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라인 투톱인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이번 주말 '대북 정책 조율'을 위해 각각 미국 아나폴리스와 중국 샤먼으로 향한다. 샤먼에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중국의 명시적인 지지가 확보될 것으로 보이는 반면, 아나폴리스에선 대북 제재·압박을 앞세워 북한 비핵화를 유인한다는 한미일 공동의 원칙적 메시지가 발신될 여지가 크다. 아슬아슬한 정부의 미중 사이 줄타기 외교가 또 한 번 중대 분수령을 맞는 셈이다.
서훈, 미국으로... 미일 '압박이 먼저' 요구할 듯
31일 청와대에 따르면,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미국으로 향했다. 서 실장은 다음 달 2일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일본 국가안보국장을 만나 3국 안보실장 회의를 갖는다. 한미, 한일 양자 협의도 각각 이어진다. 청와대는 "설리번 보좌관과 대북정책 조율을 포함 한미 동맹, 지역·글로벌 이슈 등 광범위한 현안을 협의한다"며 "기타무라 국장과도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공조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뒤 한미일의 외교 분야 고위 관료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처음이다. 3국 간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자리라고는 하나, 완성 단계인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 정책에 우리 정부의 의견을 얼마나 반영시킬 수 있을진 미지수다.
한미 간 대북 정책 조율 상황에 대해 정 장관은 31일 기자회견에서 "최근 한국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의를 통해 대북 관여를 '완전히 조율된 전략'을 바탕으로 해나가기로 했다"며 "이번 한미 양자 협의를 통해 (우리 정부 입장을) 추가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회견에서 "외교적 해법도 준비하고 있지만, 비핵화 조건이 돼야 하며 동맹과 함께 논의 중"이라고 한 바 있다. '선(先) 압박 후(後) 대화' 라는 대북정책의 밑그림이 이미 드러난 셈이다. 전직 고위 외교 관료는 "미일 간 대북정책 조율은 사실상 끝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아나폴리스 3자 회동은 미일의 대북 기조에 대한 한국의 동의를 얻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바이든 정부는 북미 정상 간 만남 등 톱다운 방식(Top-down)의 대북 정책은 배제하는 기류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29일(현지시간) '새 대북 정책에 정상 간 만남도 포함됐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바이든의 접근 방식은 상당히 다를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31일 기자회견에서 "미국도 특정 방법을 처음부터 배제하는 방식의 대북 정책 검토는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 장관, 중국으로... 중국 '대화 통한 비핵화' 지지 전망
정 장관은 다음 달 2일 1박 2일 일정으로 중국 푸젠성(福建)성 샤먼(廈門)을 방문한다. 3일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과 외교장관회담이 예정돼 있다.
한중의 대북 정책 조율은 한결 수월할 전망이다. 왕 부장은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을 예방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중국 측의 지지를 확인하고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중인 한국을 조금이라도 중국에 가깝게 두기 위해서라도 왕 부장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지지를 보다 분명하게 표명할 전망이다.
주말이 지나고 나면, 문재인 정부가 '미국·일본 대 중국' 사이에서 더 애매한 자리에 서 있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정 장관은 31일 회견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중관계도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것이 확고한 입장"이라며 "미중은 우리의 선택 대상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이 대만에서 가까운 샤먼으로 정 장관을 초청한 것에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대만 인근에서 한중 고위급 회동을 열어 한미 동맹 못지않은 한중 관계를 과시하려는 고도의 계산이 깔렸다는 것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코로나19 방역 상황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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