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세계가 공존하는 무대를 만드는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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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세계가 공존하는 무대를 만드는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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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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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단비 드라마투르그(연출가와 공연 작품의 해석 및 각색을 하는 사람)가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합니다. 뮤지컬과 연극 등 기획부터 대본, 통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무경험을 토대로 무대 안팎의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공연을 준비 중인 임지민 연출가.

"각각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방법은 각자가 열심히 사는 것이다." 국립극단이 16일부터 선보이는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이하 자이툰 파스타)'의 임지민 연출이 요즘 "꽂혀" 있는 말이다.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공연은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임 연출은 어떠한 정치적 혹은 사회적 프레임을 덧입히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다름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질문한다. "타인이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역으로 각자의 삶에 충실할 때 비로소 타인의 삶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요?"

일주일 중 유일하게 연습이 없는 일요일 저녁에 임 연출을 만났다. 그는 2014년 직접 쓰고 연출한 멀티미디어 연극 '타이니슈퍼맨션'을 통해 연출가로 데뷔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한 '젊은 예술가 20인'에 선정됐다. 2019년에는 제40회 서울 연극제에서 '집에 사는 몬스터'로 대상을 수상하며 떠오르는 신예연출가로 주목 받았다. 연극을 하게 된 계기를 묻자, 고등학교 시절 일찌감치 방송드라마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화려한 전력이 드러났다. "수상작을 방송제에서 발표하게 되면서 관객에게 이 내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처음으로 고민했어요. 자연스레 연출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이후 연극이 아닌 인류학을 전공했지만 "문화의 상대성을 배우며 각자의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 연출 작업의 핵심을 이루는 생각과 만나게 됐다"고 회고했다. '오페라의 유령'과 '캣츠'를 보고 도전하고 싶은 연출 장르가 공연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그는 "어떻게 하면 공연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를 궁금해 하다가 포털 검색창에 '연출'이라는 단어를 입력했다. 문화예술원(SSOPA)이 운명처럼 첫 번째 창에 떴고,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던 그는 교환학생을 핑계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이를 인연으로 현재 연출가로 활동 중이다.

그가 활동하는 근간은 '라마플레이'라는 일인극단이다. 그의 별명이었던 '라마'와 공연을 총칭하는 '플레이'를 합한 이름은 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해 사업자명이 필요해서 만들었다. 그러나 이름은 그의 연출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초원 위를 계속해서 전진하는 라마의 모습을 상상하며, 마찬가지로 어떤 목적지를 예정하지 않고 끝없이 펼쳐진 초원으로 나아가보자 싶었어요." 일인극단을 꾸리게 된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나라는 사람은 계속해서 변화하는데, 하나의 약속 안에서 같은 팀원들과 작업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일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어요. 새로운 주제를 만날 때마다 그에 맞는 사람들과 그 때 필요한 감각과 열정으로 작품에 집중하기를 원해요." 그는 웃으며 자신의 작업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바람둥이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인지 임 연출의 무대는 신선함과 의외성으로 가득하다. 2016년 서울과 프랑스 파리에서 동시 개최된 '댄스 엘라지(DANSE ELARGIE)'라는 무용 경연대회에서 그는 '볼 얼라이브(Ball Alive)'로 무대에 살아있는 닭을 등장시켰다. 축구 경기를 모티브로, 축구공 대신 닭과 교감해 하모니를 이루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예정되지 않은 재미난 춤 공연을 만들어냈다. 작년에는 인천의 한 호텔에서 '조안나 프로젝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관람객들은 극장이 아닌 일상의 공간을 거닐며, 이를테면 갑자기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나타나는 것처럼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체험했다.

임 연출은 무대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여러 세계가 들어올 수 있는 판을 짜고 싶다"고 강조했다. 단면이 아닌 '다면'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공연을 앞두고 있는 '자이툰 파스타'의 경우, 무대와 객석이 공존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관객들은 360도 회전 가능한 의자에 앉아 공연을 관람한다. 그는 "작품에 나오는 각각의 인물들이 아주 잠시라도 관객을 스쳐가는 순간에 저 사람의 삶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연극이 보통 주인공의 서사를 따라간다면, 이 공연은 여러 인물들의 삶이 무대 위에 각각의 방식으로 흘러가며 포착되기를 시도한다. "마침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회적 이슈를 그린다기 보다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작품이라 생각했어요. 원작 소설의 의식을 잘 전달하기 위해 한 명의 특별한 인물이 아닌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 인물을 그려내고자 노력했고, 그래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없앴어요."

기획 측면에서 다분히 리스크가 따르는 이러한 선택에 대해 그는 "코로나 시대라 더 필요하고 가능한 무대"라고 말했다. "띄어 앉기로 인해 객석의 수를 줄여야 하지만 임시방편적인 대안들과 타협하고 싶지 않다"는 그는 "공연의 현장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안전수칙을 지킨다는 전제에서"라는 말을 잊지 않고 야무지게 덧붙였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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