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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 없는 선거

입력
2021.04.06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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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4·7 재·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6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각각 종로구 세종대로 인근 동화면세점과 노원구 상계백병원 앞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4·7 재·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6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각각 종로구 세종대로 인근 동화면세점과 노원구 상계백병원 앞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극심한 네거티브 경쟁으로 얼룩졌던 4·7 재·보궐선거가 6일 선거운동을 끝으로 마지막 결과만을 남겨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주장에 따르면 서울과 부산 시민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무능하고 위선적인 시장 아니면 원조 투기 시장을 얻게 된다. 유권자들로선 최선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선택을 강요받았던 셈이다. 이런 진흙탕 싸움에선 누가 당선된다고 해도 승자라고 볼 수 없다.

□ 너무 많은 대가를 치러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승자가 없는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라고 부른다. 고대 그리스 북서부 에페이로스의 피로스 왕이 로마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긴 했으나 자신의 병력도 엄청난 손실을 입은 데서 유래한 말이다. 피로스 왕은 "로마와 한번 더 싸워 승리를 거두면 우리는 완전히 끝장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전쟁 당사자 양측이 큰 피해를 입어 함께 쇠망하는 것도 이런 ‘피로스의 승리’에 해당한다.

□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열세를 딛고 가까스로 승리를 거둔다고 해도 박 후보의 경쟁력이 부각되긴 어렵다. 오히려 정권심판론이 비등한 분위기에서도 기회를 잡지 못한 국민의힘의 지리멸렬함이 여론의 도마에 오를 게 뻔하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누구도 오 후보가 잘해서 승리했다고 말하지 않을 터다. 민주당이 보여왔던 내로남불 행태와 부동산 정책 실패가 자초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일 것이다. 이처럼 이번 선거에선 승자가 승자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없다. 상대 실책에 기인한 구차한 승리기 때문이다. 누가 이긴다 한들 상처뿐인 '피로스의 승리'다.

□ 이 때문에 이번 승부의 결과가 내년 대선 국면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자신의 업적이나 경쟁력이 아니라 상대 실책에 의존하는 경기를 벌였기 때문에 승리의 동력이 오래 갈 수 없다. 지난 1년 동안 여론 지형이 급변했던 만큼 내년 대선까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차라리 이번 선거의 패자에게 변화와 혁신의 계기가 마련돼, 길게 보면 이번 선거의 패자가 득을 볼 수도 있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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