공

이처럼 생명체는 각자의 환경에서 저마다 가능하고 필요한 방식으로 정보를 접수한다. 예컨대 물고기도 듣는다. 물속에서도 소리는 유용한 정보 전달 수단이다. 물고기의 귓속에는 석회로 만들어진 작은 돌이 있어서 소리의 압력파가 속귀에 닿으면, 이 작은 돌이 아주 천천히 파동에 반응한다. 돌이 구르면서 청각세포의 위치가 바뀌고 이러한 움직임은 전기 자극으로 변형돼 물고기의 뇌에 전달된다. 어떤 뱀은 혀를 날름거리며 정말로 냄새를 ‘핥는다’. 갈라진 혀로 허공에서 화학물질을 포착한 다음, 인후에 있는 기관에 혀를 닦는다. 혀를 청소하며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셈이다.

가장 단순하고 정적인 동물로 여겨지는 단세포 생물과 나무가 소통하는 사례도 있다. 식물의 성장에는 질소가 필요한데 식물은 공기 중의 질소를 낚아챌 수 없다. 반면 뿌리혹박테리아는 공중에서 질소를 얻어내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공급할 능력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소통한다. 콩 뿌리는 화학 신호를 보내 뿌리혹박테리아를 유인한다. 박테리아세포가 식물세포와 화학적으로 일치하면 박테리아는 뿌리 안에 자리 잡고 뿌리의 식물세포는 박테리아를 감싸 안는다. 뿌리혹박테리아는 식물에게 질소를 제공하고 식물은 그 대가로 뿌리혹박테리아 앞까지 식량을 배달한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 마들렌 치게 지음ㆍ흐름출판 발행ㆍ320쪽ㆍ1만8,000원

'숲은 고요하지 않다'. 마들렌 치게 지음ㆍ흐름출판 발행ㆍ320쪽ㆍ1만8,000원


곤충난초는 난초과에 속하고 꽃의 모양과 색이 암컷 흑벌을 닮았다. 그래서 외로운 수컷 흑벌이 깜빡 속아, 꽃의 밑부분에 앉아 교미 행동을 한다. 흐름출판 제공

곤충난초는 난초과에 속하고 꽃의 모양과 색이 암컷 흑벌을 닮았다. 그래서 외로운 수컷 흑벌이 깜빡 속아, 꽃의 밑부분에 앉아 교미 행동을 한다. 흐름출판 제공

어떤 동물들은 똥 무더기를 통해서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유럽 굴토끼들은 서로 떨어져 살지만 한곳에 똥과 오줌을 배설한다. 이런 화장실을 ‘공중변소’라고 부르는데 집단생활을 하는 여러 포유동물의 의사소통수단이다. 똥의 온도로 누가 언제 떠났는지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동물들의 페이스북인 셈이다.

그러니 숲은 고요하지 않다. 생명은 저마다 생존을 위해서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박테리아와 버섯부터 나무와 꽃까지 각자 할 말이 있다.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지구는 인간만 떠들어대는 황무지가 아님을 또 한번 알게 된다.

유럽 굴토끼는 공중변소를 집단 내부의 동료들과 소통하는 전형적인 예이다. 굴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 공중변소는 집단 외부의 토끼에게 자기 영토의 국경을 알린다. 흐름출판 제공

유럽 굴토끼는 공중변소를 집단 내부의 동료들과 소통하는 전형적인 예이다. 굴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 공중변소는 집단 외부의 토끼에게 자기 영토의 국경을 알린다. 흐름출판 제공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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