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권 교체 위해 두 차례 양보 끝 부산시장 출마
오거돈 성추문 낙마에 저조한 당 지지율 극복 못 해
"지역주의 극복 위해 험지 가리지 않아" 긍정 평가도
더불어민주당 ‘구원 투수’ 김영춘 후보는 결국 ‘패전 투수’가 되고 말았다. 같은 당 출신인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문으로 낙마하고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저조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열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부산시장 출마는 김 후보의 숙원이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시장 출마를 선언했지만 '지방정권 교체'라는 대의를 위해 뜻을 접고 범야권 후보였던 오거돈 무소속 후보를 밀었다. 재선 의원 신분이던 2018년 다시 시장직에 도전하려고 했지만 의석을 지켜야 한다는 당의 입장을 감안해 의원직을 던지지 못했다. 그가 출마를 접은 덕분에 그해 다시 출마한 오거돈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다. 23년 만에 부산에서 지방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그의 결단이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낙선했지만 김 후보의 행보는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험지를 가리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산에서 쌀집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려대 영문학과에 단과대 수석으로 입학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그는 군사정권에 맞서던 김영삼(YS) 당시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과 인연이 돼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0년 1월 YS가 노태우(민정당), 김종필(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하자 김 후보는 YS와 결별했다. 3당 합당으로 만든 민주자유당(민자당)에서 당 대표가 된 YS는 주류인 민정계를 장악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중 김 후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는 정치적 스승인 YS를 돕는 길을 택했다. 2000년 총선 때 서울 광진구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처음 의원 배지를 달았다.
2003년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영향을 받아 지역주의 타파를 목표로 안정적인 보수정당을 떠나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 2009년 노 대통령 서거 이듬해 민주당 최고위원이던 그는 험지인 부산 출마를 선언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20대 총선에선 부산진구갑에서 당선됐지만, 지난해 총선에선 다시 고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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