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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시장이냐 인권이냐… 미중 갈등에 불똥 맞은 ‘패션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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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시장이냐 인권이냐… 미중 갈등에 불똥 맞은 ‘패션브랜드’

입력
2021.04.02 04: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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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지역 생산 면화 의존해 온 의류기업 직격타
中 불매운동에 몸 사리기…윤리 경영 압박도 가중

지난달 26일 중국 베이징의 한 쇼핑몰에서 행인들이 스웨덴의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H&M 매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중국 베이징의 한 쇼핑몰에서 행인들이 스웨덴의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H&M 매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인권을 지지할 것인가, 수익을 좇을 것인가. 갈수록 격렬해지는 ‘미중 갈등’ 틈바구니에서 글로벌 패션브랜드들이 불똥을 맞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동맹국이 중국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탄압과 강제노동을 이유로 중국을 제재하면서 그동안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면화 등 의류 원자재에 의존해 온 패션기업들도 ‘윤리적 책임’을 다하라는 거센 압박에 직면했다. 그렇다고 중국이란 ‘거대 시장’을 쉽게 포기할 수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속앓이만 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본보기 불매운동’으로 ‘경고장’을 날렸다. 2019년 매출이 248억 달러(약 28조 원)에 달하는 스웨덴 패션기업 H&M은 중국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신장 지역 면화를 구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수개월 전 성명이 미중 갈등을 계기로 뒤늦게 알려지면서 중국 소비자들의 공분을 샀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청년당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H&M은 주요 온라인 쇼핑사이트에서 자취를 감췄다. 신장 자치구 대변인은 “H&M은 더 이상 중국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없을 것”이라며 맹비난했다.

중국판 ‘일벌백계’를 지켜본 기업들은 알아서 몸을 사렸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불매운동 대상이 됐던 휴고보스는 중국 법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신장 지역 면화를 계속 구매할 것”이라며 다급히 진화에 나섰다. 노스페이스를 소유한 VF코퍼레이션은 신장 지역 강제노동 문제를 언급했던 성명을 웹사이트에서 슬그머니 삭제했다. 캘빈클라인의 모회사인 PVH그룹도 “신장 지역 강제노동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문구를 지웠다. 두 회사는 기업 윤리강령 같은 기본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면서도 성명 삭제 이유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비영리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중국 담당 소피 리처드슨은 “은행부터 제조업체, 투자사, 의류회사 등으로부터 신장 지역 사업과 관련해 조언을 구하는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며 “서방 동맹의 중국 제재와 그로 인한 중국 불매운동을 겪으며 기업들이 패닉에 빠졌다”고 말했다.

미중 갈등. 게티이미지뱅크

미중 갈등. 게티이미지뱅크

반대편에선 미국 의회와 인권단체들이 매섭게 지켜보고 있다. 이미 상원 초당파 의원들은 기업들이 신장 지역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을 수입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안을 제출한 상태다. 인권단체 ‘위구르 지역 강제노동 종식 연합’도 아마존, 애플, 코카콜라 등 글로벌 기업들에 이 법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며 압박하고 있다.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가치 경영을 중시하는 투자자들도 가세했다. 주주 행동주의 단체 ‘기업 책임에 관한 인터페이스 센터’의 후원을 받은 50여 개 투자 단체들은 최근 H&M과 VF코퍼레이션, 휴고보스 등 40여 개 기업에 중국 인권 유린 문제와 관련된 공급망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단체는 “기업들이 공급망 재편을 우선시하지 않고 당장 닥친 상황에만 급급해한다”고 비판했다.

미중 갈등의 여파는 이제 다른 분야로까지 확산하는 분위기다. 다음 차례로는 신장 지역이 주요 공급원인 태양광 패널의 핵심 소재 폴리실리콘이 거론된다. 중국 정부는 중국 기업이 미국의 제재에 따르는 중국 내 해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새로운 법도 마련했다. 미 국무부 인권 담당 관리를 지낸 베넷 프리먼은 “기업들은 지금 전쟁터에 놓여 있다”며 “그들은 이제 역사의 어느 쪽에 있을지 결정해야만 하며 쉬운 탈출구는 없다”고 진단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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