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 가족을 통해 들여다본 생의 모든 순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 가족을 통해 들여다본 생의 모든 순간

입력
2021.04.08 20:00
19면
0 0

마쓰이에 마사시의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마쓰이에 마사시는 편집자로 은퇴한 뒤 쉰네 살의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해 단숨에 일본 문학의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Shinchosha

마쓰이에 마사시는 편집자로 은퇴한 뒤 쉰네 살의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해 단숨에 일본 문학의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Shinchosha

일본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는 다소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대학 재학 중 문학계신인상 가작을 수상하며 데뷔했으나 이후 오랫동안 작가가 아닌 편집자로 일했다. ‘예술신초’, ‘생각하는 사람’ 등의 편집장을 지내고 굵직한 기획을 탄생시키며 편집자로서 남부러울 것 없는 이력으로 은퇴했다.

그러다 돌연 2012년 쉰네 살의 나이에 사실상 데뷔작인 장편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발표한다. “명석하고 막힘없는 언어의 향연”, “찬란한 리얼리즘”이라는 호평을 받은 이 작품은 제64회 요미우리문학상을 수상하며 마쓰이에 마사시를 단숨에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떠오르게 만든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등 작가의 전작을 사랑했던 독자라면 어김없이 반기게 될 신작이 나왔다. 최근 출간된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는 섬세하게 세공한 어휘로 찬란한 삶의 순간을 포착해내는 작가의 향취가 흠뻑 묻어나는 장편소설이다. 일본에서는 2017년 출간돼 제68회 예술선장문부과학대신상을 받았다.

“짧은 시간에 부담 없이 즐길 만한 엔터테인먼트만 성행하는 이 시대에 호사를 누리듯 차분히 읽고 싶은 책”이라는 작가 아사이 료의 상찬처럼,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는 요즈음의 일본 문학 흐름에서도 드물게 튀는 소설이다. 홋카이도 동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에다루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소에지마 가족 3대의 이야기를 100여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그린다. 흥분하거나 미화하는 일 없이, 그저 흘러가는 삶의 모습들을 담담히 그리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마치 그 시절을 직접 살아낸 듯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되고 만다.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비채 발행. 504쪽. 1만5,500원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비채 발행. 504쪽. 1만5,500원


1901년 나가노에서 태어난 요네가 소에지마 신조를 만나 결혼한다. 둘은 가즈에, 신지로, 에미코, 도모요까지 1남 3녀를 낳는다. 세 딸은 평생 독신으로 살고 아들 신지로는 아사이카와 출신의 도요코와 만나 결혼한다. 둘은 다시 아유미와 하지메 남매를 낳는다. 아유미는 35세에 암으로 일찍 죽고 아들 하지메는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이로써 대가 끊기게 된 소에지마 가(家)의 짧은 일대기가 각각 인물들의 시선으로 총 24장에 걸쳐 펼쳐진다.

태어나고, 고향을 떠났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서서히 늙고, 기억을 잃고, 끝내는 죽는다. 그 안에는 기쁨도 슬픔도 뒤섞여 녹아 있다. 때문에 삶은 기승전결이라는 단순한 패턴으로 정리되지도 않고, 해피엔딩이나 새드엔딩으로 결론지을 수도 없다.

작가는 이 자명한 진리를 목소리 높여 설파하는 대신 가족들의 심연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으로 에둘러 말한다.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산파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요네의 심연, 약한 아이로 태어나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던 에미코의 심연, 한때 사랑했던 사람에게 죽기 전 종부성사를 부탁하는 아유미의 심연이 저마다 웅숭깊이 펼쳐진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가 건축에 대한 사유와 공간을 매개로 삶의 전경을 그려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천문학, 종교, 문학, 음악 등이 더욱 다채롭게 동원된다. 천문대에서 근무하는 아유미와 문학 교수가 된 하지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된 이치이처럼 다양한 직업과 관심을 가진 인물들을 통해 세상을 보다 풍성하게 해석한다.

소설은 요네가 조산사의 일을 배워가는 전반부와 요네의 자식들이 아흔이 넘은 노인이 되어 서서히 죽어가는 후반부가 대치를 이룬다. 독자는 이야기를 따라 탄생과 소멸을 자연스레 목도하게 된다.

“소에지마 하지메는 소실점을 등지고 있었다”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사라질 준비. 그것은 큰 고리를 중간 정도의 고리로 줄이는 일, 작은 고리를 중심을 향해 더욱 축소해가는 일, 고리였던 것은 결국 점이 되고 그 작은 점이 사라질 때까지가 그 일이었다.”라는 끝에 다다른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태어났고 끝내 사라질 그 소실점을 향해서.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는 그 소실점에 관한 모든 이야기다.

한소범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