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강림' 출연 후 필리핀서 인기 얻은 조이스 구에라
'띠링~'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휴대폰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15배 늘었고, 개인 유튜브 조회수도 1,000회를 넘었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고향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 드라마 '여신강림'에 나왔다며?"
난생처음 언론 매체와 인터뷰도 했다. 필리핀 영화 전문 매체, 패션 잡지 등 다양한 곳에서 요청이 왔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 일은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온 놀린 조이스 구에라(27)가 직접 겪고 있는 일이다.
조이스는 요즘 '자고 일어났더니 깜짝 스타가 됐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그저 한류 드라마가 좋아서" 한국에 와서 취미로 단역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최근 드라마 '여신강림'에 출연했다. 이 드라마는 고향 필리핀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그에게로 이어졌다.
10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조이스를 만났다. 그는 한국 언론과는 첫 인터뷰라 "매우 긴장된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은 밝아졌다.
한류 타고 필리핀에서 인기 '급상승'...가족, 친구들도 놀라
조이스는 2015년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MBA)에 다니기 위해 한국에 왔다. 졸업 직후 2017년 서울의 한 금융 회사에 입사했다.
평일에는 주로 직장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주말에는 드라마와 영화의 크고 작은 역할을 맡아 연기자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종종 평일에도 꼭 빠지면 안 되는 경우 휴가를 내고 촬영장으로 달려간다.
2017년 영화 '염력(2018)' 단역 출연을 시작으로 tvN '여신강림', '아스달 연대기',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 개의 별' 등 지금까지 50편이 넘는 드라마에 등장했다. 서울시 관광 홍보 광고를 비롯해 여러 광고의 주인공으로 얼굴을 비치기도 했다.
특이한 건 그는 실제 나이보다 앳된 외모로 주로 학생 역할에 캐스팅됐다. 그것도 외국 국적이 아닌 한국 학생이었다.
조이스는 필리핀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할리우드 영화에 버금간다고 했다. 필리핀에서 영화는 '할리우드'라면 드라마는 'K드라마'라고 할 정도다.
원래도 한류 콘텐츠의 인기는 대단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야외 활동에 지장을 받고 영상 콘텐츠를 찾는 이들이 늘면서 그 인기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조이스는 지난해 말 드라마 '여신강림' 출연 이후 필리핀 팬이 부쩍 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직 필리핀을 방문하지 못했지만 SNS에서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큰 관심을 받게 된 상황을 두고 조이스는 "감사하지만 부담도 된다"고 했다.
-50편이 넘는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무래도 이번에 찍은 '여신강림'이다. 정말 좋아하는 문가영 배우와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다. 또 다른 작품을 함께했던 배우들도 만났고, 감독님도 예전에 함께 작품을 했기 때문에 분위기는 너무 편했다."
-필리핀에서의 인기를 실감하나.
"나를 알아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신강림 이후에 필리핀을 간 적은 없지만 인스타 팔로워 수가 15배 늘어났다. 모르는 사람들이 다이렉트 메시지(DM)를 많이 보낸다. 대부분 드라마를 보고 한국에 오고 싶어졌다는 내용이다. 게다가 필리핀뿐만 아니라 인도, 아프리카 등 다양한 곳에서 DM이 온다.
주변 친구들도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연락이 안 되던 필리핀의 옛 친구들에게도 "드라마 잘 봤다"고 연락이 온다. 가족들도 응원해 주고 있다."
MBA 학생에서 회사원, 연기자가 되다
조이스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드라마 '드림하이'이다. 드림하이를 보고 한국어를 배우게 됐다고 한다.
조이스는 한국 생활 초반에는 적응하기 힘들어 포기할까 생각도 여러 차례 했다고 말했다.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학비는 장학금으로 해결했지만, 생활비는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 사촌오빠가 한국에서 지내고 있어 신세를 졌고 틈틈이 영어 강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기를 거듭하면서 친구도 많이 사귀어 점차 한국 생활에도 재미를 붙였다. MBA를 마칠 무렵, 지금 회사에 정식 매니저로 채용됐다. 마케팅, 해외 파트너 관리, 해외 펀딩 관리 등의 일을 한다.
한국 생활 2년차였던 2017년. 조이스에게는 '도전의 해'였다.
친척집을 떠나 학교 인근 원룸에서 혼자 지냈다. 또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 촬영 현장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기 위해 무작정 외국인 매니지먼트 회사 10곳에 서류부터 넣었다. 기적처럼 조이스의 프로필 사진이 마음에 들었던 회사 한 곳에서 연락이 왔고 그렇게 한국에서 연기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첫 출연 영화 '염력'에서 외국인 역할로 아주 짧게 등장했지만 그는 현장이 주는 강렬한 에너지에 이끌렸다. 그 후로 조이스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십 번의 오디션과 촬영을 거듭했다.
조이스는 첫 드라마 출연작이었던 2018년 tvN의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 개의 별'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행인, 버스 탄 학생 등을 연기했다. 촬영 일정은 생각보다 훨씬 빡빡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서울 마포구 디지털미디어시티(DMC), (경기) 파주, 인천 등을 옮겨가며 촬영했다.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촬영 현장 모든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고 했다.
지금은 이태원에서 필리핀 친구들과 '셰어 하우스'에서 살고 있다. 어느덧 회사에서는 선임이다. 급여로 월세와 생활비로 쓰기에는 충분하다는 게 조이스의 설명이다.
-한국 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건 무엇이었나.
"아무래도 언어가 가장 큰 문제였다. 한국에 오기 전에 필리핀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 수업을 들었다. 총 72시간을 이수해야 하는 기초(Elementary) 코스였다. 한국인 친구가 한 명 있어서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 충분하지 않았다. 한국에 와서 처음 한 학기 동안은 한국어 몇 마디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이후에는 학교(숙명여대)에서 하는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3개월 정도 듣고 예능 프로그램도 꾸준히 챙겨보면서 연습했다. 그 덕에 최근에 한국어능력시험(TOPIK) 5급을 취득하고 한국 사람들과 무리 없이 대화도 가능하게 되었다."
-처음 본인이 출연한 모습을 보고 어땠나.
"너무 신기해서 한 10번 정도 돌려 봤다(웃음). 가족이나 친구한테는 부끄러워서 처음에는 알리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보여줬다. 다들 "진짜 조이스 네가 맞냐"며 놀라고 좋아해줬다. 또 할머니와는 평소에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드라마 출연하고 필리핀에 갔을 때 할머니께서 TV에서 내가 나온 것을 보셨다며 기특하다고 하셨다. 그때 좋은 기운을 받고 연기에 재미도 붙여서 지금까지 온 것 같다."
-촬영 현장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외국인으로서 더 힘든 점이 있었다면.
"촬영 시간이 평균 9시간 이상이다. 먼 곳으로 촬영을 가게 될 때면 몇 배로 더 힘들다. 남양주나 대전, 또 가장 멀리는 경북 안동시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 그래도 안동에 가니 제작사에서 밥차 메뉴로 안동찜닭을 준비해줘서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웃음). 이동할 때도 보조출연자와 다같이 버스를 타고 가서 혼자 고생한 일은 다행히 없었다.
다만 촬영 때 필요한 옷을 각자 준비해 가야 하는데 항상 전날에 뭘 입을지 고민을 많이 하기도 한다.
가끔 대사를 받았을 때 발음이 어려워서 고생한 적이 있다. 그 이외에는 외국인으로서 힘든 것은 없었다. 한국인 역할을 맡게 되면 다들 외국 사람인지 모른다. 또 영화나 광고에서 외국인으로 나올 때는 오히려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이해하기 힘들 법한 장면이 있으면 먼저 보여는 등 배려해줬다."
"주말 없이 일하지만 즐거워요"
'N잡러'. 2개 이상의 복수를 뜻하는 N과 직업의 job(잡)을 합한 말로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남는 시간을 자신의 취미 생활과 자아 실현에 투자하는 것이다. '평생 직장' 개념이 점차 사라지는 세태와 정년 없는 직장의 불안감이 제 2의 직업을 갖도록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조이스 역시 주말 없이 바쁜 N잡러이다. 보통은 주말에 촬영을 나가지만 가끔 평일에 촬영이 잡혀도 회사에 월차를 내고 다녀온다.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 덕에 다음 해 연차를 당겨서 쓰고 촬영을 간 적도 있다. 쉬는 날에는 집안 일을 하거나 유튜브 콘텐츠를 찍고 편집을 한다.
연기가 돈벌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용돈벌이 수준이다. 체력이 좋은 편도 아니라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연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현장이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좋아하는 것이 곧 일이 되는 '덕업일치'인 셈이다. 그는 먼 곳까지 내려가서 힘든 촬영 일정을 소화하더라도 늘 현장은 새롭고 신기하다는 연기 '덕후'였다.
조이스는 또 "드라마 출연을 통해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본업과 연기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진 않은지.
본업과 연기의 비중은 8:2 정도다. 지금 다니는 회사 사람들도 연기하는 것을 응원해줘서 힘들지는 않다. 휴가도 자유롭게 쓰는 분위기다. 오늘(인터뷰)도 반차를 쓰고 왔다.
-'나를 발견했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연기를 통해 새로운 내 모습을 찾은 것 같다. 광고 촬영을 할 때 NG를 많이 내서 촬영 감독님에게 혼이 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성격을 훨씬 적극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나는 원래 집에서는 그냥 '맏언니'였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키가) 작은 애'라고만 불리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훨씬 외향적인 사람이 되었고 연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조이스에게 연기란.
"취미 생활이자 꿈을 실현하는 것.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다 재밌어서 최선을 다 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목표가 무엇인가.
"지금처럼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연기도 계속할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해보고 싶다. '대한외국인' 같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 중이다. 드라마는 짧은 대사만 할 줄 알아도 되는데 예능은 다르다. 애드리브를 소화할 정도로 한국어 실력을 더 쌓으려고 한다.
한국에서 방송이나 연기 쪽으로 성공한 필리핀 사람은 아직까지 거의 없다. 내가 첫발을 잘 떼서 선구자(Pioneer)가 되고 싶다."
한류 스타 꿈꾸는 외국인들
한류가 달라졌다. 기존 한류는 아시아 국가로 수출된 드라마가 중심이었다. 또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 아이돌 그룹이 중국, 일본 등 현지에서 인기를 거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한류의 기류도 달라졌다.
이제 해외 드라마팬들은 현지 방송국이 판권을 구입하느라 방영한지 몇 년이 지난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니라,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소비한다. 코로나19 이후 유행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승리호’ 같은 한국 작품들이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한류의 인기를 타고 한국행을 꿈꾸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방송 출연을 하고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한다. 이런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에이전시까지 생겼을 정도다. 조이스가 속해있는 파이브스톤즈이엔티는 대표적인 외국인 전담 에이전시다. 이곳 대표 한재성씨가 인터뷰에 동행했다.
-외국인 전담 에이전시 대표다. 전망이 어떤가.
한국에서 외국인들이 예전에는 마치 손님처럼 살았다면 이제는 한국 사람 그 자체로 살아가고 있다. 방송가에서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미디어가 외국인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과거에 '거침없이 하이킥' 등의 작품에서 주인공의 외국인 친구로 등장하는 것처럼 서브 캐릭터 혹은 감초 역할 정도로 소비되었다면 이제는 외국인 출연자를 앞세운 콘텐츠가 트렌드이다. '대한외국인',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등의 프로그램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 흐름을 타서 조이스도 곧 대한외국인 같은 외국인 메인 프로그램에 출연할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현재 소속 외국인 연기자들이 출연하는 시트콤을 기획 중이다. 조이스처럼 한국에서 방송인을 꿈꾸는 여러 외국인들을 전방위로 내세울 계획이다. 앞으로 조이스처럼 활동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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