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시설 피습' 이란, 우라늄 농축 상향 예고
"보복" 경고 하루 만에 이스라엘 선박 피격
'이란 탈선 차단·우방 걱정 불식' 美 이중고
신경전 끝에 겨우 시작된 ‘이란 핵합의’(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 복원 협상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중동에서 이란과 앙숙 사이인 이스라엘의 훼방 때문이다. 핵 시설이 피습된 이란의 반격으로 역내 긴장이 고조된 터에 협상 상대방인 이란을 달래며 불안해하는 우방까지 챙겨야 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처지가 난감하다.
13일(현지시간) 이란 국영 프레스TV에 따르면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부 차관은 이날 JCPOA 복원 협상 장소인 오스트리아 빈에서 14일부터 역대 최고 수준인 농도 60%의 우라늄을 농축하겠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통보했다. 공격 당한 나탄즈 시설에 성능이 50% 향상된 개량형 원심분리기 1,000대를 추가 설치하겠다고도 했다.
이란의 이런 움직임은 이스라엘이 배후로 유력한 11일 나탄즈 시설 피습에 대한 보복 차원이다. 전날 “복수할 것”이라고 경고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탄즈 시설 피습은 이란의 협상력을 더 강하게 한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이 우라늄 농축 중단 제안을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결과적으로 핵 시설 피습 덕에 이란이 정치적 비용 없이 고성능 원심분리기 설치 명분을 확보했다는 게 워싱턴포스트(WP)의 분석이다. 사실 지금껏 이란에 핵 개발 빌미를 제공한 건 이스라엘이다. 이란이 지난해 말 우라늄 농축 수준을 20%로 상향하겠다고 할 때 든 이유도 이스라엘의 이란 핵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 암살이었다.
협상에는 물론 악재다. 원자력 발전 연료용 우라늄 농축도가 4~5%이기 때문에 20% 농축만으로도 연구용이라는 이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하물며 60%는 말할 것도 없다. 유럽 고위 외교관은 WP에 “농도가 군사용 영역(핵무기 개발)으로 넘어간 만큼 이란의 움직임은 협상을 결렬시키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다만 핵 활동 자체가 아직 위협적 수준은 아니라는 게 미국 평가다. 이날 공개된 미 정보당국의 연례 위협 평가 보고서를 보면 “이란이 핵심 핵무기 개발 활동에 나선 건 아니다”라고 돼 있다. WSJ도 이란이 핵무기 제조를 결정하고 완성하는 데 2~3년이 걸릴 거라는 서방 관리들의 말을 전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란을 회유한다는 게 미 정부 목표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란이 핵 협상에 진지한지 의문”이라면서도 “외교적 길만이 앞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패권 경쟁국 중국 쪽으로 이란이 기우는 건 막아야 한다는 게 미국의 기본 입장이다.
그렇다고 오랜 우방인 이스라엘의 형편을 도외시할 수도 없다. 이란이 핵무기를 가지면 맨 먼저 자국을 겨냥하리라는 게 이스라엘의 공포다. 11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지속적이고 철통 같은 헌신을 하겠다”고 약속한 이유다.
이란과 적대적인 중동 우방 눈치도 안 볼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 자국의 임의 탈퇴로 망가진 협정의 복귀 조건으로 미사일 제한 등의 추가 합의를 제안한 건 합의 복원으로 제재가 풀린 이란이 다시 위험해질 게 걱정되는 우방을 고려한 조처라는 게 중론이다.
이란의 복수 천명 하루 만에 벌어진 이스라엘 회사 소유 화물선의 피격도 얼른 중동을 안정시키고 대중 경쟁에 집중하고픈 미국에는 곤혹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피습 선박이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고 이스라엘이 재보복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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