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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컬렉션’을 온전히 보전하려면

입력
2021.03.29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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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삼성가의 상속세 규모와 맞물려 삼성가 소장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납부할 수 있게 하자는 물납제 논의가 활발하다.

우선 지적할 점은 대물변제로 상속세를 내는 일이 현행 상속세제하에서는 어려워 보인다는 사실이다. 삼성가 상속 문제가 회자되는 상황에서 물납제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오해를 부를 수 있다.

미술품 가치 평가는 상속세 물납의 또 다른 난관이다. 물납제의 전제조건은 엄정하고 객관적인 감정평가기관이다. 특히 미술품은 내재적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고 주관적 판단도 작용하는 터라 권위 있는 감정기관의 투명한 심사를 거쳐야 공정한 시장가치를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미술계에서는 그만한 기관을 찾기 어렵다.

물론 삼성가 미술품들은 문화유산으로 보전해야 할 예술적 가치를 지녔다는 것이 미술계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삼성가는 소장품은 물론 이를 전시하는 미술관 역시 공공재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호암미술관이나 리움미술관이 그런 사회적 역할을 다해왔는지에는 회의적이다. 공공재로서 미술관은 공공성, 개방성, 접근성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지만, 이들 미술관의 폐쇄적 입지와 운영을 감안하면 사적인 미술품 수장고 역할에 치우쳤다는 생각마저 든다.

차제에 삼성가가 미술관에 대한 발상을 전환해 정부에 상속 문제를 처리할 획기적 제안을 내놓으라고 조언하고 싶다. 소장품을 출연하고 이를 전시할 미술관을 지어 국립 혹은 시립미술관으로 귀속시키는 방안이 그것이다. 프랑스 국립 피카소미술관이 참고할 사례다. 이곳은 1973년 피카소가 죽은 뒤 유족이 작품으로 상속세를 내고 정부는 파리 요지의 저택을 미술관으로 개조하는 방식으로 개관해 명소가 됐다.

세계적 대도시이지만 뚜렷한 랜드마크를 떠올리기 힘든 서울에 삼성가가 선대 회장 때부터 수집해온 미술품을 한눈에 감상할 아름다운 미술관을 짓는다면 어떨까. 시민들은 고급 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넓히고 정부는 훌륭한 문화예술 자산을 소유하게 된다.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제안인 만큼 정부는 국세청 문화관광부 등 관계부처, 서울시, 미술계 등과 협의해볼 만하다. 피카소미술관이 그렇듯, 미술관이 공공성과 개방성을 갖추도록 접근성 좋은 부지를 마련하는 일은 정부나 서울시 몫이다. 옛 용산 미군기지에 조성될 공원 부지라면 안성맞춤이다.

아울러 정부는 현행 세법상 물납이 불가능하더라도 그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우회로를 찾을 필요가 있다. 출연품을 가장 낮은 감정액으로 구매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삼성가의 미술관과 소장품을 간접 매입하면 어떨까. 다만 국립이더라도 미술관 이름은 작품을 제공한 삼성가의 공헌을 기려 ‘리 갤러리’ 또는 ‘리 컬렉션’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삼성가에서 부담해야 할 엄청난 규모의 상속세를 어디에 쓸 것인가. 이를 빼어난 문화예술 자산을 보존할 미술관 건립에 선용하면 어떨까. 당면한 공공선택의 문제다.



최병서 동덕여대 명예교수·전 한국문화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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