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협박용' 동영상… 윤중천 주변서도 "한몫 챙기자" 아귀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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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협박용' 동영상… 윤중천 주변서도 "한몫 챙기자" 아귀다툼

입력
2021.04.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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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가 직접 쓰는 윤중천·김학의 백서]
<4>이전투구 : 김학의 동영상
尹 내연녀, 차량서 발견된 CD 영상 받아
금전갈등 윤중천 구속시키려 경찰 제보
윤중천 조카, 종편에 CD 5억 판매 협상
성폭행 피해 '고백 동영상' 제작한 일당
김학의 근무지 전화해 20억 갈취 시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019년 5월 9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동부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동영상 분량: 1분 30초.

②장소: 강원 원주시 별장 노래방의 홈바(home bar) 옆 출입문 부근에 위치한 소파에서 촬영자가 상체를 비스듬히 기댄 자세로 카메라 앵글만 상·하로 이동하면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

③내용: 한 남성이 탁자 위에서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한 여성이 이 남성에 안겨 블루스를 추는 뒷모습이 나옴. 이후 남성이 여성 뒤에서 성관계를 시도. 이 순간 촬영자로 추정되는 남성이 "치~"라고 말함.

④등장 인물: 남성은 안경을 쓰고, 속옷을 제외하고 옷을 모두 탈의하고 있음. 일시적으로 여성의 옆모습이 촬영됨.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을 조사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결과보고서에 기술된 '별장 성접대 동영상'과 관련한 주요 내용이다. 2013년 세상에 알려진 90초 분량의 이 동영상은 자극적인 이미지 탓에 8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검찰 간부의 성접대 장면이 각인된 이미지의 전부는 아니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볼 법한 건설 브로커와 법조계 고위인사의 비정상적 네트워크가 현실에서도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동영상을 바라보는 경찰과 검찰의 시각차, 동영상을 입맛대로 활용하려는 정치권의 행태까지 더해지면서, 동영상 자체가 여러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김학의 사건 진상조사단 결과보고서에는 동영상이 찍히고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돈을 뜯어내고 협박하고 배신하며 각자의 이권 챙기기에 골몰하는 천박한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별장 동영상 이외에 또 다른 동영상이 사익 추구를 위해 활용된 사실도 나온다. 동영상 바깥 세상도 추악하긴 마찬가지였다.


동영상 유출 발단 윤중천 '간통 사건'

유부남인 윤중천씨는 수십 년간 여러 여성과 내연 관계를 지속했다. K씨는 윤씨가 만났던 여성 중 한 명으로, 두 사람은 2011년 11월 경락 마사지사 소개로 인연을 맺게 된다. K씨는 이혼 후 서울에서 유명 학원을 운영하던 건실한 사업가였다. 상당한 재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윤씨와 교제하면서 매달 윤씨에게 생활비로 2,000만 원을 주고 사무실 보증금까지 부담해줬다.

두 사람 관계는 2012년 7월쯤 틀어졌다. 진상조사단은 K씨 기대와 달리 윤씨가 부인 및 다른 내연녀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K씨에게 받아간 20억 원도 돌려주지 않아 갈등이 생긴 것으로 봤다. K씨의 거듭된 독촉에도 윤씨가 돈을 갚지 않자, K씨는 '김학의 별장 동영상' 배경이 된 윤씨의 강원도 원주 별장 건물 및 토지에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윤중천과 K씨가 교환한 문자메시지 일부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보고서

일시보낸 사람내용
2012.09.25윤중천우리가 무슨 원수진 것도 아니고. 사람이 돼 가지고 이러는 것 아니야. 오해하지 말고 통화해.
2012.09.26K씨내가 지금 이자 부담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두 배로 갚아주겠다는 약속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 언제 어떻게 제 돈과 이자를 해결해주실 건지 구체적 대안을 주시기 바랍니다.
2012.09.26윤중천잘 들어. 나는 널 만나서 대화로 잘 풀어서 유종의미를 거두려고 했는데 너 하는 짓거리가 (…) 다시한번 심사숙고하여 윤중천과 어떻게 마무리하는 것이 좋은지 지혜롭게 판단하길 바라. 당신이 잘못 판단해서 추후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윤중천일 원망하지 마.

격분한 윤중천씨는 근저당권을 풀기 위해 동영상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차량에서 K씨와 성관계한 장면이 담긴 영상이었다. 동영상은 윤씨가 차량에 동승한 남성을 시켜 촬영해뒀던 것으로, 윤씨는 동영상을 자신의 휴대폰으로 전송 받아 K씨를 협박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전면에 나선 건 윤씨가 아니라 윤씨 부인이었다. 2012년 9월 28일 윤씨 부인은 동영상과 사진을 들고 K씨 학원에 찾아가 '근저당권 설정을 해지하지 않으면 K씨를 간통으로 고소하겠다'고 통보했다. 으름장을 놨는데도 K씨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윤씨 부인은 20일 후에 K씨와 남편인 윤씨를 간통 혐의로 고소했다. 진상조사단은 윤씨가 K씨를 압박하기 위해 부인을 사주해 자신과 K씨를 고소하도록 한 것으로 의심했다.


윤중천 체포된 사이 차량서 발견된 김학의 CD

K씨는 윤씨 부부의 행태에 분개하면서도 돈을 영영 돌려받을 수 없을 것이란 위기감이 커졌다. 이에 윤씨를 구속시킨 후 원주 별장을 처분할 계획을 세우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건이 흘러갈 수 있도록 불법 브로커 P씨를 끌어들였다. 유명 프로골퍼 부친이었던 P씨는 K씨에게 1,000만 원을 받은 후, 평소 알고 지내던 경찰 고위관계자를 통해 서울 서초경찰서에 수사를 청탁했다. K씨는 2012년 11월 윤씨를 합동강간 및 상습공갈 혐의로 서초경찰서에 고소했다. 자신이 윤씨와 동승한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며, 윤씨가 성관계 영상을 주변에 유포할 것처럼 협박해 돈을 갈취했다는 취지였다.

K씨는 윤씨를 고소하면서 여성 J씨도 합류시킨다. J씨 역시 윤씨와 금전문제로 갈등이 생겼고, 그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렸다. K씨는 J씨에게 '윤씨가 구속되면 내가 윤씨에게 빌려준 벤츠 승용차를 팔아 2,000만 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K씨 제안을 받아들인 J씨는 경찰에서 '윤중천에게 처음 강간을 당한 후 심리적으로 예속돼 성폭행을 당하고 돈을 뜯겼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진상조사단은 K씨가 J씨를 합류시킨 이유는 본인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고 윤씨의 악행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봤다.

윤씨가 2012년 12월 15일 경찰에 체포되자, K씨는 P씨를 시켜 벤츠 승용차를 가져오도록 했다. P씨는 지인 2명과 함께 차량을 찾아내자 K씨와의 약속을 어기고, 차량을 임의로 팔아버린 후 연락을 끊어버렸다. 계획이 틀어져 2,000만 원을 받지 못한 J씨 역시 K씨와 갈등을 빚게 된다.

문제의 '김학의 별장 동영상'은 벤츠 승용차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P씨 일당이 2012년 12월 차량을 처분하려고 내부를 정리하는 중에 해당 동영상이 담긴 CD를 확인한 것. 이들은 K씨에게 차량을 넘기는 대신 CD 속 영상을 휴대폰으로 재촬영해 전송했다. P씨 일당 중 한 명은 경찰 조사에서 "안경을 착용한 50대 중년 남성이 20~3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과 노래를 부르며 성관계를 하는 내용"이라고 동영상에 대해 진술했다.

K씨에게 자신과 윤중천이 성관계하는 동영상이 있는데 그것을 찾아주라는 부탁을 들었고, 윤중천이 고위 공직자들에게 성접대를 한 동영상을 찍어 뒀다는 말을 들은 적 있어 혹시나 하고 (벤츠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2013년 5월 P씨 일당 중 한 명의 경찰 조서 중

김학의 차관 내정 전에 동영상 소문

이즈음 검찰 안팎에선 '검찰 최고위층 성관계 동영상이 존재한다' '동영상 속 남성이 김학의 (당시) 대전고검장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2013년 2월 성접대 비위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 경찰은 수소문 끝에 K씨를 정보 제공원으로 삼았다. K씨는 당시 서초경찰서에서 수사를 받던 윤씨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별장 동영상을 활용해 사건을 확대시키려고 계획했다.

K씨는 경찰청 범죄정보과 소속 A경감에게 '김학의 별장 동영상' 존재 가능성을 언급한 뒤, 2013년 3월 4일부터 8일까지 '윤중천 관련 인물들'을 정리해 이메일을 보냈다. 여기에는 김학의 전 차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K씨는 사건을 확대할 목적으로 J씨를 설득해 A경감에게 김 전 차관으로부터 성폭행 당했다는 진술을 하도록 했다. J씨는 2013년 3월 11일 A경감에게 이메일을 보내 '2008년 겨울에서 2009년 초순경 사이에 원주 별장에서 김학의와 1박 2일 동안 성관계를 하고 20만~30만 원의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2013년 3월 13일 김학의 고검장이 법무부 차관에 내정되고, 이튿날 방송 뉴스에서 '김학의 별장 동영상' 보도가 나오자, 경찰은 닷새 뒤인 3월 18일 J씨 조사를 시작으로 김 전 차관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K씨 역시 이튿날 경찰에 USB를 제출하는데, 여기엔 P씨 일당이 재촬영한 '김학의 별장 동영상'이 담겨 있었다.


"김학의가 돈 안 빌려줘" 조카가 CD 옮겨 저장

김학의 별장 동영상은 2007년 겨울 촬영된 후 수개월 간 윤씨 휴대폰에 잠들어 있다가, 2008년 5월쯤 윤씨의 5촌 조카인 B씨를 통해 CD에 저장됐다. B씨는 2013년 3월 21일 경찰 조사에서 "2008년 여름쯤 윤씨가 휴대폰에 있는 동영상을 CD로 구워 달라고 해서 구워줬다"고 진술했다.

B씨 진술에 따르면, 윤씨가 해당 영상을 CD로 구워 달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B씨는 경찰에서 "윤씨가 김 전 차관으로부터 돈을 빌리려고 했는데 거절당하자, 직접 촬영했던 동영상 일부를 캡처해서 김 전 차관에게 보내도록 시켰다"며 "김 전 차관은 이때부터 윤씨를 멀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주변에 "동영상을 크게 써먹을 것"이라고 자랑했다고 한다. K씨는 2013년 3월 23일 경찰 조사에서 "직접 동영상을 찍은 걸 갖고 있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언젠가는 크게 써 먹는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했다"고 말했고, 윤씨 지인도 "윤씨가 검사장 섹스 동영상도 찍어 뒀다고 했고, 직접 볼 거냐고도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윤씨뿐만 아니라 B씨 역시 동영상으로 한몫 챙기려는 정황도 포착됐다. 동영상이 핫이슈가 되면서 보도 경쟁이 치열해지자, 김학의 차관 내정 사흘 뒤인 2013년 3월 16일쯤, 종합편성채널에 5억 원을 받고 해당 영상을 판매하려고 협상한 것이다. 결과보고서에 첨부된 수사기록 중 언론사 기자와 B씨의 통화 녹취록을 보면, 기자가 "1억 정도"라고 이야기하자, B씨가 "5억 정도는 생각했었다"고 값을 높여 불렀다.


윤중천씨가 한 말만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불륜 관계 테이프를 다 촬영해서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자기한데 불리하게 하면 그 테이프를 세상에 알린다고 하면 그분들이 꼼짝을 못하고 자기 요구를 다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윤중천 지인이 경찰에 제출한 자필 진술서

성폭행 '고백 동영상' 고검장실에 4회 전화

결과보고서에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동영상이 하나 더 언급된다. K씨와 P씨 일당이 김학의 별장 동영상을 입수하기 직전인 2012년 12월 초쯤 이른바 '고백 동영상'을 제작한 것이다. 윤중천씨 요구로 김 전 차관을 만나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J씨의 진술을 녹화한 것으로, P씨 일당과 J씨는 '고백 동영상'을 통해 김 전 차관에게 20억 원을 뜯어내려고 계획했다. K씨도 여기에 가담한 것으로 파악됐다.

P씨는 J씨 영상을 촬영한 뒤 2012년 12월 3일과 4일 김 전 차관이 근무하던 대전고검장실로 4차례 전화해 11분간 통화했다. P씨는 김 전 차관과 연결되지 않았다고 경찰에 진술했지만, 진상조사단은 짧게는 36초, 길게는 394초 동안 통화한 것으로 볼 때 김 전 차관과 직접 통화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P씨의 김학의 대전고검장실 전화내역. 그래픽=신동준 기자

하지만 J씨는 몇 주 뒤 '고백 동영상'을 이용한 협박 계획에서 이탈했다. P씨 일당이 K씨를 배신하고 벤츠 차량을 마음대로 팔아버린 후 K씨가 자신에게 주기로 했던 2,000만 원을 받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J씨는 해당 영상을 삭제해줄 것과 협박 계획에서 이탈할 것을 P씨 일당에게 통보했다고 한다. 경찰은 김 전 차관에게 20억 원을 뜯어내려고 한 P씨 일당에게 공갈미수 혐의를 적용했지만, 김 전 차관이 실제로 협박을 당했는지 확인되지 않아 처벌을 면했다.

윤중천ㆍ김학의 백서를 쓰는 이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2017년 12월 법무부는 검찰 과거사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과거 사건 규명을 통한 ‘더 나은 미래’를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선정한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은 가장 주목 받는 사건으로 꼽혔다.

과거사위는 이후 “검찰의 중대한 봐주기 수사 정황이 확인됐다”고 발표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검찰개혁의 기폭제가 되기는커녕 당사자들이 제기한 소송과 정치적 논란, 그리고 ‘불법 출국금지’와 ‘면담보고서 왜곡’이라는 후유증만 남겼다.

한국일보는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1,249쪽 분량의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 최종 결과보고서’와 수사의뢰의 근거가 된 ‘윤중천ㆍ박관천 면담보고서’를 입수했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 검찰ㆍ경찰ㆍ사건 관계인들을 접촉해 불편한 진실이 담긴 뒷이야기도 들었다. 이를 통해 자극적이고 정치적인 구호에 가려 주목 받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압도적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기 위함이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이 1년간 파헤치고도 발간하지 못한 백서를 한국일보가 대신 집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 싣는 순서> 윤중천ㆍ김학의 백서

<1> 면담보고서의 이면

<2> 진상조사단의 실체

<3> 반칙 : 윤중천이 사는 법

<4> 이전투구 : 김학의 동영상

<5> 법과 현실 : 성접대와 성착취

<6> 동상이몽 : 검찰과 경찰

<7> 반성 : 성찰 없던 활동

특별취재팀= 신지후 기자
이승엽 기자
최나실 기자
정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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