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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미래의 기억

입력
2021.03.26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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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5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 1단 종합연소시험이 시행되고 있다. 뉴스1

25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 1단 종합연소시험이 시행되고 있다. 뉴스1

25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체 1단 엔진이 127초 연소한 것은 한국형우주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10월 우주로 날아오를 수 있음을 뜻한다. 이제 개발이 완료된 1·2·3단 추진기관을 조립해 발사대에 세우면 1.5톤급 실용위성을 우리 기술로 궤도에 올릴 수 있다. 2013년 나로호(KSLV-Ⅰ)가 과학위성을 쏘아올리기는 했지만 러시아와 공동 개발이었다. 누리호가 성공하면 우리나라는 자력으로 우주발사체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 한국 SF 영화 ‘승리호’에서는 우주선이 종횡무진 날고 화성이 녹지가 되는데, 이날의 실험은 너무 단조로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127초를 위해 개발진은 설계, 엔진개발, 시험에 11년을 보냈다. 결혼을 미루고 우주센터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크고 작은 실험에 노심초사했을 것이고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거쳐갔을 것이다. 정권이 교체되고 대통령이 탄핵되면서도 국가우주개발중장기계획은 20년간 실행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국내 발사장을 가졌고, 달이나 화성은 아니어도 위성궤도까지 갈 수 있게 됐다.

□ 2조 원이 든 누리호가 우리 삶과 무슨 상관일까. 미 항공우주공학자 로버트 주브린은 2014년 한 세미나에서 왜 화성에 가야 하느냐는 청중의 질문에 화성에 인류문명의 분파가 존재하게 될 500년 후 사람들은 지금 누가 권력을 잡았는지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화성 문명 탄생을 위해 인류가 무엇을 했는지를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1969년 미 페르미연구소 소장이었던 로버트 윌슨은 국회에서 입자가속기 건설이 나라를 지키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상원의원 질문에 “아무 관련이 없다. 이것은 이 나라를 지킬 만한 가치가 있도록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답했다.

□ 장기화한 코로나19로 사람들은 지치고 힘들다. 국민 다수의 관심은 부동산과 주식, 재·보궐선거에 쏠려 있는 듯하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등락하고 선거 판세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힘들여 한 발씩, 되돌아가지 않고 나아간 발걸음들이 우리를 미래로 이끈다. 우주 어디에선가 우리 후손이 지구를 떠올리며 기억할 그 발걸음이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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