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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비극' 잉태한 '오륙남 정치', 여성 후보 4인방이 균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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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비극' 잉태한 '오륙남 정치', 여성 후보 4인방이 균열 낸다

입력
2021.03.30 09:0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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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여성후보들. 신지혜 기본소득당(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지예 무소속, 송명숙 진보당, 김진아 여성의당 후보는 '남성 중심 기득권 정치' 타파를 위해 출사표를 냈다. 각 후보 제공.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여성후보들. 신지혜 기본소득당(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지예 무소속, 송명숙 진보당, 김진아 여성의당 후보는 '남성 중심 기득권 정치' 타파를 위해 출사표를 냈다. 각 후보 제공.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적극적으로 '박원순'을 불러내는 후보들이 있다. 신지혜 기본소득당·김진아 여성의당·송명숙 진보당·신지예 무소속 서울시장 후보다. 3040세대 여성인 이들은 이번 선거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권력형 성폭력으로 실시되는 선거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오륙남'(50·60대 남성) 중심 기득권 정치에 균열을 내고 있다.

서울시장 보선에 출마한 여성 후보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포함해 모두 5명이다. 1995년 민선 서울시장 시대가 열린 이래 가장 많은 여성 후보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2006년), 한명숙 전 국무총리(2010년), 나경원 전 의원(2011년) 등 거물급 인사가 거대 정당 간판을 달고 출마한 적은 있었지만, 소수 정당의 여성 후보들이 4명이나 줄 지어 나온 건 이례적이다.

여성 후보들을 무더기로 호출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박 전 시장이다. 여성 후보 4인방은 '성평등한 서울'을 약속했다. 당헌을 바꾸면서까지 이번 선거에 후보를 낸 민주당과도,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려는 국민의힘과도 자신들은 다르다고 말한다. 신지예 후보는 29일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박 전 시장 사건을 대하는 기득권 정당들의 정략적 태도를 두고 볼 수 없어서 출마했다"고 말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여성 후보들이 '젠더 의제'를 부각하고 나서면서 여성과 청년 세대의 정치 참여기회가 넓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여성의당 당원들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서울시청 직장 내 성폭력 전수조사'를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뉴스1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여성 후보들이 '젠더 의제'를 부각하고 나서면서 여성과 청년 세대의 정치 참여기회가 넓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여성의당 당원들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서울시청 직장 내 성폭력 전수조사'를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뉴스1

전국 단위 선거의 여성 공약은 고정된 성역할에 기반한 돌봄·보육 정책 공약, 피상적인 성범죄 대책 공약에 그치곤 했다. '여성 약자 당사자'인 4인방의 공약은 다르다. 여성의 노동권, 건강권, 재생산권 등 여의도 정치가 다루지 않는 생활형 정책이 대부분이다.

기본소득당 신 후보는 성별 임금 격차와 유리 천장을 박살내는 서울시 조례를 제정하고, 서울시 25개 보건소에 임신중지의약품인 '미프진'을 상시 구비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성의당 김 후보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 공공주택분양 물량의 50%를 여성 세대주에게 의무 할당하고,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무상 접종 연령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진보당 송 후보는 서울 25개 자치구에 임신·출산·임신중지 상담센터를 설치하고, 생활동반자 조례를 만들어 '결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무소속 신 후보는 시장 직속 '젠더폭력전담기구' 설치와 성폭력 무관용 원칙을 내걸었다.

여성 후보 4인방이 서울시장에 당선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희박하다. 그러나 이들의 출마 자체가 진보적이고도 개혁적인 메시지다. 기득권 남성 중심 정치 문화에서 소외됐던 '젠더 이슈'가 선거 의제 대접을 받게 된 것, 청년 세대와 약자들이 '누구든 정치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 것은 이들이 이미 이룬 성과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은 젠더 이슈가 전 사회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을 부각시켰고, 역설적으로 여성 후보와 젠더 이슈를 내세운 후보들이 정치 무대에 대거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김민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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