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한국어의 진격… 1년 만에 제1외국어 자리 꿰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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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되는 한국어의 진격… 1년 만에 제1외국어 자리 꿰찼다

입력
2021.03.25 04:40
수정
2021.03.2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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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높아진 한국어 위상

편집자주

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베트남 탕롱대 학생들이 지난해 8월 하노이에서 열린 한국어 교재 전달 행사에 참석해 한국 인기가수 방탄소년단이 수록된 책자를 살펴 보고 있다. 하노이 한인소식지 제공

베트남 하노이에 사는 직장인 트엉(24ㆍ여)은 한국 발라드 가수 폴킴의 노래로 아침을 연다. 집에서 15분 정도 걸리는 출근길에는 유튜브의 한국 뉴스 브리핑을 듣는다. 영어와 베트남어를 섞어 쓰는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지만, 그의 책상만 보면 한국 직원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다. 각종 한국어 서적과 배우 박서준의 사진, 한글로 메모된 형형색색의 포스트잇까지, 한국 아이템이 한가득이다. 또 퇴근 후엔 넷플릭스로 한국 드라마 ‘빈센조’를 시청한 뒤 잠에 든다. 꿈에서도 내달 있을 첫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서 높은 성적을 받는 기분 좋은 상상이 이어진다.

왜 그렇게 한국어에 빠져 사느냐고 묻자 발음은 어눌하지만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베트남에서 한국어는 돈이에요. 대학 다닐 때 한국어를 틈틈이 익힌 친구가 저보다 월급을 두 배나 많이 받습니다.” 베트남의 한국 사랑은 이제 문화적 동경에 그치지 않는다. ‘부(富)를 향한 갈망’, 명확한 목표 의식이 한국과 한국어를 양지로 불러내고 있다.


한국어과 인기 고공행진

베트남 호찌민 외국어정보대에 재학 중인 한 여학생이 지난해 9월 개최된 제3회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한국어 공부 방법을 발표하고 있다. 호찌민 한국교육원 제공

한국어를 잘하면 돈을 잘 번다. 베트남 청년들 사이에선 이런 공식이 이미 자리잡은 상태다. 24일 하노이 국립외국어대가 지난해 졸업생 754명을 전수 조사한 결과, 한국어 전공자의 월 급여는 1,000만~1,500만동(50만~75만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베트남 대도시 직장인 평균 월급(642만동ㆍ32만여원)보다 갑절이나 많은 액수다. 하노이에서 기업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한 한국인 법인장은 “한국어 지시를 이해하고 업무 보조만 하는 단순 사무직의 기본 월급도 최소 700만동”이라며 “한국어로 대화하고 한글 문서까지 번역 가능하면 2,000만동은 족히 번다”고 귀띔했다.

한국어의 높은 가치를 가장 먼저 포착한 집단은 대입 수험생 ‘학부모’들이었다. 한국어과 경쟁률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최근 5년 사이 법대와 의대 입학 수준까지 합격선이 올라갔다. 실제로 한국의 서울대 격인 하노이대의 경우 2018년 40점 만점에 31.37점만 받으면 한국어과에 들어갔으나, 지난해에는 35.38점 이상을 받아야 합격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하노이 국립외대 역시 같은 기간 28점에서 34.68점까지 커트라인이 수직 상승했다.

폭증하는 수요에 맞춰 한국어과를 개설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남부 지역은 호찌민을 중심으로 14개 대학(2019년 기준)에 한국어과가 설치돼 있다. 2012년(7곳)과 비교하면 7년 만에 배나 증가했다. 1992년 한ㆍ베트남 수교 이후 하노이대에 처음 생긴 한국어과는 현재 총 32곳, 한국어를 배우는 학부생은 1만6,000여명에 달한다. 도뚜언민 하노이 국립외대 총장은 “현재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공은 한국어나 한국학이어서 당분간 지원자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정적 삶 보장하는 최고 선택지

베트남 한국어 교사(오른쪽)가 2019년 12월 호찌민에 위치한 트득고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호찌민=연합뉴스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계속되자 대도시 저학년 학부모들도 가만 있지 않았다. 이들은 수년 전부터 “한국어를 정규 교과과정에 편성해 달라”고 교육부를 졸랐다. 한국 교육부 산하 호찌민 한국교육원 관계자는 “학부모뿐 아니라 한류 스타에 열광하는 학생들과 한국 관광객을 상대하는 기업 직원들까지 한국어 교육의 필요성을 호소했다”고 설명했다. 상향식으로 형성된 여론 앞에 베트남 정부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2016년 시범 수업을 거쳐 지난해 3월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공식 채택하는 결실을 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도 한국어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계기가 됐다. 청년세대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베트남 교육당국은 제2외국어 채택 1년도 안된 지난달 9일 한국어를 영어와 같은 제1외국어 반열에 올려놨다. 영어를 제외한 일어 등 다른 언어가 제1외국어가 되기까지 통상 10년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파격 그 자체였다. 하노이 일선 학교의 한 교감은 “베트남에선 한국과 ‘경제 공동체’라는 인식이 강해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 받기 위한 최고의 선택지로 한국어가 각광받고 있다”며 “제1외국어 채택이 초고속으로 이뤄진 것도 한국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한국어 교육 현황. 그래픽=김대훈 기자

한국어는 올해 8월 학기부터 정규 교과과정에 편입된다. 기존 7년제(6~12학년)에서 10년제(3~12학년)로 수업 시수가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베트남 수학능력시험 외국어 선택 과목에도 포함된다. 입시 선택 항목에 없어 중도에 한국어를 접었던 학생들이 연속성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베트남 한국 대사관은 “빠른 승인 절차에 맞춰 현지 한국어 교원 양성 및 학년별 한글 교과서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면서 “교육당국도 매우 협조적이라 베트남 내 한국어의 미래는 밝다”고 자신했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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