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에 따른 '한미일 대 북중러' 전선이 선명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동맹 복원 시도에 중국이 아군 확보로 발빠르게 대응하면서다.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의 '약한 고리'인 한국을 겨냥한 북중러의 압박 수위도 함께 높아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양자택일할 수 없다는 '전략적 모호성'을 취해온 정부로서는 적잖은 외교적 부담이 될 전망이다.
미국 보란 듯... 북중 '친서 교환'으로 밀월 과시
진영 대결의 불을 당긴 건 미국이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5~18일 일본-한국-알래스카(미중 고위급 회담) 순방 기간 한미·미일동맹을 과시하면서 해당국과의 동맹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북한과 중국은 기민하게 반응했다. 23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구두 친서를 주고받으며 결속을 다졌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조선반도(한반도) 정세와 국제관계 상황을 진지하게 연구·분석한 데 기초해 국방력 강화와 북남관계, 조미(북미)관계와 관련한 정책적 입장을 토의 결정한 것"을 통보하고, "적대 세력들의 전방위적 도전과 방해 책동에 대처해 조중(북중) 두 당, 두 나라가 단결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미국의 대화 손짓에는 침묵하면서 중국과의 대외정책 공조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다.
미중 대결에서 중국 편에 설 뜻도 명확히 했다. 김 위원장은 시 주석에게 "적대 세력들의 광란적인 비방 중상과 압박 속에서도 사회주의를 굳건히 수호하면서 초보적으로 부유한 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들을 이룩하고 있는데 대해 자기 일처럼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홍콩과 신장위구르자치구 인권 문제에 대한 미국, 일본 등을 국제사회의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중국을 옹호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는 대목이다.
시 주석도 협력에 방점을 찍은 답신으로 화답했다. 그는 "조선반도의 평화안정을 수호하며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을 위해 새로운 적극적인 공헌을 할 용의가 있다"며 향후 북한을 대미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두 나라 인민들에게 보다 훌륭한 생활을 마련해줄 용의가 있다"면서 대북 경제지원 가능성도 열어놨다. 정대진 아주대 교수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친서 교환"이라며 "북한은 고립 탈출, 중국은 역내 우군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러 외무장관 방한서 '한국 흔들기' 나타날까
최근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에 별다른 반발을 보이지 않았던 러시아까지 움직이고 있다. 22, 23일 중국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23일 사흘간 한국 방문 일정에 돌입했다. 방한 명분은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행사 참석이지만, 블링컨 장관의 '중국 때리기' 직후라 세르게이 장관의 방문은 이에 대한 '맞불'격으로 읽힌다. 세르게이 장관은 25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한러 외교장관회담을 한다.
미국과 러시아 간 갈등도 격화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7일 ABC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살인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바 있다. 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독극물 중독 사건에 러시아 정부가 개입했다는 서방 측 주장에 근거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라브로프 장관은 방한 기간 한미일 동맹 네트워크에 대한 견제 메시지를 발신할 것으로 보인다"며 "'북방 3각 협력'의 부활로 신(新)냉전 구도 길목에 접어든 모습"이라고 말했다.
북중러 간 급속한 결속으로 한국이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북중러 진영이 한미일 3각 협력을 흔들기 위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을 적극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한일관계 악화로 한미일 협력은 느슨해진 반면 북중러는 갈수록 내밀해지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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