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하면서 ‘부동산 부패청산’이라고 인쇄된 마스크를 착용했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LH 사태의 해결과 부동산 적폐 청산을 향한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대통령의 마스크에 담는 문구나 문양은 주로 행사를 준비하는 관련 부처에서 준비한다. 행사의 의미와 전달할 메시지를 미리 청와대에 보고한 뒤 문 대통령의 의중을 담아 제작, 배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동산 부패청산’의 경우 통상의 제작 과정보다 문 대통령의 의중이 더 적극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초유의 코로나19 사태 속에 치러진 지난해 총선 당시 '힘내라 대한민국'이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투표소를 찾았다. 당시 여당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던 K-방역의 성공을 발판으로 압승했다. 그런데, 지난 2일 4·7 재·보선 사전투표에 나선 문 대통령은 아무 메시지도 없는 흰색 마스크를 착용했다. 문 대통령의 '민 마스크'는 LH 사태와 잇따른 부동산 실정, 코로나19 재확산 불안감 등으로 정권심판론이 대두된 부담스러운 상황을 반영한 걸까.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에는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동안 문 대통령의 마스크에는 무수한 메시지가 얹혔고, 연설문이나 모두발언을 통한 메시지보다 국민들의 눈에 먼저 띄었다. 문 대통령은 마스크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을까.
지난달 12일 문 대통령은 충남 아산 경찰대학에서 열린 신임경찰 임용식에 ‘국민중심 책임수사’ 라는 문구가 적힌 마스크를 쓰고 참석했다. 당시 경찰 간부를 비롯해 참석자 전원이 동일한 마스크를 착용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수사의 독립성이 높아진 만큼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경찰에 주문했다. 대통령의 마스크에 국정 운영의 철학이 뚜렷하게 새겨진 것이다.
문 대통령의 마스크에 처음 등장한 문구는 ‘힘내라 대한민국’이었다. 지난해 4월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 산업계·학계·연구소·의료계 합동 회의에 참석하면서다. 당시 이 마스크는 식약처가 면 마스크에 정전기 필터를 장착할 경우 보건용 마스크와 동일한 수준의 비말 차단 효과가 있음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다음 날에도 부인 김정숙 여사와 나란히 이 마스크를 쓰고 21대 총선 사전투표를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진통 끝에 열린 21대 국회 개원식에서도 이 '힘내라 대한민국' 마스크를 착용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대통령이 던지는 응원 메시지로 읽히며 당시 많은 관심이 쏠렸다.
문 대통령의 마스크에는 특정 분야 또는 업계를 격려하는 메시지도 담겼다.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 도중 그림이 그려진 색다른 마스크를 착용했다. 평소처럼 흰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이날 회의에 참석한 문 대통령이 회의 막바지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작한 'K-웹툰 마스크'를 착용한 것이다. ‘만화의 날’(11월 3일)을 맞아 세계적인 만화 강국 일본에서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 웹툰 콘텐츠 업계를 격려하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에는 ‘BRAND(브랜드) K 가치를 삽시다’라고 인쇄된 마스크를 쓰고 국무회의와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잇따라 참석하면서 중소기업을 격려했고, 지난달에는 국군간호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식에서 ‘대한민국을 지키는 아름다운 손길’이라고 새긴 마스크를 착용해 코로나19 방역 현장에 투입되는 졸업생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초유의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응원 메시지가 주를 이루던 문 대통령의 마스크엔 최근 들어 역사적인 상징이나 문구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의 마스크에는 독립선언문에서 발췌한 ‘세계 만방에 고하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날 기념식이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상징적 장소인 탑골공원에서 최초로 열린 만큼, 그 의미를 더하는 마스크 메시지였다.
지난 3일 제73주년 제주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붉은 동백꽃 그림과 함께 '돔박꽃이 활짝 피었수다(동백꽃이 활짝 피었습니다)'라는 문구가 그려진 마스크를 착용했다. 동백꽃은 이날 추념식의 주제이자 4·3 희생자를 상징하는 꽃이다. 이날 문 대통령의 마스크는 4·3 특별법 개정을 기념하고 행방불명된 수형인 355명이 무죄를 선고받은 기쁨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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