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탓 참석자 30명 제한
여왕도 홀로 앉아 남편 배웅
9일(현지시간) 99세를 일기로 별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공이 17일 영면에 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장례식엔 왕실 가족 30명만이 참석해 고인을 배웅했다. 감염 우려가 큰 고령자인 탓에 가족과 떨어져 앉아 홀로 슬픔을 견디는 여왕의 모습은 비통함을 더했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이날 윈저성 내 성 조지 예배당에서 엄수된 장례식은 필립공이 생전에 직접 구상한 계획대로 진행됐다. 영구차로 개조된 랜드로버 차량으로 고인을 운구했고, 왕실 가족은 마스크를 쓰고 그 뒤를 따랐다. 가족과 따로 이동한 여왕은 장례도 혼자 지켜보며 평생을 해로한 남편과 작별했다.
영국 성공회 최고위직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와 성 조지 예배당 주임 사제인 데이비드 코너 주교가 장례식을 주재했다. 이들은 “고인이 보여준 여왕에 대한 확고한 충성, 나라와 영연방에 대한 봉사, 용기와 인내에서 우리는 크나큰 영감을 받았다”고 애도했다. 예배당에 울려퍼진 장례 음악 역시 필립공이 직접 선정한 곡이었다. 이후 고인은 예배당 지하의 왕실 묘지에 안치됐다.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손은 장례식에서 나란히 앉았다. 해리 왕손의 아내 메건 마클 왕손빈이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왕실의 인종차별 의혹을 폭로한 이후 처음 대면하는 자리였다. 이미 수년 전부터 불화를 겪으며 껄끄러워진 사이이지만 두 사람 모두 이날만큼은 묵은 감정을 뒤로 미뤄뒀다. 일간 가디언은 “두 형제가 장례식이 끝난 뒤 예배당을 떠나며 함께 걷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메건 왕손빈은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지만, 미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온라인 생중계로 장례식을 지켜봤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영국 각지에서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각자 집에서 애도해 달라는 왕실의 간곡한 부탁에도 윈저성 앞에는 추모객들이 몰려 들어 헌화했다. 오후 3시 장례식 시작 전에는 전국적인 묵념 행사가 열렸고, 런던 타워에선 예포가 발사됐다. 참석자 수가 제한돼 장례식에 오지 못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관저 앞에 나와 고개 숙여 고인을 기렸다. 필립공 출생지인 그리스의 섬 코르푸를 비롯해 스웨덴, 덴마크, 몰타에서도 추도식이 열렸다.
1921년 그리스ㆍ덴마크 왕실 후계자로 태어난 필립공은 영국왕립해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여왕을 만나 1947년 결혼했다. 사랑을 위해 왕위계승권도 포기한 그는 74년간 묵묵히 아내 곁을 지켰다. 슬하에는 찰스 왕세자를 포함해 자녀 4명과 손주 8명, 증손주 10명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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