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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시대정신

입력
2021.04.01 18:00
수정
2021.04.01 18:5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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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
김희원뉴스스탠다드실장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1일 서울시 노원구 동일로 경춘선숲길에서 열린 유세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1일 서울시 노원구 동일로 경춘선숲길에서 열린 유세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복지 확대되는데 "10년 전 옳았다" 고집
"치매환자" 실언 사과 않는 태도가 문제
잘못 인정하고 수정해 더 큰 정치인 되길


내곡동 처가 땅 의혹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에게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아쉬운 그의 말실수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10만 원 디지털 화폐 지급’ 공약을 겨냥해 “옛날 고무신·막걸리 선거 때는 자기 돈을 썼다”고 한 것이다. 아니, 오세훈이 누구인가. 오세훈법(2004년 개정 정치자금법)의 발의자가 아닌가. 고무신·막걸리를 돌리느라 정치자금을 받고 이권을 주던 ‘돈 정치’의 악습에서 얼마간 벗어난 데에는 이 법이 기여했다. 2002년 대선 때 국민의힘(당시 한나라당)이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 원을 ‘차떼기’로 받아 국민을 경악하게 한 뒤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오 후보는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치자금법 개정에 매진했다. 오세훈법을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으로 꼽는 나는, 여당을 비판하려고 ‘세금보다 내 돈(즉 뒷돈) 쓰는 게 낫다’며 자기 자산마저 훼손하는 것에 어안이 벙벙했다.

오 후보가 2019년 10월 보수단체 집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중증 치매환자의 넋두리 같은 소리”라고 말한 것은 한순간의 말실수로 볼 수 있었다. 최근 이 말이 논란이 되자 그는 “비유만 쓰면 망언이냐” “독재자 표현을 더 가슴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사과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이 표현은 비판 아닌 모욕에 가깝고, 치매환자와 가족들까지 상처받을 언어임을 그는 모르는 듯하다. 지금은 올바른 언어감수성을 갖지 못한 정치인들이 시민들로부터 비판받고 낙선하는 시대다.

나는 그가 한강르네상스 사업으로 시민들이 한강변을 즐기게 됐다고 자평하는 것에 동의한다. 재산세 공동 과세, 전세 시프트도 좋은 정책이라 할 만하다. 다만 ‘세상에서 가장 큰 중앙분리대’라는 비아냥을 들어온 광화문광장 등 실패도 인정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지난달 31일 관훈토론회에서 광화문광장 확장 공사를 “승효상 건축가의 노욕(老慾)”이라고 비난하고 서해뱃길 사업(경인아라뱃길을 여의도까지 잇는 서울시 사업)이 중앙정부 사업이라고 슬쩍 피해간 것은 비판을 모면하려는 것일 뿐 당당하지 않았다.

말실수도 정책 잘못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는 철학의 부재, 시대정신의 지체가 엿보인다. 2011년 무상급식 반대를 두고 오 후보는 지금도 “무상 시리즈로 정권을 탈환하려는 민주당의 전략전술을 총대 메고 저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상보육 등 그 전략전술을 내세워 2012년 대선에서 이긴 것은 박근혜 정부였다. ‘선별복지냐 보편복지냐’의 논쟁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복지가 확대되어 가는 거대한 흐름은 되돌리지 못한다. 오 후보가 안심소득은 기본소득과 다른 선별복지 정책이라고 그토록 강조하다가 국민의힘 정강정책에 기본소득이 포함된 점에 대해 “안심소득도 광의의 기본소득”이라고 얼버무린 것은 시대의 변화에 애써 눈감는 것이다. 선별복지라도 적잖은 예산이 드는데 재산세 감면 공약을 내건 것 역시 진지한 고민이 없다는 뜻이다.

닷새 뒤 보궐선거는 오 후보에게 10년 만의 재기 기회다. 이 기회를 잡는다면 자기 오류를 인정하고 다른 생각을 포용함으로써 더 큰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기를 간절히 바란다. 10년 전 인식을 고집한다면 그는 재기한 서울시장에 그칠 것이다. 더 큰 꿈을 꾸고 있다면 경쟁자의 제안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무상급식 반대가 옳았다고 고집하지만 말고 기대 이상의 복지정책을 내놓는다면 박수를 받을 것이다. 재건축·재개발로 집값이 들썩일 게 뻔한 이 상황에 “보유세 강화는 필요하다”고 나선다면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 도약할 것이다. 출발점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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