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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 폐기물 수십만톤 욱여넣은 폐석산, 썩은 물 줄줄 "누가 옮겨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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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 폐기물 수십만톤 욱여넣은 폐석산, 썩은 물 줄줄 "누가 옮겨주겠나"

입력
2021.04.21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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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비봉면 폐석산에 허가와 다른 유독물질 매립
업체는 부도·공무원은 징계시효 만료… 혈세만 낭비
주민들 침출수 악취에 고통… "안고 살아야지" 체념

1일 전북 완주 주민 강모(49)씨가 비봉면 폐석산에 묻힌 폐기물들과 이를 수습하기 위한 처리 시설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원 기자

1일 전북 완주 주민 강모(49)씨가 비봉면 폐석산에 묻힌 폐기물들과 이를 수습하기 위한 처리 시설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원 기자


"몰랐어요. 나도 속아서 옮겼어. 나중에 들어보니 폐기물 성분이 잘못됐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산에 묻힌 게 60만 톤인데..."

폐기물 운반에 동참했던 전북 완주 비봉면 주민 강모(49)씨

전북 완주군 비봉면의 토박이 농사꾼 강모(49)씨는 2015년경부터 약 1년간 비봉면 폐석산으로 폐기물을 운반했다. 익산시의 폐기물 재활용업체 A사가 완주군의 매립업체 B사에 폐기물 매립을 맡긴 것이 발단이었다. B업체는 강씨를 비롯한 운반업자에게 일당을 주고 배출된 폐기물을 폐석산으로 옮기게 했다. 25톤 덤프트럭 운전 경력이 있던 강씨는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이 일에 참여했다.

강씨에 따르면 매립이 한창이던 당시 익산시에서 완주군으로 드나들던 트럭이 하루 40대가 넘었다. '채굴 후 비어있는 석산을 매립장으로 활용해 재활용 가능한 일반폐기물로 채우겠다'는 B업체의 계획서를 완주군이 허가하면서 매립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씨는 본인이 나고 자란 동네에 수십만 톤의 불법 폐기물이 줄줄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1일 전북 완주 비봉면 폐석산 맞은편에 폐석산에서 흘러나온 침출수가 저수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정원 기자

1일 전북 완주 비봉면 폐석산 맞은편에 폐석산에서 흘러나온 침출수가 저수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정원 기자

그렇게 유해 폐기물로 채워진 폐석산은 마을의 골칫거리가 됐다. 1일 비봉면 폐석산 입구에 차를 대고 내리자마자 시커먼 저수지가 내뿜는 악취에 코가 시큰거렸다. 폐석산에서 흘러나온 침출수가 저수지를 가득 채운 상태였다.

맞은편 거대한 폐석산을 덮은 천막 아래선 불규칙적인 굉음이 났다. 천막 위로는 수십 개의 배관이 듬성듬성 설치돼 있었다. 산 바로 아래에서 작은 식품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 조모(61)씨는 배관을 가리키며 "(폐석산) 안에 있는 폐기물 때문에 가스가 생기는데, 폭발할까봐 밖으로 뽑아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일 전북 완주 비봉면 폐석산 앞에 침출수를 담는 파란색 드럼통들과 간이 폐수 처리장이 세워져 있다. 이정원 기자

1일 전북 완주 비봉면 폐석산 앞에 침출수를 담는 파란색 드럼통들과 간이 폐수 처리장이 세워져 있다. 이정원 기자

침출수는 저수지에만 담긴 것이 아니었다. 폐석산 앞에 줄지어 놓인 파란색 드럼통엔 석산에서 나오는 침출수가 커다란 호스를 타고 계속 채워지고 있었다. 10톤, 15톤, 30톤짜리로 구분된 드럼통 옆엔 간이 폐수 정화 시설도 있었다. 모두 완주군이 폐기물을 정부 지정 폐기장으로 옮길 시간을 벌기 위해 설비한 것들이다. 군청에서 자신의 공장 앞에 폐수처리장을 지을 계획이라고 들었다는 조씨는 "음식 만드는 곳 앞에다 그런 걸 세우면 어떡하냐"며 "폐기물을 옮길 생각을 해야지, 그걸 못하니 몇 년 동안 침출수만 뽑아내고 있는 것 아니냐"며 답답해했다.

가벼운 바람이라도 불면 석산 앞 주민들은 침출수가 풍기는 악취에 코를 틀어막았다. 강씨는 "(이 정도도) 많이 나아진 것"이라며 "유출 초반에 기압이 낮고 안개가 깔릴 땐 방독면을 쓰고도 구토가 났다. 저런 물이 경작지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석산 기슭과 아래 농경지 간 거리는 500m 정도밖에 안 돼 보였다. 석산 앞을 배회하던 주민 A(55)씨는 "업체 혼자서 저지를 수 있는 불법이 아니었다. 서울이었으면 이런 일이 가당키냐 했겠냐"는 말을 반복했다.

계획서와 딴판인 불법 매립… 배상할 업체는 부도

2020년 2월 감사원 특정감사 보고서

"00매립장에 폐석재는 3,274톤(0.5%)이 매립된 반면 고화처리물은 627,401톤(99.5%)이 매립되었고, 이로 인해 고화처리물의 주원료인 하수 폐수처리 오니가 빗물, 지하수 등과 접촉 분해되면서 페놀, 비소 등 수질오염물질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한 침출수가 지속적으로 00매립장 외부로 유출되고 있으며, 일부지점에서는 지정폐기물 기준을 초과하는 구리성분이 검출되는가 하면 …(중략) 지정악취물질인 황화수소가 특정 지점에서 배출허용기준의 6,800배에 이르는 136ppm으로 측정되는 등 고농도의 악취도 발생하고 있다."

B업체가 2012년 군에 제출한 계획서대로 매립이 진행됐다면 볼 수 없을 광경이었다. 그러나 폐석산 복구에 적합한 성분인 줄로만 알았던 A업체의 폐기물은, 사실 하수찌꺼기 및 유기물로 가득한 고화(固化)처리물이었다. 현행법대로라면 지정폐기물(유해폐기물)로 분류돼 정부 허가를 받은 업체에 의해 환경부 지정 매립장에 묻혔어야 했다.

이 고화토는 비봉면 폐석산에 묻힌 직후부터 부패하기 시작해 심각한 악취와 침출수를 뿜어댔다. 조사 결과 B업체는 당초 군에 신고했던 매립 비율과 달리 전체 매립 용량의 0.5%만을 돌가루로 묻고, 나머지 99.5%를 62만7,401톤의 고화처리물로 채웠다.

2019년부터 진행된 감사원 감사를 통해 매립업체와 당시 매립계획서를 승인한 군 공무원들의 책임이 일부 밝혀졌으나, 합당한 배상이나 징계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B업체는 부도로 배상 능력을 상실했고, 담당 공무원들의 경우 B업체의 계획서와 실제 매립이 다르게 이뤄지고 있음을 인지한 정황이 발견됐지만 이에 대한 징계 시효가 만료됐기 때문이다.

관리형 매립지에 묻혀야 할 고화처리물이 불법으로 매립된 전북 완주 폐석산의 모습이 산에서 멀리 떨어진 묘지에서도 커다랗게 보인다. 이정원 기자

관리형 매립지에 묻혀야 할 고화처리물이 불법으로 매립된 전북 완주 폐석산의 모습이 산에서 멀리 떨어진 묘지에서도 커다랗게 보인다. 이정원 기자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정부 지정 매립장 내 관리형 매립시설(침출수 유출 방지 처리가 된 시설)로 옮겨져야 할 비봉면 폐기물들은 수 년이 지나도록 단 1톤도 이적되지 못한 상태다. 수백억 원의 행정 비용부터가 큰 골칫거리다. 완주군청은 폐기물을 배출한 A업체와 이를 매립한 B업체에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전체 폐기물 이적 비용으로 예상되는 600억~800억 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침출수만 빼내고 있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데도 1년에 6억~7억 원이 든다는 게 군청 측 설명이다.

이에 지난해 완주군의회와 시민단체인 폐기물대책위원회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근거로 당시 매립 과정을 담당했던 완주군청 공무원들을 직무유기로 검찰에 고발했다. 혐의가 인정되면 이들에게 구상권 청구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대책위 측은 "당시 공무원들이 불법 매립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거나, 주어진 관리 감독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완주군청 관계자는 "현재 관할 경찰서로 이첩돼 조사 중인 사안이며, 혐의가 밝혀지면 그에 따른 처분이 내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주민들 "그 많은 폐기물 누가 받아주겠나" 체념

폐기물 매립 참사는 지방 곳곳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문제가 공론화될 때마다 뒤늦게 해결 방안이 논의되지만, 시간이 갈수록 "버릴 땐 쉬웠어도 내보낼 땐 하세월"이란 지역 주민들의 체념만 쌓인다.

완주군과 맞붙은 전북 익산시 낭산면의 사정도 비봉면과 똑 닮았다. 낭산면 폐석산 불법 매립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2016년이다. 폐석산을 일반폐기물로 채워 복구하겠다던 매립업체들의 당초 약속과 달리 이곳엔 폐배터리 업체 및 화학공장에서 배출된 폐기물이 일반 폐기물과 몰래 섞여 묻혔다. 이 때문에 발생한 침출수에선 1급 발암물질인 비소를 포함한 각종 중금속 성분이 기준치의 682배 이상 검출됐다.

1일 전북 익산 낭산 폐석산에 묻힌 불법 폐기물들이 천막으로 덮여 있는 가운데 폐기물에서 나온 침출수가 커다란 저수지처럼 고여 있다. 이정원 기자

1일 전북 익산 낭산 폐석산에 묻힌 불법 폐기물들이 천막으로 덮여 있는 가운데 폐기물에서 나온 침출수가 커다란 저수지처럼 고여 있다. 이정원 기자

그러나 문제가 드러난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낭산면 석산에 묻힌 이적 대상 폐기물 143만 톤 중 실제 옮겨진 분량은 2,916톤에 불과하다. 폐기물을 받아줄 곳도 비용을 충당할 방법도 마땅치 않은 탓이다. 2016년 환경부와 익산시가 불법폐기물을 매립한 업체 6곳에 원상복구 명령을 내렸음에도 대부분 미이행으로 일관하고 있다. 익산시는 환경부와의 협의를 통해 올해 약 92억 원의 국비 예산을 지원받았지만, 시에서 추산하는 총 이적 처리 비용 3,000여억 원에는 한참 모자란다. 시 관계자는 "지금 속도로 폐기물을 옮긴다면 30년은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일 전북 익산 낭산 폐석산에서 발생한 침출수가 주위 언덕과 공터에까지 흘러내려가고 있다. 이정원 기자

1일 전북 익산 낭산 폐석산에서 발생한 침출수가 주위 언덕과 공터에까지 흘러내려가고 있다. 이정원 기자

그렇다 보니 낭산면은 유해폐기물 임시 매립지와 다름없는 처지가 됐다. 석산을 덮은 천막 아래선 비봉면에서와 똑같이 주기적인 굉음이 울리고, 비봉면보다도 넓은 침출수 저수지가 곳곳에 자리했다. 근처의 언덕과 아래 공터엔 폐석산 내 처리시설에서 미처 소화되지 못한 침출수가 새까맣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전북 익산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 B(77)씨의 집 마당 앞으로 낭산 폐석산에서 흘러나온 침출수를 실은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이정원 기자

전북 익산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 B(77)씨의 집 마당 앞으로 낭산 폐석산에서 흘러나온 침출수를 실은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이정원 기자

노령층이 대부분인 주민들은 수년이 지나도 진척 없는 현실에 이미 반쯤 포기한 듯 보였다. 폐석산 바로 아래에 살고 있는 농민 B(77)씨는 폐기물 이적에 대해 묻자마자 "우리 같은 노인들이 사는 동안 무슨 힘이 있어 싸우겠나"라며 "어차피 (폐기물이) 버려진 마당에 평생 안고 사는 거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어딘가로는 옮겨야겠지만, 저 많은 폐기물을 받아주겠다고 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한 명도 없다"고 덧붙였다. 5년 전까지 산 주위에서 논농사를 지었다는 B씨는 침출수로 인한 토양 오염 사실이 일부 인정돼 보상금을 받았으나 금액은 100여 만원에 불과했다.

B씨와 가까운 거리에 사는 농민 최성녀(79)씨 역시 폐기물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리란 기대를 버린 상태였다. 5~6년 전 폐석산 근처 농지를 평당 10만 원에 팔았다는 최씨는 "썩은 물이 막 내려오는 게 보였지만 인근 토양에서 자란 수확물은 눈으로 봤을 때 평범해 보였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오염 우려에 아직까지 지하수를 맘 놓고 사용하지 못한다는 최씨였지만, 그 역시 "젊은 사람들 말이나 먹히지 촌사람들이 어디 말발이 서나"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수년간 이어진 행정 답보 상태에 농민들은 이미 적응한 모습이었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폐석산의 침출수를 실은 트럭이 마을 바깥으로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완주·익산=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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