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환불 신발 '리퍼브' 매장서 정식 판매
15개 매장으로 시작, 내년까지 美 전역 확대?
"폐기물 줄이려 신발에 '제2의 생명' 주는 것"
'당신이 다음에 사게 될 에어 조던은 이미 수천 ㎞ 땅을 밟은 제품일지도 모른다.'
미국 경제매체 포춘은 13일(현지시간) 환불된 신발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나이키의 '리퍼브(refurbished·재정비된)' 라인 출시 소식을 전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미 오리건주(州) 비버튼에 본사를 둔 나이키는 전날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신발에 '제2의 생명'을 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소비자가 구입 후 60일 이내 반품한 제품을 세척·소독해 매장에서 재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품 상태 점검 과정에서 판매 부적격으로 판정된 환불 제품은 고무 바닥재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파쇄하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프로그램이다.
리퍼브 판매는 소수 매장을 시작으로 이달 중 15개 매장, 내년까지 미 전역으로 확대한 후 미국 이외 시장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리퍼브 제품도 다른 제품을 살 때와 마찬가지로 구입 후 만족하지 못할 경우 60일 이내에 환불받을 수 있다.
美 대표 백화점도 뛰어든 중고 의류 판매
나이키의 이 같은 발표는 전 세계적으로 '순환 경제' 실현 차원의 중고 물품 거래가 확산하는 가운데 나왔다. 소비자도, 판매하는 기업도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순환 경제에 관심을 쏟으면서 중고 물품 거래는 그야말로 대세다.
이에 세계적 스니커즈 브랜드이자 패션 브랜드인 나이키도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에 대한 소비자의 걱정을 더는 차원에서 제품의 '수명 연장'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특히 해마다 전 세계 탄소의 10%·폐수의 20%를 배출하는 패션 업계에서는 과도한 소비를 자제하려는 소비자들의 중고 물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에서 온라인 중고 의류 판매 플랫폼 기업들이 성장성을 앞세워 잇따라 기업공개(IPO)에 나선 것이 이를 방증한다.
중고 의류와 신발을 사고팔 수 있는 플랫폼 포시마크(Poshmark)는 1월 중순 나스닥에 상장, 첫날 주가가 142% 폭등하더니 현재 시가 총액은 30억 달러(약 3조 3,000억 원)에 이른다.
중고 의류 온라인 위탁 판매 업체 스레드업(Thredup)은 지난달 26일 나스닥에 상장했다. IPO 공모가로 14달러를 제시한 스레드업은 1,200만 주를 팔아 1억6,800만 달러(약 1,875억 원)를 조달했고, 상장 첫날 종가는 공모가 대비 43% 가까이 상승한 20달러였다.
2019년 6월 나스닥에 상장한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 더리얼리얼(TheRealReal)은 현재 시총이 21억 달러(약 2조3,500억 원) 수준이다. 스니커즈 리셀(되팔기) 플랫폼 스탁엑스(StockX)는 최근 2억7,500만 달러(약 3,070억 원) 신규 투자 유치에 성공해 추정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약 1조1,100억 원)에서 28억 달러(약 3조1,200억 원)로 두 배 넘게 뛰었다.
대형 유통업체들도 경쟁적으로 중고 판매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백화점 노드스트롬은 지난해 온라인과 뉴욕 플래그십 스토어에 '시 유 투모로(See You Tomorrow)'라는 이름의 재판매 매장을 열었다. 환불·파손 상품을 재정비해 판매하는 공간이다. 니만 마커스·메이시스도 2019년부터 매장 내에서 중고 물품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에는 더현대 서울·갤러리아백화점 등 국내 백화점도 스니커즈 리셀 매장을 열었다.
보스턴컨설팅그룹 분석에 따르면 300억 달러(약 33조5,800억 원) 이상 규모로 추정되는 세계 중고 패션 시장은 앞으로 4, 5년 동안 매년 15~20% 성장할 전망이다.
스레드업은 2019년 280억 달러(약 31조2,600억 원) 규모였던 관련 시장이 2024년이면 '패스트 패션(SPA)'의 1.5배에 이르는 640억 달러(약 71조4,500억원)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절약→미학→환경'…시대 따라 변하는 중고 물품 소비
이는 사회·환경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0~2000년대생)의 소신이 쇼핑 습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스레드업은 Z세대의 40%가, 밀레니얼 세대는 30%가 2019년 중고 의류나 신발, 액세서리를 구매했다고 밝혔다.
사실 '절약 소비' 개념의 중고 물품 거래 역사는 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경우 대표적 중고 물품 판매점의 이름도 대놓고 '알뜰 가게(thrift shop)'였다. 그랬던 것이 1990년대 이후 유명 연예인이나 패션 매체가 구제 의류와 소품을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주목하면서 중고 물품은 미적 감각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됐다.
여기에 온라인 플랫폼 등장으로 거래가 쉬워지고 '깨어난' 젊은 소비자의 책임 의식이 더해지면서 오늘날 패션업계의 중고 물품 시장이 패스트 패션을 위협할 만큼 커졌다는 이야기다.
라티 레베스크 더리얼리얼 대표는 "10년 전 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중고로 물품을 구입했다는 것을 최대한 숨기고 싶어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며 "오히려 되팔 생각으로 중고 물품을 산다"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밝혔다.
따라서 패션 업계의 중고 거래는 커진 시장 규모만큼 관련 업계의 경쟁도 치열하다.
최근 몇 달 동안 IPO로 자금을 조달한 기존 중고 거래 업체 외에도 대여와 재판매를 결합거나 QR코드 인증서 제공 등 새로운 서비스를 가미한 중고 거래 스타트업이 끊임없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는 게 패션 매체 보그비즈니스의 진단이다.
다만 중고 물품 거래 시장 확대가 또 다른 과소비의 축이 돼서는 안 된다고 해외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패션 전문 기자 앨든 위커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중고 물품 판매 플랫폼들은 재판매의 가치를 발굴한 주체로서 짧은 유행 주기를 따라가고 저렴한 제품을 과소비하는 또 하나의 수단이 되기보다 수선을 거쳐 제품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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