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부담돼 사회보험?회피하는?건설 일용노동자들
서울시, 노동자 부담분 보전하는 제도 마련에 착수
“건설현장에서 15년간 일했지만 사회보험에 가입한 건 불과 8개월 전 입니다. 운이 좋았죠. 수십년을 일해도 대다수는 미가입 상태니까요.”
1년에 6~7번씩 건설현장을 옮겨 다녔던 60대 노동자 박태환씨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한 달에 8일 이상 동일 사업장에서 근무하면 직장가입자로 사회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사회보험료 절반을 부담하기 싫은 건설사가 일주일 단위로 채용하는 ‘꼼수’를 써왔기 때문이다. 건설노동자 중 일부는 본인이 내야할 금액이 부담돼 자발적인 사회보험 비가입자로 남기도 했다.
'사회보험'이란 국민에게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을 보험 방식으로 대처해 국민의 건강과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
사회보장기본법 제 3조 2항
당장 내야할 돈에 건강?노후가 저당 잡힌 건설현장의 일용직노동자들을 위해 서울시가 팔을 걷고 나섰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회보험 가입을 포기하는 경우가 계속 되자 시가 발주한 공공부문 건설현장 일용직노동자들의 사회보험료 부담 몫을 직접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건설사가 낸 일용직노동자의 사회보험료를 시가 보전해주는 식이다. 이달 말 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에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조례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장은 14일 “공공부문 건설사업 발주자인 시가 먼저 책임을 다하면 민간 건설사로도 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 일용직노동자의 사회안전망은 참담한 수준이다. 고용노동부가 2019년 발표한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건설현장 일용직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99.7%에 달하지만, 노동자들의 건강?노후와 연관된 건강보험, 국민연금 가입률은 각각 31.0%, 30.6%에 불과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재 건설현장의 일용직노동자 상당수는 일주일 만에 다른 일터로 자리를 옮기는 ‘떠돌이’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018년 건설노동자의 사회보험 적용대상을 월 20일 이상 근무한 노동자에서 8일 이상으로 확대했다. 이들의 사회보험 가입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러자 오히려 고용불안이 심화했다. 일부 사업장에선 일용직노동자를 일주일 단위로 채용했고, 8일 이상 근무한 노동자를 7일 이하로 근무했다고 서류를 조작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시 자체조사에서 2017년 47%였던 7일 이하 단기근로자 비율이 2019년 70%로 급증한 배경이다.
시가 일용직노동자들이 내야 할 사회보험료 직접 지원에 나선 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대비해 내야 하는 이 금액이 수입이 일정치 않은 이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공공부문 발주 건설현장 10곳 중 9곳에선 일용직노동자들이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오히려 건설사가 공사비에 포함된 사업주의 사회보험 부담금을 반납하고 있다.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의 노동자 부담분은 총 7.8%. 일당 12만원일 때 공제액은 1만원도 안 되지만, 언제 일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사는 일용직노동자에겐 사치라고 생각될 수 있는 금액이다. 시의 지원이 이뤄지면 떠돌이 일용직노동자도, 공공부문 건설현장 건설사가 사업주 몫의 사회보험료를 반납하는 일도 상당부분 줄어들 전망이다. 심 센터장은 “건설현장 일용직의 처우가 개선되면 숙련 인력, 청년 인력을 유치할 수 있게 된다”며 “고용주뿐 아니라 건축물을 이용할 시민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건설현장 일용직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주휴수당도 지원하고 있다. 주휴수당 지원 이후 공공 발주 건설 현장 33곳의 6개월 간 임금을 분석한 결과 주휴수당을 받게 된 노동자 비율은 12%포인트(13.4%→25.4%) 증가했고, 월 평균 노동일수도 9.5일에서 11.3일로 늘어 고용안정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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