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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가 된 美中 반도체 패권… 승패 넘어 생사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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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가 된 美中 반도체 패권… 승패 넘어 생사 달렸다

입력
2021.04.10 04:30
수정
2021.04.10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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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가는 기술·제품 다 막는 美,?아전인수 노골화
반도체 품귀 속 공급망 재편 시도… 주변국 난감
백악관 불려가는 삼성, 샌드위치 신세 진퇴양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반도체 분야가 안보 이슈의 최전선으로 떠올랐다. 최근 반도체 품귀 현상을 계기 삼아 미국은 자국의 기술력과 생산력을 강화하기 위해 ‘반도체 동맹’으로 주변국을 끌어들이고, 중국 역시 한국을 비롯한 이 분야 선진국 기술과 인력 빼돌리기로 ‘반도체 굴기(?起)’를 강화하고 있다. 패권 경쟁이 거세질수록 한국 등은 미중 가운데 양자택일을 강요 당할 위기로 내몰릴 전망이다.

미국은 당장 기술ㆍ제품을 막론하고 반도체와 상관이 있으면 뭐든 중국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틀어막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워 중국을 꺾고 기술 패권을 장악하는 게 미국의 최종 목표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나 러만도 미국 상무장관이 4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지나 러만도 미국 상무장관이 4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거래 금지 블랙리스트에 中반도체설계회사 포함

미 상무부는 8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중국의 슈퍼컴퓨팅 기업 및 정부 연구소 7곳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들이 중국군 현대화를 지원하고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에 관여해 미국의 안보와 외교 이익을 해쳤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조치에 따라 미 기업들은 정부 허가 없이 이들 기술 수출 금지 대상과 거래할 수 없게 된다.

슈퍼컴퓨팅 능력으로 뭉뚱그렸지만 미국이 겨냥하는 건 반도체다. 리스트의 첫머리에 거론된 ‘톈진 파이시움 정보기술’은 2014년 중국군 연구기관인 ‘중국인민해방군국방과기대학’(NUDT)과 국영기업 ‘중국전자’(CEC), 톈진시 정부 등이 합작해 세운 반도체 칩 설계 회사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케이던스’ 등 미 업체의 설계 소프트웨어를 쓰고 생산은 대만 업체 TSMC에 위탁하는 이 회사가 중국군 산하 ‘중국공기동력연구개발센터’(CARDC)의 극초음속 무기 개발에 이용된 반도체 칩을 공급해 줬다는 게 미 정부의 의심이다. CARDC는 1999년, NUDT는 2015년에 각각 미 상무부 블랙리스트에 등재됐다.

미국이 차단하려는 게 기술만은 아니다. 제품도 통제 대상이다. 공급 축소와 수요 확대가 맞물리며 세계적으로 반도체가 품귀 상태인 터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처럼 반도체 수급도 한정된 물량을 놓고 쟁탈전을 벌여야 하는 제로섬 게임 양상이다. 중국 공급분을 줄여야 자국 내수의 안정적 충족이 가능하다고 미국이 판단할 수 있다.

가장 비상인 곳은 자동차 업계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 최대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가 캔자스주(州)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공장에 이어 반도체 대란의 영향을 받지 않던 테네시주와 미시간주의 3개 공장의 생산까지 중단하거나 양을 줄일 계획이다. 해당 지역 공장들은 인기 모델들을 만들던 곳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공급난이 언제 해결될지 가늠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수요 오판 탓에 벌어진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균형이야 업계 중론대로 올 하반기면 해소될 공산이 크다 해도, 코로나19 여파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고 전기차 등 미래 산업이 예상보다 빨리 성장하며 급속히 늘고 있는 반도체 수요를 지금 글로벌 생산 구도상 단기에 공급이 따라잡기는 어렵다.

이렇다 보니 반도체가 점점 무기나 식량 같은 안보 자산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이 이날 브리핑에서 “지속되는 반도체 칩 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 바이든 행정부가 범정부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하고, 12일 국가안보보좌관 주재로 백악관이 이를 논의할 긴급 회의를 열기로 한 건 이런 배경에서다. 2일 미국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서도 반도체 문제가 다뤄졌다. 의회(상원)까지 나서서 안정된 반도체 공급을 위한 초당적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월 24일 백악관에서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관한 행정명령 서명을 하기에 앞서 반도체 칩을 들고 명령 취지를 언급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월 24일 백악관에서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관한 행정명령 서명을 하기에 앞서 반도체 칩을 들고 명령 취지를 언급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中 “美, 기술 패권 유지하려 국가안보 핑계 탄압”

하지만 위기는 기회다. 이참에 반도체 분야 주도권을 확보하고 중국도 견제하겠다는 게 미국 심산인데, 최대 우군은 늘 중국 위협권에서 노심초사 중인 대만이다. 최첨단 반도체 제조공장을 보유한 대만은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국가이기도 하다.

실제 대만은 미국에 협조적이다. 코로나 사태로 타격을 입은 글로벌 공급망을 재구축할 때 중국을 배제하자는 데 공감했다고 한다. 우자오셰(吳釗燮) 외교부장은 7일 브리핑에서 “대만 정부는 반도체 공급망이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미국과 긴밀히 공조해 왔다”며 “앞으로도 미국과 협력해 대만의 공급 업체를 감독할 것”이라고 했다.

난감해진 건 중국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한국이다. 중국은 3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 뒤 발표문을 통해 “한국과 반도체 분야 협력 파트너가 되기를 바란다”고 일방적으로 구애했다. 중국은 1분기 한국 반도체 수출액 비중의 38.5%를 차지하는 핵심 교역국이다. 대미 비중은 7.1%다.

12일 백악관 반도체 긴급회의에 불려가는 삼성은 곤혹스럽다. 업계에서는 미국 내 공장 증설을 서두르라는 압박 정도로 해석되고 있지만, 대중(對中) 반도체 공급 제한 요구가 이뤄질 경우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어서다.

일본도 회유 대상이다. 8일 지나 러만도 미 상무장관과 카지야마 히로시 일본 경제산업성 장관이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해 협력하자고 전화로 약속했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이 한국ㆍ대만ㆍ일본 등 동북아시아 공급망 주요국과 중국 간의 반도체 중간재 교역을 대상으로 제재 조치를 발동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내다봤다.

미국이 이처럼 동맹ㆍ우방 단속을 통해 대중 수출을 통제하고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데 공들이는 건 결국 글로벌 기술ㆍ산업 패권을 손에 쥐기 위해서다. 이날 파이시움 등이 대상인 미 제재에 “고작 모기에 물렸을 뿐”이라며 태연한 척하면서도 중국이 경계하는 것 역시 미국의 패권 욕심이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 정부가 과학 기술 패권을 유지하려고 국가 안보를 악용해 중국 첨단 기술 기업을 탄압하고 있다”며 “이는 위선”이라고 비난했다.

권경성 기자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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