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벚 진다고 봄이 시들까... 꽃을 타고 오르는 산골의 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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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 진다고 봄이 시들까... 꽃을 타고 오르는 산골의 신록

입력
2021.04.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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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금산 군북면 보곡산골

금산 군북면 보곡산골은 전국 최대의 산벚나무 자생 군락지다. 올해는 개화가 일러 벚꽃이 끝물이지만, 싱그러운 신록이 산등성이를 오르고 있어 찬란한 봄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진은 16일 산안리 자진뱅이 마을 풍경이다.

봄이 아름답지 않기란 참으로 힘들다. 생기가 넘치고 찬란하고 눈부시게 빛나는 계절이다. 그럼에도 언제 왔다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짧아서 더 귀한 게 봄이다.

“봄이란 것이 과연 / 있기나 한 것일까? / 아직은 겨울이지 싶을 때 봄이고 / 아직은 봄이겠지 싶을 때 여름인 봄 / 너무나 힘들게 더디게 왔다가 / 너무나 빠르게 허망하게 / 가버리는 봄 / 우리네 인생에도 / 봄이란 것이 있었을까?”

나태주 시인은 ‘꽃을 보듯 너를 본다’라는 시집에서 ‘봄’을 이렇게 바라본다. 올해는 봄꽃 개화가 일주일에서 열흘가량 빨랐다. 아파트 화단의 벚나무는 이미 꽃이 지고 이파리 색이 점점 짙어진다. 뒤죽박죽 혼란스럽기는 산골도 다르지 않다. 매년 이맘때면 절정의 봄을 자랑하는 금산의 보곡산골을 소개한다.


산골마을이 전국 최대 산벚나무 자생지

보곡산골은 일종의 합성어다. 금산 군북면 보광리, 상곡리, 산안리에서 각각 한 글자를 따서 지었다. 군북면은 군청을 중심으로 보면 북쪽에 있는 면이라는 뜻이다. 금산 외에 옥천과 함안에도 있다. 참 성의 없이 지었다 싶으면서도 어쩌면 잃어버린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한다.

보곡산골은 군북면에서도 외진 곳이다. 면소재지에서 동쪽 고갯마루를 넘어야 한다. 비둘기 목처럼 생긴 지형이라 ‘비둘목재’라고도 하고, 풍년을 가져다 줄 비를 기다리는 언덕배기라는 의미에서 ‘비들목재’라고도 부른다. 본격적으로 산골 여행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약 1,000만㎡, 국내 최대 산벚나무 자생 군락지라 자랑하는 보곡산골로 들어간다.

보곡산골 여행의 중심지라 할 산안리 자진뱅이 마을. 사진에서 오른편 산자락으로 난 임도를 따라 걷는다.


자진뱅이 마을 어귀에 복숭아꽃이 화사하다.

3개 마을에 걸쳐 있으니 걸어서 모두 둘러보기는 애초에 무리다. 보곡산골에서도 중심은 산안리 ‘자진뱅이’ 마을이다. 경쾌한 가락의 자진방아타령이 연상되지만, 유래를 알고 보면 짠한 느낌이 없지 않다. 옛날 전씨들이 전란을 피해 들어와 살면서 밭을 일구었다 해서 ‘자전마을’이라 부르다가 자진뱅이가 됐다고 한다. 멀게는 임진왜란, 가깝게는 한국전쟁까지 시절의 커다란 변곡점마다 피난민이 찾아 든 산골마을이었다. 세상과 단절된 만큼 마음먹기 따라서는 세파에 휘둘리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손수 일군 자그마한 밭뙈기라는 뜻의 ‘자전’이 변했다는 설도 있다. 여기에 ‘뱅이’라는 접미사를 붙였으니 더 옹색하게 들린다. 실제 마을 주변 산중턱에는 녹두 꼬투리처럼 좁고 가느다란 산밭의 흔적이 보인다. ‘산안’이라는 지명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에 사기를 굽는 ‘사기점’ 마을이 변했다는 해석이다. 산골 중의 산골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모든 게 다 옛날 얘기다. 산자락 곳곳에 여러 채의 새 집들이 보인다. 공기 좋고 풍경 좋은 산골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이들이 하나둘 들어온 때문이다.

보곡산골 '보이네요' 정자 부근에서 본 맞은편 골짜기. 화사한 산벚꽃 뒤로 신록이 번지고 있다.


산안리 자진뱅이 마을 뒤편에서 본 보곡산골 풍경. 보통 맞은편 산 능선의 '보이네요' 정자에서 임도를 따라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아온다.


보곡마을 산벚은 종류와 자생 위치에 따라 꽃피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다. 색깔도 흰색에서 진분홍까지 다양하다.

지역이 넓으니 동선 짜기가 쉽지 않다. 보통은 자진뱅이 마을 뒤편 산자락을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를 걷는다. 일부는 포장된 도로이고, 대부분은 산림을 관리하기 위해 닦은 임도여서 험하지 않다. 대략 6㎞, 넉넉잡아 2시간가량 걸린다. 출발점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의 ‘보이네요’ 정자다. 앞뒤로 골짜기에서 피어 오르는 봄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는 뜻에서 지은 정자인데, 지금은 주변에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실제 전망은 가려 있다. 이곳부터 임도를 따라가면 맞은편 산자락과 계곡 풍경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신록이 더해가는 산중턱 곳곳에 이미 절정을 넘긴 산벚꽃이 점처럼 흩뿌려져 있다. 일부러 심은 게 아니라 산새가 씨를 나르고 저절로 자라난 산꽃이니 모양도 색깔도 일정하지 않다. 꽃송이가 새하얀 것부터 진분홍까지 각양각색이다. 더러 개복숭아나무도 섞여 있으니 빛깔이 다양하다. 같은 산골이지만 꽃이 피는 시기도 다르다. 이미 꽃잎이 떨어진 나무가 많지만, 산꼭대기 주변에는 이제 막 분홍빛이 번지는 모습도 보인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공원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멋이 풍긴다.

보곡산골의 벚나무는 수형도 색깔도 제각각이다. 다듬지 않은 자연의 조화가 아름답다.


산벚과 함께 조팝나무도 화사하게 꽃 봉우리를 터트리고 있다.


보곡산골의 산안리 자진뱅이 마을. 산 빛이 한창 고울 때라 벚꽃이 지더라도 봄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진뱅이 마을 뒤편의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 수령 300년가량으로 주민들이 산신제를 올리며 신성시하는 나무다.


요란한 산벚나무 꽃잔치가 끝나면 그제야 작은 들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각시붓꽃과 양지꽃이 앙증맞게 피어 있다.


산안리에서 상곡리로 이어지는 도로변의 벚꽃도 내년을 기약하며 끝물로 치닫고 있다. 16일 풍경이다.

꽃이 모두 진다고 아쉬워할 이유도 없다. 지금은 산색이 가장 고울 때다. 산 아래는 푸르름이 짙어가고 산등성이로 오를수록 색깔이 옅어지며 연둣빛이 싱그럽다. 녹색 물감 흥건히 묻힌 붓을 아래에서 꾹 누른 후 힘을 빼며 위로 칠한 듯하다. 산길을 걷다 보면 눈부신 신록 사이로 이따금씩 어디서 날아든 것인지 알 수 없는 꽃잎이 흩날린다. 벚꽃이 지고 나면 조팝나무, 병꽃나무, 산딸나무, 국수나무 등이 뒤를 잇는다. 화려함은 덜해도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꽃나무다. 화려한 꽃잔치가 끝나면 자줏빛 제비꽃과 각시붓꽃, 앙증맞은 양지꽃과 구슬붕이 등 작은 풀꽃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400년 '선비마을' 보광리와 평온함 인정받은 절간

보광리는 충남에서 가장 높은 서대산(904m) 바로 아래에 자리 잡았다. 보광사라는 사찰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지명인데, 이제 사찰은 폐허가 되고 비탈밭이 이어진 산자락에 마을만 남았다. 마을 어귀에 전주 이씨 제각이 400년 ‘선비마을’의 역사를 자랑하듯 버티고 있다.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의 5대손이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보광리 마을의 전주 이씨 제각은 400년 역사를 품은 마을의 상징물이다. 뒤로 충남에서 가장 높은 서대산이 보인다.


서대산 아래 보광리 마을의 방글이농원에서 나형규(68)씨가 벌통을 관리하고 있다.


서대산 아래 보광리 마을의 유채밭. 경관용이 아니라 벌꿀을 모으기 위해 조성한 밭이다.


보곡산골 보광리의 복숭아 꽃이 오후 햇살에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보광사 터로 이어진 산길 포장도로를 오르다 보면 몇몇 군데에 유채밭이 화사하다. 그냥 두어도 꽃대궐인데 이곳까지 유채밭을 조성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가까이 가봤더니 경관용으로 조성한 게 아니다. 20개가 넘는 벌통 주변에 꿀벌이 요란스럽게 잉잉거린다. ‘방글이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부부도 꿀과 화분을 채취하느라 덩달아 바쁘다. 집 앞 과수원에는 이제 막 사과꽃이 불그스레하게 피고 있다. 유채도 사과도 꿀을 채취할 목적으로 재배하고 있으니 농약을 치지 않는다고 한다. 곧 으름덩굴과 다래, 아까시와 돌배나무가 꽃을 피울 테니 산벚꽃이 지더라도 꿀 농사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 한다. 마을 어귀의 복숭아 밭에서는 햇살을 받은 복사꽃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눈 닿는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그림이 가득한 동화책을 넘기는 듯하다.

보곡산골에서 제원면으로 넘어가면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는 뜻의 신안사가 있다.


신안사에서 제원면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에는 특이하게 키 작은 조팝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다.


자진뱅이 마을의 ‘보이네요’ 정자에서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가면 신안사라는 아담한 사찰이 나온다. 대문 격인 산문도 없고 사찰을 지키는 사천왕문도 없다. 큰 절의 격식이 생략됐지만 신라 진덕여왕 때 처음 세웠다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신안사라는 이름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이곳에 잠시 머무를 때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고 언급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고려 공민왕 또한 비슷한 말을 남겼다니 격동의 세월도 비껴간 보곡산골의 평온함이 짐작된다. 극락전 마당에 날렵한 5층 석탑이 서 있고, 그 앞의 벚꽃은 이미 모두 지고 말았다. 대신 햇살을 받은 형형색색의 연등이 꽃처럼 환하게 절 마당을 밝히고 있다.

금산=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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