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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는 선택의 즐거움이 아니라 일급 중독이다

입력
2021.04.21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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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

편집자주

독창적 문체로 남성 패션지 ‘GQ’를 18년간 이끌어온 이충걸 전 GQ 편집장이 문화 현상의 이면을 새롭게 들춰 봅니다. 현재 서울 필동에 사는 이 전 편집장의 ‘멘션(mentionㆍ촌평)’은 격주 수요일자 <한국일보> 에 실립니다.

담배는 선택의 즐거움으로 치부되곤 했지만 이제 흡연자 이미지는 저속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담배는 선택의 즐거움으로 치부되곤 했지만 이제 흡연자 이미지는 저속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담배를 피우지 못해서 슬프다. 담배를 못 끊으면 죽는 수밖에 없다고 비장하게 결심할 수 없고, 금연에 성공해도 결국 금연 시점보다 두 배 골초가 될 거라고 자학할 수 없고, 어딜 가도 금연 구역이라 길 위에서 손을 떨 수 없고, 담뱃갑을 멋지게 구겨버리고 금연을 향한 대로로 걸어갈 수 없고, 남은 거라곤 누렇게 뜬 얼굴과 쪼들리는 주머니뿐이라고 털어놓을 수 없고, 추잡한 고양이처럼 쓰레기통을 뒤져 꽁초를 찾을 수 없고, 길가는 이에게 “한 개비만” 이러면서 애절하게 손 벌릴 수 없어서.

스페인 서부에서 출항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이대로 쭉 항해하면 중국과 일본에 닿을 거라는 생각만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가 주섬주섬 불안을 달랠 무엇을 찾는 순간부터 인류에게 담배는 피할 수 없는 발견이 되었다. 천문학자들이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음을 고수했다면 북미와 남미의 고대 사회는 살아남았을 것이다. 들소와 비둘기는 여전히 떼지어 다녔을 테고, 서부 아프리카와의 노예 무역이란 있지도 않았을 거고, 담배가 다른 흥분제보다 애호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새 풍습이 만드는 밤 열 시의 아비규환. 술집에서 나온 사람들은 세 개의 물결을 만든다. 택시를 향해 휘젓는 팔들과 액정 화면에 고개를 박고 뭔가 호출하는 손가락들. 그 사이로 두엄더미처럼 모여 연기를 피워 올리는 족속들이 보인다. 발 아래 짓이겨진 담배 꽁초 진창은 이미 도시의 골칫덩이가 되었다.

거리에서나 대합실에서나 정류장에서나, 사람이 모이는 어디든 흡연자들이 비강에 일격을 가하던 그 시절, 담배 연기는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지옥 불구덩이만큼 유독했다. 양파 껍질을 까며 흘린 눈물보다 술집 연기 때문에 흘린 눈물이 더 많고, 공공장소에 살포된 담배 연기 때문에 흘린 눈물이 슬퍼서 흘린 눈물보다 많던 때. 그리고 연기 속에서 꽥꽥거리는 십대 무리와, 어지럽게 널린 꽁초들을 일렬로 세우던 직장인들과, 유모차를 끌며 담배 연기를 내뿜던 아기 엄마 부대의 추억.

대학 다닐 때 친구들은 식후에 담배를 안 피우면 죽는다면서 입술 끝에 달랑거리는 담배를 물었다. 그들은 언제 들었을까. 담배를 종용하는 목소리는 담배 홍보 회사로부터 온 걸까? 담배를 꼬나물고 반항적인 척하던 배우 형들? 매니큐어 칠한 손가락 두 개로 담배를 쥐고 미묘하게 치켜 올리던 그녀?

그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달걀 프라이 만드는 법부터 공공장소에서 통화할 때 작게 말하는 법, 구부러진 것과 곧은 것을 분간하는 법. 그러나 담배 피우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밥 다 먹고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담뱃재 터는 법도. 십 년에 한 번 담배를 물면 이런 핀잔만 들었다.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왜 피워?”였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너는 노래도 못하면서 마이크 쥐잖아!”

그동안 흡연자를 제지하는 것은 끝없는 전쟁과 같았다. 이제 흡연자 이미지는 저속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담배 끊는 법과 냄새 없애는 법, 스프레이 구취 제거제와 니코틴 패치, 가글과 민트 캔디와 치약, 충동 조절 약품과 전자 담배 안내문이 빼곡한 나날엔 사회의 어떤 그룹이 담배를 이야기를 할까?

코로나 확산으로 가게들이 영업제한 시간인 10시에 문을 닫자 시민들이 길거리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코로나 확산으로 가게들이 영업제한 시간인 10시에 문을 닫자 시민들이 길거리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 형은 이십대 초반인 나에게 담배를 가르쳐주려고 했다. 목욕탕에서 낯선 사람 때를 밀어주듯이 담배를 나눌 줄 알아야 한다고. 그 형은 담배 연기를 폐까지 빨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비웃으며 입술 세로 주름 사이로 담배를 물었다. 들이마시고 내뱉는 방법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침착된 치석과 유령처럼 그 형 몸을 떠돌던 냄새는 두 배 놀라웠다.

담뱃갑에 적힌 경고 문구는 비글 사냥개 천 마리를 기리는 비문이었다. 오래전, 담배 회사들이 자사에서 제조한 궐련과 폐암 간 연관성이 없다는 걸 증명하려고 사냥개들을 결박시키고 죽을 때까지 담배 연기를 맡게 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 형 옆에 있다 보면 골초를 말리다 주저앉는 비흡연자의 하루를 보내야 했다. 비글이 된 나는 정신을 잃기 전, 삶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 숨을 참았다. 이미 폐 한 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채.

몇 십 년 뒤 회사 두 개의 대표가 된 형이 명동에 온 김에 연락을 했다. 나는 그를 버거킹 옆 좁은 골목으로 데려갔다. 건물 안에서 흡연을 금하고, 사방에 금연 표시를 붙이고, 곳곳에 금연 포스터를 붙여도, 숨어서 피도록 조작된 사람들은 어떡해서든 담뱃불 붙일 장소를 찾았다. 나는 대한극장을 나와 그 골목을 지날 때마다 연기 먹는 기계가 되었다. 연기를 그대로 품은 골목에서 배기관 가스를 들이마셨다.

그 형은 담배 때문에 부비강과 기관지염이 도졌다면서 담배를 꺼내곤 눈썹을 찌푸린 나를 보며 자문자답했다. “기관지염이고 뭐고 간에 담배는 피워야 돼. 왜? 긴장을 풀어주니까.” 안정감을 주는 흡연은 분명 생리학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형의 긴장을 풀어줄진 몰라도 내 후각은 다 망가졌어.” 그는 검은 얼굴 검은 폐로 두 개째 불을 붙였다. 그가 담배를 못 끊는 이유는 일목요연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가족을 돌봐야 해서, 쉴 시간이 없어서. 사실 금연 프로그램에도 나가 봤지만 담배를 단칼에 끊는 방법이 자기에겐 먹히지 않더라고 했다. 거짓말하는 이들은 부정(否定)의 굴레 안에 존재한다. 그 범주에 들어가기는 쉽다. 죽을 만큼 아플 때 빼고 모든 흡연자가 어느 시점에 금연을 시도하니까. 그러나 모든 자제엔 극단적인 면만이 통할 것이다. 그는 비만 환자가 도넛을 박스째 먹듯이 몇 번의 결심과 무너짐 사이에서 흰 수건을 들었다.

그는 다시 예쁜 캔디 하나를 입에 넣었다. 이 캔디가 담배 냄새를 없애고, 치아를 깨끗이 해주고, 니코틴을 배출해 준다고. 차 안에 여분의 셔츠도 있다고 했다. 외과의가 피가 튈까 봐 수술복을 입듯이. 그는 다른 이유를 꺼냈다. 어릴 때 아버지의 골프 가방에 담배꽁초가 수북히 들어 있었고, 엄마는 따로 주무시는 방 협탁에 담배를 숨겨놓았다고. 그러나 그가 아무리 닦고 헹구고 문질러도 형한테서 나는 냄새의 추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끊지 않을 거야. 나는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거든. 누가 누구한테 뭘 할 수 있다 없다를 말할 권리는 없어. 내가 다른 사람 공기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야?” 그에게 흡연은 완전히 합법적인 습관이며 지극히 사적인 악습이니까. “담배는 내 선택이고, 내 인생이고, 내 권리야. 왜 유독 담배에 규제가 많지? 흡연 금지는 시민권에 반하는 거 아니야?” 그는 자기가 내는 담배세로 대중 보건 기관이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헤비 스모커가 없다면 의사들은 그만큼 장사를 못 할 걸?” 그러면서 그 형은 피 검사 결과를 보는 의사에게 거짓말했다. 치과 의사 앞에서 더러운 치아가 커피 탓이라고 했다. 누가 속는다고?

대학 다닐 때 친구들은 식후에 담배를 안 피우면 죽는다면서 입술 끝에 달랑거리는 담배를 물었다. 게티이미지뱅크

대학 다닐 때 친구들은 식후에 담배를 안 피우면 죽는다면서 입술 끝에 달랑거리는 담배를 물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 형에게 담배 피운 적도 없는 누군가가 알츠하이머로 60대 초반에 세상을 뜬 이야기를 해야 했을까? 줄담배 피우던 분이 술집에서 알코올 중독자와 싸우다 반신불수 되었다는 얘기, 임신했을 때 잠깐 끊었다가 양수가 터지자마자 한 대 피우고, 병원 가는 길에 두 개피 핀 여자와 그후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했을까? 그러나 그는 불건강에 젊음을 넘겼다는 죄의식 자체가 없었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도 다 어떤 필요가 있었을 거야. 한 번뿐인 인생인데 왜들 그렇게 따지며 사는 거냐고?”

“그런 말 하기 전에 일산화탄소 수치나 한 번 재 봐. 머리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다 형 탓이야.”

지난 5세기 동안 담배와 매독 중 무엇이 더 큰 재앙이었을까? 매독은 적어도 제약 회사와 담배 광고 업체의 이익을 위해 판촉되지 않았다. 담배에 중독된 불쌍한 영혼들은 단순히 매독에 걸린 사람 옆에 있다고 해서 감염되지 않는다. 그러나 흡연자와 같은 공기를 마신 나는? 그 형은 눈썹도 까딱 안 했다. 나는 간접 흡연이나 불평하는 한낱 비흡연자니까. 그러면서 아내가 냄새 난다고 상대도 안 해준다며 울상을 짓는 건 뭐지? 양잿물 빛 연기 사이로 조커의 진갈색 치아를 보며 나도 한마디 했다. “골초 입에 키스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맥줏집에 들어가기 전, 그는 딱 한 개비만 피겠다면서 그들의 추방지로 걸어갔다. 보도 옆에 붙은 주차장 옆에 작은 공터가 있었는데 담벼락에 금연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 글씨에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날 싸울 전투 하나는 줄어들었으니까. 그러나 누가 위험한 데 못 올라가게 울타리를 세워도 그 형은 기어오를 것이다. 담배는 선택의 즐거움이 아니라 처자식을 팔아서라도 해야 하는 일급 중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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