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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우편투표 제한법’에 글로벌 기업들이 뿔난 이유는

입력
2021.04.0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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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47개주서 우편투표 강화 움직임
'불매운동' 우려에 기업들 반대 목소리

미국 조지아주 의회가 우편투표 제한 법안을 통과시킨 지난달 25일 한 여성이 애틀랜타 주의회 의사당에서 항의 팻말을 들고 있다. 애틀랜타=AP 연합뉴스

미국 조지아주 의회가 우편투표 제한 법안을 통과시킨 지난달 25일 한 여성이 애틀랜타 주의회 의사당에서 항의 팻말을 들고 있다. 애틀랜타=AP 연합뉴스

정치 이슈에 말을 아끼던 글로벌 기업들이 한 목소리로 미국의 ‘우편투표 제한법’ 비판에 나섰다. 인종 차별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해진 상황에서 소수인종 관련 사안에 눈 감을 경우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소비자의 시선이 대기업의 무거운 입을 열게 한 셈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1일(현지시간)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투표권은 민주주의에서 근본적인 것이고 미국 역사는 이 권리를 모든 시민에게 확대하는 이야기”라며 “흑인들은 투표권을 지키기 위해 한 세기 이상 행진하고 투쟁하며 심지어 목숨을 바쳐야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조지아주(州)를 시작으로, 최근 미국 곳곳에서 유권자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법안이 주 의회 문턱을 넘자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주마다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법안의 골자는 우편투표를 더 빡빡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조지아의 경우 유권자가 우편으로 부재자 투표를 할 때 △사진이 포함된 신분 증명을 제출토록 하고 △부재자투표 신청 기한을 줄이고 △투표함 설치 장소도 제한했다. 이 같은 조치가 본인 확인 절차 미흡 등 우편투표의 문제점을 줄이고 투표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게 법안을 주도하는 공화당 측 주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소수인종 투표를 어렵게 만드는 인종차별적인 악법”이라고 반발한다. 우편투표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유색인종이 많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우편투표 문턱을 높이는 것은 곧 소수인종의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21세기 짐 크로법(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했던 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일 정도다.

지난달 29일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 열리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트루이스파크 앞에 델타항공 항공기 모형이 전시돼 있다. 애틀랜타=EPA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 열리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트루이스파크 앞에 델타항공 항공기 모형이 전시돼 있다. 애틀랜타=EPA 연합뉴스

논란은 정치권을 벗어나 재계로까지 번졌다. 조지아에 본사를 둔 코카콜라와 델타항공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S), JP모건, 아메리칸익스프레스 글로벌 기업들이 줄줄이 반대 행렬에 동참했다. 우버, 씨티그룹 등 72개 기업의 경우 흑인 임원들이 중심이 돼 “조지아의 새 투표법안은 ‘의문의 여지 없이’ 흑인 유권자들의 투표를 방해할 것”이란 내용의 성명을 냈다.

통상 정치 이슈에 목소리를 내지 않던 기업들이 중립을 깨고 반대에 나선 건 이례적이란 평가다. 브루스 배리 미 밴더빌트대 교수는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기업들이 정치적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정말 새로운 일”이라며 “이들은 통상 논쟁에서 벗어나는걸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민감한 이슈에 침묵할 경우 불매운동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압박 탓에 움직였다. 지난달 말 에드 바스티안 델타항공 CEO가 트위터에 해당 법안을 옹호하는 글을 올렸다가 ‘항공사 보이콧’ 역풍을 맞고 부랴부랴 입장을 선회한 일이 대표적이다. CNN방송은 “CEO들의 잇따른 비판은 글로벌 기업들이 얼마나 여론에 민감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아무리 비판 여론이 높아져도 법안 통과의 물줄기를 바꾸긴 힘들어 보인다. 이날 뉴욕대 브레넌정의센터 집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배한 후 지난달 24일까지 47개주 의회에서 361개의 선거제한 법안이 발의됐다. 조지아를 비롯, 4개 주에서는 주지사 서명 절차까지 마무리됐고, 24곳에선 최소 55개 법안이 입법부를 통과한 상태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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