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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과 함께한 클라트의 목소리

입력
2021.03.3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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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데니스 클라트

음성합성분야의 선구자 데니스 클라트(왼쪽)의 음성은 스티븐 호킹을 통해 그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위키피디아.

음성합성분야의 선구자 데니스 클라트(왼쪽)의 음성은 스티븐 호킹을 통해 그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위키피디아.

스티븐 호킹이 말을 못하게 된 것은 1985년 스위스 제네바 유럽입자물리연구소를 방문하던 무렵부터였다. 폐렴이 악화해 호흡기능을 잃자 병원 측은 당시 아내에게 연명장치를 떼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아내는 거부했고 호킹은 케임브리지 아덴브루크(Addenbrooke) 병원 의료진의 기도 절제 수술로 회생했다. 대신 성대를 잃었고, 이후 평생 손가락과 뺨, 눈동자의 미약한 근육들로 '말하는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했다.

그 절절한 노력을 수많은 과학자와 인텔의 공학자들이 거들었다. 호킹이 선택한 어휘를 음성으로 재현해주는 음성합성도 그 중 하나였다. MIT 엔지니어 데니스 클라트(Dennis Klatt(1938.3.31~ 1988.12.30)가 1986년 그에게 준 음성이 첫 선물이었다. 클라트는 비전문가도 컴퓨터 텍스트를 합성언어로 변조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최초로 개발한, 음성합성 분야의 개척자다. 호킹이 이용한 장비 성능은 점점 나아졌지만, 그는 1986년의 오리지널 음성을 마지막 날까지 선호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호킹의 목소리는 클라트가 자신의 목소리로 합성한 '퍼펙트 폴(Perfect Paul)'이었다.

근년 스티븐 호킹의 근위축성측색경화증(루게릭병) 진단이 오진이란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까닭은, 그의 병증과 예후가 가히 기적이라 할 만큼 드문 경우여서다. 통상 루게릭병 환자는 발병 직후부터 운동능력과 함께 인지기능이 급격히 저하되고 진단 후 3~5년 내에 다수가 숨져 10년 생존율이 20% 미만이다. 뉴욕 양키스의 루게릭도 35세에 진단을 받고 2년 만에 세상을 떴다.

호킹 박사는 케임브리지대 재학 중이던 만 21세 때 이 병을 진단받았다. 당시 의사는 살 날이 2년 정도 남았다고 예측했지만, 그는 만 76세를 넘겨 2018년까지 살았고, 말년까지 명징한 인지력을 유지했다. 근년 일부 학자들은 그의 병이 운동신경계에만 영향을 미친 점을 들어 척수성 소아마비(회백수염)였으리라 추측하는 모양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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