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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스승이고, 각성한 나 자신이다

입력
2021.03.17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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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현
자현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1510~1511).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1510~1511).


예전 우리 조상들은 죽음을 두려워했다. 이것이 동아시아 문화에 죽음의 터부라는 뚜렷한 지문을 남기고, 오복(五福) 중 으뜸으로 장수를 꼽게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죽음은 과거와 같은 공포가 되지 못한다. 과학의 발달로 인과관계가 투명해지면서 죽음을 납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죽음은 이제 돌발의 영역이 아닌, 이해의 관점에서 받아들여지는 대상일 뿐이다.

초기 인류는 자연 앞에 무력했고, 당시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때 강력한 보호막을 쳐줄 구원자를 추구하게 되는데, 이렇게 도출된 결과물이 바로 신(神)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신의 시작을 이해하는 것을 '인간의 요청 개념에 의한 신의 발생'이라고 한다.

독일의 카를 야스퍼스가 명명한 '축의 시대(Axial Age. B.C 8C∼B.C 3C)'가 되면, 도시국가의 발달과 팽창으로 인해 대상무역이 번성하고 전쟁이 빈번해진다. 무역과 전쟁에서의 핵심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닌,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책략에 있다. 즉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신을 넘어서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진리의 추구가 시작된 것이다.

축의 시대에 희랍에서는 탈레스를 필두로 데모크리토스와 같은 '스'로 끝나는 현자들이 출현한다. '스'는 남성을 나타내는 희랍 이름의 특징으로, 이곳의 최강자는 단연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사제지간이다.

한편 이 시기 중국에는 공자·맹자·노자 등 '자(子)'로 끝나는 제자백가가 등장한다. 여기에서 '자'는 큰 선생님이라는 의미다. 즉 공자는 '공씨 성의 최고 선생님'이라는 뜻인 셈이다. 인도도 예외는 아니다. 붓다와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를 필두로, 62가지의 철학적 견해들이 마치 장마철 폭우처럼 쏟아지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축의 시대는 철학과 종교의 내로라하는 히어로들이 총출동한 어벤저스의 시대다. 이들의 공통점은 신이 아닌, 합리적인 진리에 대한 추구에 있다. 즉 신으로부터 벗어난 객관적인 진리의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이런 흐름이 훗날 서구에서는 밖으로 흘러, 르네상스를 거치며 현대 과학을 꽃피우게 된다. 그리고 인도는 내면으로 움직여, 오늘날까지 세계의 명상주의를 견인하고 있다.

불교는 명상의 종교다. 해서 붓다는 스승인 동시에, 내면의 각성을 통해 성취되는 내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후일 동아시아의 선불교에서는 붓다마저도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 대장부의 높은 기상에는 붓다가 되는 것조차 들지 않기 때문이란다. 즉 '나의 나를 위한 승리', 이것이 바로 선(禪)이라는 명상주의를 간판으로 내세운 선불교의 정체다.

현대 사회의 과학 발전은 보다 편리하고 안정된 삶의 구조를 완성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소수의 시장 독점에 따른 견고해진 계층 구조 속의 갑갑함, 또 작은 사건에도 갈등하는 반목과 대립도 함께 이끌어냈다. 해서 우리의 내면은 짙은 황사처럼 희뿌연 불만족의 혼란을 겪고 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했듯 행복에 있다. 붓다 역시 자신은 진정한 행복을 위해, 왕위를 버리고 출가했노라고 천명한다.

행복은 경쟁에서의 승리를 통해서도 성취된다. 그러나 승리는 또 다른 경쟁 속으로 나를 끌어들이게 되며, 우리는 모든 경쟁에서 승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조절하는 행복의 열쇠, 즉 명상이다. 바로 이 명상의 끝에 불교가 있다. 그리고 불교는 오늘도 내가 주인이 되는 행복한 삶을 역설한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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