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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특수성은 인권을 압도할 수 있나

입력
2021.03.1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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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산책한 뒤 담소를 나누고 있다. 고영권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산책한 뒤 담소를 나누고 있다. 고영권 기자

문재인 정부의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결의안 참여 추이에는 묘한 데가 있다. 2018년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가 2019년 돌연 공동제안국에서 이름을 빼고 '컨센서스(합의)'에만 참여했다. 이른바 '한반도의 봄'이 한창이던 시기엔 북한인권 문제 공론화에 앞장섰다가,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 경색 국면에선 되레 뒤로 빠진 것이다.

정부는 "남북관계 특수 상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취지에 동의하지만,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정부 노력과 '남북관계의 특수 상황' 등을 포함한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했다.

북미·남북 간 정상급 대화가 왕성했을 땐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가 그다지 큰 위험 변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1년 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자, 문재인 정부는 노심초사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부터 공들여 쌓아 올린 한반도 평화 무드가 사그라질까 염려했고, 북한이 이를 깰 만한 조금의 명분도 허용하기 어려웠다. 하물며 평양 지도부가 극도로 민감해하는 북한 인권 문제였기 때문에 결의안 공동제안 불참은 정부 내에서 합당성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게 우리 정부가 말한 남북관계 특수 상황이었고, 문재인 정부가 인권 문제에서 다소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그렇게 정부는 지난해 북한인권결의 공동제안에도 불참했다. 한반도 특수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따져봐야 한다. 남북관계 특수성은 인권의 가치를 앞설 수 있는가. 답은 간단하다. 인류 보편적 권리인 인권보다 앞설 수 있는 정치적 명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만의 특수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인권 제한을 합리화할 수 있다면, 홍콩 인권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에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하는 중국과 다를 게 무엇인가. 유신헌법에 대고 "한국적 민주주의의 정착"이라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말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북한의 반발로 안보 위기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면, 대북 인권 압박의 수위도 다소 조절할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인권 결의에 참여했다고 위협받는 안보 역량이 문제이지, 인권 결의 탓으로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12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미얀마 군부를 향한 제재 조치를 내놨다. 군수품과 전략물자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내용이다. 유·무상 개발협력사업(ODA)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한국이 제3국을 향해 단독 제재 조치를 단행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외교부는 "그만큼 (우리 정부가) 인권이나 민주주의 가치를 중요하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얀마 사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결기가 느껴지는 한편 감추기 어려운 민망함도 함께 몰려왔다. 미얀마 인권 위기에 공감하는 동시에 남북관계 특수성을 앞세우고 있는 이들이 같은 정부라는 게 면구스러웠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3일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할 예정이다. 정부는 공동제안국 참여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국제사회가 '한반도 특수성'을 영원히 이해해주진 않을 듯하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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