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근 재판부 "재판 개입은 사법행정권 해당 안돼"
이규진 재판부 "행정처, 재판에 개입할 권한 있다"
다만 실제 재판권 방해 받은 경우에만 유죄 인정
23일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전직 법관 2명에 대해 ‘직권남용 유죄’를 선고한 1심 법원 판단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양승태(73) 전 대법원장을 비롯, 전ㆍ현직 고위 법관 14명이 재판에 넘겨진 사법농단 사태의 본류는 사법행정을 관장하는 법원행정처 수뇌부가 일선 법원 재판에 개입해 판사들의 재판 독립을 침해했다는 점이고, 이를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인 탓이다.
그런데 이에 앞서 헌정 사상 최초로 ‘법관 탄핵’ 대상이 된 임성근(57)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유사한 혐의에 대해 지난해 2월 1심에서 무죄 판단을 받았다. 이날 유죄가 선고된 이규진(59)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혐의와 임 전 부장판사의 혐의가 큰 틀에서 볼 땐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는 점에서 대체 어떤 이유로 법원 판단이 엇갈렸는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직무상 권한에 해당”
‘임성근 사건 재판부’와 ‘이규진 사건 재판부’는 우선 행정처의 재판 개입 행위와 관련, 직무상 권한 해당 여부부터 달리 해석했다. 임 전 부장판사의 직권남용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던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가 위헌적이긴 하나, 법관 독립 원칙상 재판 업무에 관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판단했다. 법관의 재판 업무는 독립적이기에 다른 선배 법관의 재판 개입도 법률상 인정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직권 없이는 남용도 없다’는 법리를 따른 셈이다.
그러나 이 전 상임위원의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본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는 사법행정권의 전제부터 다르게 판단했다. 재판 독립 원칙에도 불구,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면 대법원장이나 행정처가 ‘사무의 관점에서’ 재판 과정에 개입할 권한이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예를 들어) 장기미제사건 처리가 현저히 지연될 경우나 판사가 미숙한 재판을 거듭하다 잘못을 저지를 경우, 대법원장이나 행정처가 어떠한 지적도 할 수 없다고 보는 건 불합리하다”고 설명했다. 행정처가 △직권을 재량적으로 남용한 경우 △직권 범위를 넘어서더라도 직권과 관련성이 있어 이를 월권적으로 남용한 경우 등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사법행정 권한의 범위를 좀 더 넓게 본 셈이다.
다만 ‘이규진 사건 재판부’는 이 전 상임위원의 직권남용 혐의 가운데, △실제로 법관의 재판권 행사가 방해되거나 △법관, 행정처 심의관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만 유죄로 인정했다. 옛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개입 혐의의 경우, 재판부가 이미 심증을 형성했는데도 행정처가 선고기일을 취소하게 해 재판권 행사를 방해하거나, 행정처 입장이 담긴 문건을 재판부에 전달토록 한 행위가 유죄 판단을 받은 것이다. 반면, 행정처 입장을 전달받은 재판부가 이에 개의치 않고 재판을 이어갔을 경우엔 “재판권 행사가 방해 받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사법농단' 핵심 피고인 양승태ㆍ임종헌 공모도 인정돼
재판부의 직권남용 법리 해석에 따르면, 이날 법원 선고는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 피의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64)·고영한(66)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62)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1심 판결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히 일선 법원의 재판 절차에 직접 개입한 행위뿐 아니라, 행정처 심의관에게 직무 범위를 벗어난 보고서를 쓰도록 한 혐의나 행정처 의중을 재판부에 전달한 행위도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재판부는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에게 헌재 내부 정보를 수집하도록 혐의와 관련해선 유죄를 선고하며 양 전 대법원장 등 4명의 공모도 인정했다. 이 전 상임위원과 이민걸(60) 전 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법원 내 진보적 모임을 와해하려 한 데 대해서도 “임 전 차장이 오랜 기간 모임 해체ㆍ약화 목적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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