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경자유전' 농지법 허울뿐인 까닭… 규제 풀리자 투기판으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경자유전' 농지법 허울뿐인 까닭… 규제 풀리자 투기판으로

입력
2021.03.17 04:30
수정
2021.03.17 07:08
5면
0 0

거리규제·사전거주 요건 폐지되고
외부자본 유입 탓에 농지 투기 날개
"투기 못하도록 농지 기능 회복해야"

광명·시흥시 공무원들도 신도시 예정지 내 토지를 매입한 것으로 드러난 지난 10일 경기 광명시 노온사동의 공무원 소유 농지에서 인부가 묘목을 심기 위해 땅을 고르고 있다. 광명=서재훈 기자

광명·시흥시 공무원들도 신도시 예정지 내 토지를 매입한 것으로 드러난 지난 10일 경기 광명시 노온사동의 공무원 소유 농지에서 인부가 묘목을 심기 위해 땅을 고르고 있다. 광명=서재훈 기자


1994년 제정 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친 농지법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동산 투기 사태를 계기로 도마 위에 올랐다. 지금 대한민국 농지에서 벌어지는 살벌한 부동산 투기 광풍은 헌법과 농지법이 규정한 ‘경자유전’ 원칙이 허울뿐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풍경이다.

농지법 제1조에는 ‘농지법은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관리해 농업인의 경영 안정과 농업 생산성 향상을 바탕으로 경쟁력 강화와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 및 국토 환경 보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적혀 있지만,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헌법적 가치가 투영돼야 할 농지엔 투기 흔적만 남아 버렸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됐을까.

정부 정책이 농지 투기 열풍 부추겨

농지법 전문가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농지 중심으로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다 보니 농지의 희소성이 투기를 부추겨왔다고 분석한다. 16일 통계청의 ‘경지면적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경지면적은 1975년과 비교해 30%나 줄어들었다. 오세형 경실련 경제정책국 팀장은 “산지가 많은 한정된 국토에서 도시개발지구, 택지개발지구, 산업단지가 들어설 곳은 결국 농지밖에 없다”며 “농민이 아닌 사람들이 농지를 소유하려는 이유도 개발에 따른 토지 보상 혹은 시세 차익을 노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연도별 경지면적 추이. 신동준 기자

연도별 경지면적 추이. 신동준 기자


농지가 처음부터 투기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아니다. 1987년 헌법에 경자유전 원칙이 명시됨에 따라, 농지개혁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농지 구입시 6개월간 사전 거주 의무를 부과했다. 농지임대차 관리법에 따라 '거주지와 농지간 거리(통작거리) 8㎞ 이내'를 농지 취득 허용기준으로 마련해, 농지 본연의 기능을 유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농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규제완화 정책이 투기를 조장하기 시작했다. 1991년 시행령 개정에 따라 통작거리가 20㎞로 완화되더니, 1994년엔 농지법 제정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통작거리 제한도 사라졌다. 또 사전 허가 개념이던 농지매매 증명제도 대신 사후관리에 가까운 농지취득자격 증명제도가 도입되면서 농지소재지 사전 거주 요건도 폐지됐다.

농지법 안 바뀌면 투기판 안 사라져

여기에 대규모 기업농과 전업농 육성을 통한 농업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외부 자본이 유입되면서 농지는 투기판으로 변하기 시작됐다. 1990년 ‘농어촌발전 특별조치법’ 제정 및 농지법 개정을 통한 규제완화가 본격화하면서 농업법인 설립이 이어졌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조사에 따르면 농업법인은 매년 증가해 2019년에는 2만 3,315개에 달했다. 2009년 비농업인이 별다른 제한 없이 농지 소유와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농어업경영체 육성법까지 제정되자 농지 투기는 날개를 달았다. 2,3개월 만에 농업법인을 설립해 땅을 사들이고 단기간에 여러 명에게 매각해 시세차익을 올려 투기놀음을 하는 기획부동산이 대표적이다.

연도별 농업법인 현황 추이. 신동준 기자

연도별 농업법인 현황 추이. 신동준 기자


경실련 농업개혁위원인 임영환 변호사는 "농업법인 중 하나인 농업회사법인이 2012년부터 90%까지 비농민 자본을 유치하는 방식으로 농지를 사고파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투기가 만연했고, 합법적으로 정책지원금까지 챙겨갔다"고 지적했다. 이무진 전농 정책위원장도 “농지 취득 때 자격 제한이 없는 현행 농지법이 유지된다면 농지는 투기놀음판으로 굳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LH 사태 이후 농지 투기를 잠재우기 위해 비농민이 1,000㎡ 미만 소규모 농지를 구매할 때 제출하는 농업경영계획서 관련 법규를 수정하고 주말농장 관련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농지 취득의 진입장벽을 높인 만큼 당장은 투기 예방 효과가 있겠지만, 농지가 개발이익을 낳을 수 있다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변형된 투기행태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문호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 정책이 농지 소유를 규제하는 것에만 매몰돼선 안 되고, 식량 생산과 농업경쟁력 향상이라는 농지 본연의 기능을 살리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훈 기자
윤태석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