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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확천금 꿈꾸는 흙수저 3인방의 코인열차 탑승기

입력
2021.04.16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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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에 설치된 전광판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비롯한 알트코인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비트코인 가격은 한때 7,400만 원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뉴스1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에 설치된 전광판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비롯한 알트코인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비트코인 가격은 한때 7,400만 원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뉴스1

최근 온라인에서 ‘서울 자가(自家)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은 한 11년차 대기업 직장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 중인 글이다. 말 그대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과 그 주변 회사원들의 부동산 투자를 둘러싼 희비를 그린다. ‘부동산 극사실주의 소설’이라는 평과 함께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뜨겁게 공유되며 한 달 만에 170만 명이 봤다고 한다.

'김부장 소설'에 따라붙는 사람들의 열광을 지켜보며 자연히 장류진 작가의 데뷔작 ‘일의 기쁨과 슬픔’을 떠올렸다. 판교 직장인의 일상을 그린 이 작품은 창비 홈페이지에 전문이 공개된 후 2030 직장인 사이에 ‘공감 100배 하이퍼리얼리즘’이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누적 조회수 40만 건을 달성했다. 이 인기에 힘입어 장 작가의 동명의 첫 소설집은 1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최근 출간된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 역시,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일의 기쁨과 슬픔’의 흥행을 이어나갈 작품이다. 마찬가지로 회사를 배경으로 20, 30대 여성 세 명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이보다 더 실감날 수 없을 정도로 핍진하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흙수저 여성 청년 3인방의 코인열차 탑승기’라는 소개글에서도 알 수 있듯 이 핍진함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은 다름 아닌 ‘가상화폐'다. 제목인 ‘달까지 가자’도 자신이 매수한 가상화폐의 가격 폭등을 바라는 투자자들의 은어 ‘To the Moon’에서 따온 것이다.

'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창비 발행. 364쪽. 1만4,000원

'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창비 발행. 364쪽. 1만4,000원


개요는 단순하다. 업계 1위는 아니지만 슈퍼에서 흔히 살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제과회사에 다니는 직장동료 정다해, 강은상, 김지송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웃기는 일도, 화나는 일도, 통쾌하고 기막힌 일도” 함께하는 사이다. 그들이 이런 각별한 사이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암묵적으로 서로를 “우리 같은 애들”이라 부를 수 있는, 같은 처지라는 공감이 있기 때문이다. 각각 5평, 6평, 9평짜리 원룸에 월세로 살고 있고, 학자금 대출이 있고, 자산을 물려줄 부모가 없다.

고만고만한 처지라는 점에서 비롯하는 이들의 우정은, 어느 날 은상이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에 투자해 큰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요동친다. 은상은 “난 이게 우리 같은 애들한테 아주 잠깐 우연히 열린,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해”라는 말로 다해와 지송에게도 가상화폐에 투자할 것을 제안한다. 이후 다해가, 마지막으로 지송이 차례로 이 ‘코인열차’에 탑승하게 되고, 이후 소설의 기승전결과 인물의 성장은 정확히 이더리움의 ‘떡상’과 ‘떡락’에 따라 진행된다.

“나는 그냥 부스터 같은 걸 달아서 한번에 치솟고 싶었다. 점프하고 싶었다. 뛰어오르고 싶었다. 그야말로 고공 행진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다. 내 인생에 한번도 없던 일이었고, 상상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기대조차 염원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것이 내 눈앞에 번쩍이며 펼쳐져 있었다.”

장류진 작가. 창비 제공

장류진 작가. 창비 제공

더 좋은 걸 갖고 싶고, 더 좋은 데 살고 싶고, 더 좋은 것들을 누리고 싶은 욕망. 그런데 그 모든 걸 누리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자산과 배경. 그 간극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계급을 단숨에 전복시킬 유일한 가능성이 가상화폐뿐이라면, 이걸 위해 전부를 거는 게 뭐가 나쁘냐고 소설은 묻는다. 그 선명한 욕망을 우리 앞에 들이민다.

“월급만으로 부족해! 우리에게는 일확천금이 필요하다”는 작품의 메인 카피를 다시 한번 곱씹어본다. 이 욕망 앞에서 완전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소설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것이고, 같은 이유로 누군가로부터 열렬한 환호와 지지를 받을 것이다. 소설은 실제로 출간되자마자 주식 커뮤니티 등에서 “매우 현실적이고 디테일하다”는 반응을 얻었고, 입소문은 판매량으로 이어지는 조짐이다.

문학에 한 시대를 휩쓰는 가장 강렬한 욕망을 그릴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달까지 가자’는 그 책임을 자신의 몫으로 떠안은 소설이다. 설사 그 욕망이 지나치게 배금주의적이고, 속물적이고, 때로는 교양 없어 보이기까지 할지라도, 그게 지금 시대의 욕망임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쨌든 외면할 수 없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 욕망을, 이 소설을. 그게 바로 지금 우리의 얼굴이고 시대의 초상이기 때문에.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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