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신축은 언제부턴가 선거철 단골 공약이 됐다. 서울만 하더라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잠실야구장을 돔구장으로 바꾸겠다고 했고, 전임인 오세훈 전 시장도 재선을 앞둔 2009년 고척스카이돔 외에도 “국제대회를 치를 3만석 이상의 돔구장 신축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서울에는 이들이 구상한 구장은 들어서지 않았다. 오히려 프로야구팀 LGㆍ두산이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잠실야구장은 9개 프로 구장 가운데 가장 노후한 시설로 전락, 선수들이 기피하는 구장이 됐다. 야구팬들의 표심을 잡겠다는 속내로 가벼이 내놓은 공약이었다는 방증이다.
이번 4ㆍ7 재보궐 선거에서도 팬심을 이용해 서울시장 후보들은 너도나도 구장 신축을 공약화했다. 조속한 잠실야구장 신축을 약속했고, 한발 더 나아가 구장 신축이 서울을 관광도시로 끌어올릴 핵심 사업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잠실구장은 이젠 서울시 손에서 벗어나 있다. 전시장, 회의시설, 스포츠콤플렉스 등으로 묶어 개발하는 잠실 스포츠ㆍ마이스 복합단지에 속해 2016년부터 사업이 추진 중인데, 기획재정부 민간사업투자심의위원회 승인이 있어야 사업자 선정 등 후속조치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기재부는 사실상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며 심의를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부동산 실패를 자인하고 있는 정부여서, 적어도 임기를 마칠 때까진 심의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신임 서울시장의 의지와 상관없이 2025년 준공 계획의 차질이 불가피해졌고, 1년 임기의 신임 시장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은 셈이다.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이례적으로 신임 서울시장에 신축 구장의 대안인 잠실야구장 시설 개선 협조를 요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잠실구장은 광주, 대구, 창원 등 2000년대 들어선 최신 시설과 다르게 경기공간 위주로 1982년 건설돼, 선수들을 위한 공간이 부족하다. 특히 원정팀에는 제대로 된 라커룸이나 실내 연습공간, 치료공간 등 필수공간을 제공하지 않아, ‘동호회 선수처럼 유니폼만 갈아입고 경기에 나선다’는 비아냥이 선수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나온다. 선진야구를 경험한 추신수가 처음으로 잠실야구장에서 연습하며 “힘든 환경에서 야구하는데도 국제대회 성적을 내는 선수들이 대단하다”고 한 이유다.
프로선수가 최상의 조건으로 경기를 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구장을 임대하고 개ㆍ보수하는 주체인 서울시가 맡아야 할 부분이다. 신임 서울시장은 분에 넘쳐 이행할 수 없는 일로 공약(空約)이 되지 않도록, 이제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잠실야구장 내 선수들 편의시설이라도 개선하길 바란다. “공약을 조금이라도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염원에 또다시 화답하지 않으면, 1년 후 냉정한 야구팬들의 심판이 뒤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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