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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10년 비극의 대가는

입력
2021.03.17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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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시리아 내전 10주년을 맞은 15일(현지시간) 북서부 이들리브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대형 혁명기를 펼쳐 들고 있다. ‘아랍의 봄’ 민중봉기가 중동 전역으로 번지던 2011년 이날 시작된 시리아 반정부 시위가 대규모 내전으로 번져 10년간 39만여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AFP=연합뉴스

시리아 내전 10주년을 맞은 15일(현지시간) 북서부 이들리브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대형 혁명기를 펼쳐 들고 있다. ‘아랍의 봄’ 민중봉기가 중동 전역으로 번지던 2011년 이날 시작된 시리아 반정부 시위가 대규모 내전으로 번져 10년간 39만여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AFP=연합뉴스

사망자 약 39만, 실종자 20만, 극빈층 200만, 난민 560만. 시리아 내전 10년의 숫자들이다. 누구도 원치 않았던 비극의 시작은 작았다. 2011년 3월 시리아 남서부 다라에서 학생들이 ‘국민은 정권 붕괴를 바란다’고 벽에다 썼다. 이들이 체포돼 고문당하자 석방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 발포로 희생자가 나왔다. 바샤르 알 아사드 독재에 항의하는 시위는 이내 전국으로 번져 내전으로 비화했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에 불던 ‘아랍의 봄’의 상륙이었다.

□ 무정부 상태에 놓이자 예상치 못한 어둠의 집단들이 내전에 개입해 세력을 키웠다. 시아파, 수니파의 대리전이 진행되는 가운데 극단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있었다. IS는 락까를 거점 삼아 한때 이라크 모술까지 점령했다. 터키 러시아 이란 미국도 개입해 일부 지역을 관할했다. 난민이 유럽으로 밀려가자 서구사회는 국수주의가 발호하고 인종갈등이 커졌다. 그런 와중에 영국은 유럽연합(EU)에서 떨어져 나갔다.

□ 참화와 파괴의 10년이 지나도 끝은 보이지 않는다. 미래가 시리아인 손에 달린 것도 아니다. 평상으로의 복귀는 내전이 끝난다 해도 쉽지 않다. 유니세프 시리아 대표의 12일 브리핑을 보면, 내전과 함께 경제난, 코로나19로 인한 3중고에 놓여 있다. 전쟁으로 자연사가 아닌 피살이 뉴노멀이 돼 있고 물과 원유, 식량은 내전 이전부터 충분치 않았다. 그러잖아도 부족한 생필품은 가격이 세 배 넘게 올랐고 화폐가치는 78% 떨어졌다.

□ 현지 예술가 자와드 모라드는 어린이의 꿈이 우주비행사에서 줄고 줄어 비좁은 고무보트에 타고 난민이 되는 절망의 과정으로 비극을 묘사했다. 그러나 IS를 피해 가족과 보트를 탔던 빨간 셔츠의 세 살 아일란 쿠르디는 엎드린 모습으로 터키 해변에서 발견됐다. 살아남은 쿠르디 친구들은 학교 대신 노동 현장으로 가고 있다. 스웨이다 지역에 사는 열 살 아흐메드는 상점에서 일해 번 돈으로 가족을 돕는다고 유니세프에 말했다. 한 활동가는 더는 국가가 아니라 같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집합일 뿐이란 한탄을 서구 언론에 했다. 국가의 부재가 가져온 비극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더 치러야 할 희생의 대의와 대가는 어디에 있을까.

이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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